[정현목의 시선] 가슴이 뛴다, ‘영원한 오빠’ 조용필 덕분에

정현목 2025. 10. 21. 00:15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유난히 길었던 올 추석 연휴, 전국의 안방은 노래방이 됐다.

KBS에서 방영된 조용필 콘서트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 덕분이다. 노래방에 언제 갔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와 아내는 조용필 노래를 따라 불렀다. 두 시간 반에 꾹꾹 눌러 담은 조용필의 히트곡들은 우리의 삶이자 역사였다. 모든 노래가 삶의 어느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

75세의 나이에도 조용필의 목소리는 여전히 단단했다. 57년간 변함 없는 음악에 대한 열정이 느껴졌다.

「 추석 콘서트, 안방이 노래방 돼
지난 삶과 역사 생생하게 떠올라
75세 가왕 꿈과 도전, 울림 여전해

“조용필이 그렇게 좋아?”라고 묻던 대학생 아들도 ‘바운스’가 나오자, 후렴구를 따라 불렀다. 젊은이들의 가슴까지 뛰게 만든 이 노래를 내놓았을 때 조용필은 63세였다. 노래로 세대를 아우르는 가왕의 전설은 현재 진행형이다.

KBS 관계자는 조용필을 “노력하는 천재”라고 평가했다. 동의한다. 그는 음감과 악보 작성 능력 등 재능을 타고났지만 한 번도 안주하지 않았다. 새로운 노래를 위해 도전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로 스타가 됐지만, 절창의 록 발라드 ‘창밖의 여자’를 후속곡으로 택했다. 트로트 가수의 범주에 묶이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단발머리’의 신시사이저 사운드 못지않게 ‘고추잠자리’의 ‘엄마야~’ 가사 또한 혁신적이었다. 후배 가수 신승훈은 이에 영감 받아 ‘엄마야’란 노래를 만들었고, 박찬욱 감독은 “새 시대의 문을 열어젖힌” 이 노래를 신작 영화 ‘어쩔수가없다’에 삽입했다.

이후 그는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한발 앞선 노래를 선보여왔다. 집에서 늘 AFN(주한미군 방송) 라디오를 틀어 놓는 건, 최신 음악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는 오랜 습관이다. “음악 공부엔 끝이 없다”는 그는 요즘엔 유튜브도 교재로 삼는다.

조용필 공연은 멘트가 짧은 거로, 게스트가 없는 거로 유명하다. 두 시간 넘는 공연을 완벽에 가까운 음향과 연주로 이어간다. 오래전, 조용필이 연습 시간에 지각한 밴드 멤버를 호되게 꾸짖은 일이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는 한참 걸렸지만, 내려가는 건 한순간이야”라는 말과 함께.

완벽주의 외에 조용필 음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꿈’이다. 조용필의 최애곡 ‘꿈’은 일자리를 찾아 상경하는 청년들을 다룬 기사를 보고 직접 만든 곡이다. 차가운 도시의 초라한 골목에서 뜨거운 눈물을 삼키는 청춘을 그렸지만, 노래의 본질은 그럼에도 여전히 꿈을 놓지 않는 희망이다.

환호와 갈채 뒤에서 남몰래 흘렸던 눈물과 고난을 딛고 마침내 이뤄낸 자신의 꿈을 통해, 가혹한 세상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격려한다.

14년 전 인터뷰에서 조용필은 힘든 청춘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했다. “꿈을 의심하지 마라. 꿈을 의심하는 순간, 성공은 멀어져 간다.” 그 메시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의 마지막 꿈은 “무대에서 노래하다 죽는 것”이다.

조용필의 노래엔 삶을 관통하는 진실과 성찰이 담겨 있다. 음악의 길을 걷는 구도자라는 평가가 따르는 이유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아야 돼/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바람의 노래), ‘소중한 건 옆에 있다고 먼 길 떠나려는 사람에게 말했으면’(이젠 그랬으면 좋겠네)

이제 그는 큰 어른 답게 포용과 치유를 노래한다. 생존과 성공이란 목표에 짓눌려 살아온 기성세대, 혼돈의 세상을 힘겹게 버텨내는 젊은 세대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지치고 힘이 들 때면 이쯤에서 쉬어가도 되잖아/그래도 돼 늦어도 돼/이제는 믿어 믿어봐 자신을 믿어 믿어봐’(그래도 돼)

‘고독한 러너’ ‘남겨진 자의 고독’ 등 고독은 꿈, 사랑과 함께 조용필 음악의 한 축을 이룬다. ‘킬리만자로의 표범’ 가사처럼 모든 것을 건다는 건 외로운 것이다. 조용필이 자신의 운명을 건 음악 외길 또한 그랬다. 밤하늘의 별이 된 소중한 사람을 그리워하는 노래 ‘진’, ‘걷고 싶다’는 사랑하는 아내와 사별한 그의 개인사가 겹쳐져 더욱 애절하게 심금을 울린다.

‘더는 사랑이 없다 해도 남겨진 내 삶인데/가야 할 내 길인데 그것이 내 삶인데’(그 또한 내 삶인데)

그의 고독의 노래는 자신의 아픔을 넘어 수많은 이들의 상실과 슬픔을 달래준다.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삶의 마지막에 듣고 싶은 노래’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울 때가 있다. 난 그때마다 주저 없이 조용필 노래라고 말한다. 그의 수많은 명곡 중에서 어떤 곡을 골라야 할까. 내 작은 지혜를 키워줄 더 많은 고뇌의 시간이 필요할 듯하다.

정현목 문화선임기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