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호박을 자르다 피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오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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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듬은 호박과 호박요리 AI의 지시에 따라 호박을 다듬다 손을 베었다. 피 한 방울이 떨어진 자리에서, 비로소 내가 잃어버린 손의 시간을 마주했다. |
| ⓒ 오성훈 |
그러다 가을이 깊어지자, 봄에 심었던 호박이 탐스럽게 익어가고 하얀 분이 일었다. 무려 열일곱 개의 호박을 수확했다며 가장 잘 익은 것을 교장실에도 하나 주셨다. 하지만 내게 주어진 이 호박은 선물이자 시험이었다. 문제는 이 호박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였다. 며칠을 교장실에서 관상용으로 두다가, 집으로 가져와 식탁 위에 두었다. 노란 호박을 마냥 바라볼 수만은 없었다. 애써 길러서 주셨는데 썩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생각은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한 열흘을 보냈다. 한번도 늙은 호박으로 요리를 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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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이라 독립해 살고 있는 작은 딸아이가 잠깐 다녀갔다. 우리 부부는 장인어른, 장모님께서 아내에게 그러셨듯, 정성껏 저녁을 먹이고 손수 챙긴 먹거리를 담아 보냈다. 이 작은 사랑의 행위를 대물림하면서도, 곧 결혼을 앞둔 두 딸아이를 보며 깊은 공허함이 밀려왔다. 딸아이가 들고 간 그 보따리에는 정성은 있었지만, 손의 온기는 없었다. 마트에서 산 것들로 채운 보따리가 어쩐지 허전했다.
이 공허함의 뿌리는 내 안의 오래된 기억으로 닿는다. 장인·장모님은 이미 몇 해 전에 고인이 되셨다. 살아 생전에 두 분은 우리 두 딸들을 애지중지 키워주셨다. 덕분에 교사 부부였던 아내와 나는 우리 두 딸보다는 학교의 아이들에게 온 정성을 쏟을 수 있었다. 그렇게 자란 두 딸아이는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다니며 나라에 세금을 낼 수 있는 어엿한 직장인으로 생활하며 짝을 만나 결혼을 준비 중이다. 그분들의 헌신 덕분에 우리 딸들은 예쁘게 성장했고, 우리는 교사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었다. 두 아이가 이처럼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것을 볼 때면 장인·장모님의 사랑이 소환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들의 빈자리를 이제 내가 대신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곧 결혼하는 두 딸이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아 친정이라 찾아왔을 때, 장인·장모님처럼 아이들을 잘 돌봐줄 자신도 없지만, 더 본질적으로 김치를 담아줄 수도, 도토리묵을 만들어 줄 수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괴롭혔다. 내 손으로 지은 무언가를 들려줄 수 없다는 결핍이 마음 한구석을 텅 비워냈다. 나는 이 공허함을 채우기 위해, 최소한 이 호박이라도 내 손으로 다듬고 요리를 해서 다음 주에 딸아이가 오면 주고 싶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산골 출신이다. 겉보기엔 자연과 가까웠지만, 나는 밥상에 올라온 호박잎이나 호박죽만 먹는 데 그쳤다. 중학교 3학년 때 읍내로 나와 공부를 시작한 후로, 밭에서 씨앗을 뿌리고, 기르고, 수확하는 노동의 '과정'은 내 삶에서 영원히 생략되었다. 나는 흙의 사람으로 태어나 지식의 사람으로 자랐고, 그 사이에서 손의 기억을 잃어버렸다. 시골 출신이지만 도시에서 살았던 아내와 전혀 다르지 않은, 삶의 과정이 단절된 삶의 궤적이다.
