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먹는 하마' 변기, 왜 한국에선 살아남나

한무영 2025. 10. 20.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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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문신으로 막아내고, 한국은 단속 없는 정책으로 물부족 자초

[한무영 기자]

전남 신안군에는 '작은 기도(箕島)'라는 이름의 섬이 있다. 섬 모양이 곡식 까부르는 '키(箕)'와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목포항에서 61km 떨어진 외딴섬, 9가구가 모여 산다. 이 섬은 한때 '목마른 섬'이었다. 지하수는 짜서 마실 수 없었고, 저수지 설치도 불가능했다. 주민들은 육지에서 생수를 사다가 겨우 생활을 이어갔다. 2012년 봄에는 100년 만의 가뭄으로 농사와 생활용수 모두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

그해 6월, 서울대 빗물연구센터가 과학기부로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주민들은 "커피까지 끓여 마실 수 있게 됐다"며 웃음을 되찾았다. 이 사례는 같은 해 9월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세계물회의에서 신안군수가 국제 사회에 소개하며, 빗물이용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기록되었다(동아일보, 2012.9.19).

그런데, 또다시 부족하다?

그런데 몇 달 후 기도 주민들로부터 "물이 모자라다"는 연락을 받았다. 1인당 사용량을 계산해 충분히 설치했는데도 왜 그럴까. 현장을 가보니 답은 간단했다. 화장실에 놓인 것은 미국산 대형 변기였다. 한 번 내릴 때마다 13~15리터 가까운 물을 잡아먹는 구형 변기였다.

미국에서는 이미 절수 기준에 미달해 시장에서 퇴출된 제품이지만, 한국에서는 값싼 수입품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었다. "미제라서 좋다", "크고 시원하게 내려간다", "싼값에 공급된다"는 이유로 설치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빗물시설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주범이 된 셈이다.

겉다르고 속다른 가짜 절수변기의 사례는 곳곳에서 발견된다. 국회의원 사무실에 설치된 변기를 점검한 결과, 절수형이라 홍보된 변기가 사실은 절수형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진 적도 있다. 이 내용은 언론에도 보도된 바 있다. 포장지에는 절수형이라고 표기되어 있었지만, 변기 본체에는 영구표식이 없어 실제 성능을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결국 소비자는 속을 수밖에 없고, 제도는 '눈 가리고 아웅'에 그치고 있는 것이다.

토데헌이 묻는다

다른 것들은 성능을 꼼꼼히 따진다. 자동차는 연비를 따지고, 커피는 가격을 비교하며 멀리까지 가서라도 싼 커피를 사 먹는다. 그런데 정작 가장 중요하고 우리 삶에 직접적인 고통을 주는 변기의 물 사용량은 왜 따지지 않는가?

보이지 않는 '토일렛 데몬(Toilet Demon)'은 개인의 습관 속에만 숨어 있는 것이 아니다. 허술한 제도 속에도 존재한다. 이 데몬을 찾아내어 고쳐 나가는 것이 토데헌(토이렛 데몬 헌터스)의 사명이다.

미국은 이미 1990년대부터 기준을 강화했다. 변기 본체에 문신처럼 영구표식을 새겨 넣어, 제조사·모델명·1회 사용수량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위반 제품은 즉시 리콜되고, 판매가 금지된다. 그래서 미국 시장에서는 '물먹는 하마' 변기가 완전히 사라졌다.
▲ 미국의 절수변기 영구표식의 예 미국 EPA에서는 변기에 관련 시행령에 변기 자체에 그 사용량을 지워지지 못하도록 영구표식을 해 놓았다 (마치 문신을 한 것처럼). 적힌 내용은 회사명 (의도적으로 가림), 1.28 gal./4.8 Lpf = 일회 플러시당 1.28 갈론=4.8리터. 이렇게 적어 놓음으로서 언제든지 변기 회사의 책임을 물을수 있다.
ⓒ 한무영
전문가들은 한국의 물부족 원인을 단순히 시민의 낭비 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지적한다. 애꿎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허점 때문이다. 영구표식이 없다 보니 불량 변기가 들어와도 막지 못하고, 집행 주체도 없으며, 과태료 실적조차 없다. 이대로라면 한국은 앞으로도 물을 많이 쓰는 '물부족 국가'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

케데헌(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문신은 '사냥꾼의 증표'였다. 마찬가지로 토데헌에서 문신은 '물먹는 하마를 잡는 증표'다.

소비자는 문신이 새겨진 변기를 안심하고 사면 되고, 기업은 성능이 떨어지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 문신은 단순한 표시가 아니라, 앞으로 수십 년간 물을 책임 있게 쓰겠다는 사회적 약속이 된다. 제도가 형식에 그치면 값싼 퇴출 제품이 시장을 채우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과 소비자에게 돌아간다.

그래서 토데헌은 제안한다. 변기에 문신을 새겨라. 지워지지 않는 영구표식은 기업에겐 성능을 속일 수 없는 체면의 약속이고, 소비자에겐 안심할 수 있는 증표다. 빠져나갈 구멍을 원천 봉쇄하는 동시에, 좋은 제품을 권장하는 긍정적 강제가 된다. 문신 하나가 제도의 빈틈을 막고, 물을 지키는 사회적 안전장치가 되는 것이다.

물먹는 하마에서 '탄소를 잡는 하마'로

물먹는 하마를 바꾸면, 단지 물 절약에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탄소를 잡는 하마로의 전환이기도 하다. 절수형 변기를 제대로 보급하면 정수·하수 처리에 필요한 에너지가 줄어 탄소배출이 줄고, 동시에 물부족과 기후위기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이 한 가지 행동으로 탄소 절감·물부족 해소·기후위기 완화라는 세 가지 과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막 출범한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이런 '통합적 성과'를 보여주는 첫 작품으로 이 제도를 추진하길 바란다. 그리고 시민들은 전국의 토데헌이 되어 함께 움직이자. 각자의 집과 학교, 직장에서 변기의 물 사용량을 점검하고, 절수형 변기로 교체하는 실천을 이어가자. 시민이 바꾸면 정책도 바뀐다.

물부족의 원인은 시민에게 있지 않다. 한국의 1인당 물 사용량이 많은 것은 단순히 시민이 물을 많이 써서가 아니라, 제도의 허점과 교육·홍보의 부족 때문이다. 국가가 물을 아끼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지 못했고, 시민에게 물의 소중함을 알릴 기회를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는 복잡한 대책보다 단순하고 확실한 실천이 필요하다.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변기에 문신을 새기도록 하는 제도를 만들고, 그것을 잘 실천하면 된다.
그 작은 문신 하나가 '물먹는 하마'를 잡고, 탄소를 줄이며, 기후위기를 완화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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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한국은 OECD 국가 중 1인당 가용 수자원이 가장 적은 나라다. 그러나 정작 국민 대부분은 자신이 얼마나 많은 물을 쓰는지, 그중 화장실 변기가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지도 모른다. 절수는 기술이 아니라 습관과 제도의 결합에서 시작된다. 이제는 복잡한 기술개발보다 단순한 제도 하나가 더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다. 변기에 문신을 새기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가짜 절수형 제품은 사라지고 진짜 절수형 변기만 남는다. 이는 물 절약뿐 아니라 에너지 절감, 탄소 감축, 기후위기 대응까지 이어지는 가장 단순하고 확실한 해법이다. 토데헌이 외치는 “물먹는 하마 퇴출, 탄소를 잡는 하마로의 전환”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다. 작은 문신 하나로 시작되는, 시민과 제도가 함께 만드는 새로운 물문화의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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