손으로 익힌 지식의 가치
결국 나와 아내는 인공지능(AI)에게 늙은 호박을 어떻게 보관하고 요리하는지 물었다. 머릿속의 지식은 금세 얻었다. 그러나 손으로 부딪히는 현실의 벽은 더욱 단단했다. AI의 지시대로 칼을 들었지만, 1시간 혈투 끝에 겨우 호박을 해체했고, 호박 대신 내 손에 상처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그 상처는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내가 잃어버린 과정, 잃어버린 손의 지혜를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바로 '삶과 괴리된 공부'가 우리 기성세대에게 안겨준 비극이다. 우리는 '손으로 익히는 경험(노동의 과정)'을 철저히 배제하고, '머리로 아는 지식(결과물)'만을 최고 가치로 두었다. AI는 지식을 주었지만, 그 단단함을 '느낀 사람의 시간'은 알려주지 못했다. 칼을 다루는 숙련된 손기술도 결코 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로 돌아와 실습실을 지나가다 멈춰 섰다. 메이커랩실 문 너머로 보이는 광경에 발이 묶였다. 납땜기의 불빛이 반짝이고, 학생 한 명이 로봇의 팔을 조정하며 "이건 제가 설계한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 손끝의 집중이 내게는 기도처럼 보였다. 그들은 코딩을 하고 로봇의 움직임을 확인하고 다시 코딩을 바꾸는 과정을 반복하며 대회에 출품할 로봇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은 단순한 수업의 장면이 아니라, 손으로 깨닫고 노동의 가치를 익히는 배움의 현장이었다.
지난 학기, 한 학생이 자신이 직접 설계하고 제작한 미니 선풍기를 내게 선물했다. "교장선생님, 여름에 쓰세요." 그 투박한 선풍기는 시중 제품보다 세련되지 않았지만, AI가 절대 줄 수 없는 무언가가 담겨 있었다. 재료를 다뤄보고, 실패 속에서 배우며, 마침내 결과를 만들어 낸 '손의 지혜'이자 '과정의 지혜'였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직업계고의 가치를 발견한다. 직업계고는 '삶과 괴리되지 않은 공부', 즉 '손의 지혜'를 가르치는 곳이다. 우리 학생들은 인공지능에게 묻지 않고도, 직접 기계의 원리를 이해하고, 회로를 짜고, 로봇을 조립한다. 그들은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기술'과 '경험'을 학교에서 축적하고 있다. 그 기술은 단순한 기능이 아니다. 그것은 '삶을 이어가는 본질'이다. 호박의 단단한 껍질을 이해하고, 그것을 해체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힘, 그것이 바로 기술의 숙련성이고 인간의 지혜다.
세상 풍파를 다 겪고 늙으면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고 부드러워진다지만, 이 늙은 호박은 그렇지 않았다. 완강히 거부하는 호박의 딱딱한 껍질에 손을 내어주고 말았다. 나는 이 호박의 단단함을 예순의 나이가 되어서야 비로소 체득했다.
나는 아내에게 다시 물었다. '늙은 호박'이라니 왜 늙은 호박이라 불렀지. '잘 익은 호박'이라 하면 안 되나? 내가 기성세대를 넘어 노인 세대로 넘어가니, '늙은 호박'이라는 단어 속에 숨겨진 '쓸모없음'이라는 사회적 평가가 불편하게 느껴졌다.
이 불편함은 직업계고 학생들을 향한 편견과 정확히 닮아있다. "대학 안 가는 애들", "공부 못하는 애들"이라는 시선. 하지만 그 시선은 호박의 겉모습만 보고 속을 모르는 것과 같다. 늙은 호박은 결코 쓸모없지 않다. 오히려 가장 단단하게 내실을 다진, 가장 쓸모 있는 상태다. 우리는 호박의 '단단한 껍질'처럼 스스로의 내실을 다져가는 학생들의 자존감과 기술을, '대학에 가지 않은 미성숙함'이나 '시대에 뒤처진 낡은 길'이라는 획일적 시선으로 재단하려 한다.
호박 대신 내 손에 상처를 내면서 얻은 뼈아픈 깨달음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 사회가 잃어버린 '손의 지혜'와 '노동의 가치'를, 직업계고 학생들이 지금 학교와 현장에서 땀 흘려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 '잘 익은 기술'이야말로 AI 시대에도 대체될 수 없는, 다음 세대에게 들려줄 수 있는 가장 소중하고 본질적인 '삶의 유산'일 것이다.
이제 나는 되묻는다. '늙은 호박, 어떻게 요리해야 할까요?' AI는 대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진짜 답은 우리 학생들의 손끝에 있다. 그들은 이미 알고 있다. 손으로 배우고, 손으로 세상을 바꾸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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