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56홈런·양준혁 은퇴에 떠들썩했던 그 시절...'삼성왕조' 스며 있는 노포를 찾다 [스춘 현장]

박승민 기자 2025. 10. 20.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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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팍' 시대 10년, 대구시민운동장은 어떻게 변했나
시민운동장 야구장, 내외야 좌석 철거 후 산책로로 리모델링
종합운동장도 리모델링 후 대구IM뱅크파크로 개명
사회인야구장으로 규모가 축소된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의 현재 모습. (사진=스포츠춘추 박승민 기자)

[스포츠춘추=대구]

삼성 라이온즈가 홈 장을 대구 수성구의 삼성라이온즈파크로 옮긴지 어느새 10년이 되어 간다. 지난 2016년 3월 라이온즈파크가 개장하기 전까지 삼성의 홈구장은 복구에 있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이었다.

삼성이 라이온즈파크로 거처를 옮긴 뒤 시민운동장 주변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종합경기장은 지난 2019년 축구전용구장으로 개축되며 대구IM뱅크파크로 개칭, K리그 대구FC의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야구장은 내야와 외야 좌석을 철거하고, 남은 관중석을 축소한 뒤 아마추어 전용 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라이온즈파크에서 SSG 랜더스와 삼성 라이온즈의 13년만 포스트시즌 맞대결이 개최되고 있는 와중, 13년 전 SK 와이번스와 삼성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맞대결이 열렸을 시민운동장의 오늘날 풍경이 궁금해졌다. 스포츠춘추가 그 흔적을 쫓아 대구시민운동장으로 향했다.
시민운동장 야구장 옆에 자리잡고 있는 대구IM뱅크파크. (사진=스포츠춘추 박승민 기자)

근방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눈에 띄었던 건물이 대구IM뱅크파크였다. 새롭게 리모델링된 깔끔한 외형이 인상적이었다. 그 화려한 위용 뒤에 어딘가 허전해진 야구장이 있었다. 과거 관중이 들끓던 내야와 외야 좌석은 사라진 지 오래. 그 자리에는 산책로와 벤치가 조성돼 있어 경기장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아마추어 경기를 준비하는 스태프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평일 늦은 오전이라는 시간 때문인지, 과거의 위용을 잃어버린 시민운동장 야구장 때문인지. 동네는 길거리를 거니는 사람들을 양손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 고요했다. 그리고 시민운동장 건너편에서 분주하게 장사 준비를 하는 한 식당이 있었다. 홀로 시간이 멈춘 듯한 노포에서 시민운동장 야구장의 찬란한 과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우연한 발길을 들였다.

이날 첫 손님이었던 기자는 식사와 더불어 조심스레 취재 요청을 드렸다. 잠시 고민이 이어지더니 이야기보따리가 풀리기 시작했다. 우연히 찾은 식당이었지만 "과거 삼성 선수단과 야구장을 찾는 기자단이 종종 회식을 하던 장소였다"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식당 내부에 놓여 있는 감사패와 사인볼. (사진=스포츠춘추 박승민 기자)

삼성 팬들의 발걸음도 오랜 기간 오갔다. "이 동네에서 오래 했어요. 거의 수십 년"이라는 말에 프로야구 원년 시절도 기억하는지 묻자 "그때부터 장사를 했었다"라고 말했다. 가게 곳곳에는 삼성의 레전드인 이승엽 전 감독의 사인을 필두로 삼성 구단에서 받은 감사패와 사인볼들이 전시돼 있었다. 

다만 야구와 관련된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동네가 옛날보다는 덜 시끌벅적하다. 야구하던 때에는 길가에 전집부터 치킨집까지 쭈욱 늘어서 있었는데..."라며 과거를 회상했다. 이어 "매출도 예전만 못하다. 야구장 떠난 뒤에는 동네 사람들과 단골 장사로 계속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승엽의 56호 홈런을 앞두고 잠자리채를 들고 시민운동장 야구장을 찾은 관객들. (사진=삼성)

동네가 시끌벅적하던 몇 순간들도 여전히 생생하다. "2003년인가, 이승엽이 홈런 때렸을 때. 그때 난리 났지요, 사람들 다 잠자리채 들고." 2003년 이 전 감독은 시즌 56호 홈런을 때려냈다. 이는 2025년 현재에도 KBO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이다. 당시에는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이었다. 이승엽의 56호 홈런이 임박하자 시민운동장의 외야는 잠자리채를 든 사람들로 빼곡했었다. 이승엽의 56호 홈런볼을 잡기 위해서다. 당시 홈런볼은 구단 이벤트 대행업체 직원이 잡아 구단에 기증했고, 답례로 3000만 원 상당의 황금공을 받았다.

또 하나의 순간은 '양신' 양준혁의 은퇴식이다. "양준혁 은퇴할 때도 사람들이 바글바글 난리 났었죠." 삼성의 영원한 10번으로 남아있는 양준혁은 명실상부 삼성의 레전드다. 2010년 9월 19일 열렸던 양준혁의 은퇴 경기 선발 투수는 당시 SK 와이번스(현 SSG) 김광현이었다. 공교롭게도 김광현의 데뷔 경기에서 프로 첫 피홈런을 남긴 타자가 양준혁이었는데, 양준혁의 마지막 경기에 선발로 나선 것이다. 
은퇴식에서 삼성 팬들을 향해 큰절을 올리는 양준혁. (사진=삼성)

삼성이 0대 3으로 SK에 뒤지고 있는 9회 말 무사 주자 없는 상황, 양준혁이 프로 마지막 타석에 들어섰다. 상대 투수는 송은범. 경기장에는 어느 때보다 큰 "위풍당당, 양준혁"이라는 외침이 울려 퍼졌다. 2볼에서 낮은 쪽 패스트볼을 받아진 양준혁의 타구는 2루수 방면으로 힘없이 흘러갔고, 마지막 타석 평범한 땅볼임에도 전력 질주했던 양준혁에게 양 팀 팬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경기 종료 후 은퇴식에서 양준혁은 "팬 여러분 모두를 사랑합니다"라며 감동적인 메시지와 함께 관중석을 향해 큰절을 올렸다. 경기 종료 후 시민운동장에 빗줄기가 쏟아졌지만 누구도 경기장을 나서지 않았다.

왕조 시절을 지키던 '끝판대장' 오승환의 은퇴 소식에 다소 놀라기도 했다. "그 오승환이, 서울서 학교 다니다 일로 왔잖아. 선동열 감독 땐가. 아이고, 은퇴했어요?" 그의 기억에는 갓 프로에 들어왔던 어린 투수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할 텐데, 이제는 마지막 최고령 선수로 남은 뒤 끝내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는 사실에 감회가 새로웠을 터.

동네가 가장 시끌벅적하던 시절은 "그 4년 연속 우승할 때예"라고 말했다. 2011년~2014년, 삼성은 4년 연속 통합우승을 달성하며 '삼성 왕조' 시대가 열렸음을 만천하에 알렸다. 다만 그때의 한국시리즈 우승이 여전히 삼성의 마지막 우승으로 남아있다. 지난 2024년 정규 2위를 차지한 삼성은 플레이오프에서 LG 트윈스를 누르고 한국시리즈에 진출했지만, KIA 타이거즈를 잡아내지 못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거로 옮기고 나서는 우승 한 번도 못 했잖아"라며 내심 서운한(?) 티를 내기도 했다.
삼성은 2014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4년 연속 통합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뤘다. (사진=삼성)

그 시절로부터 많은 변화가 일었다. 여전히 대구FC의 홈 경기가 열리지만, 축구의 특성상 경기 빈도가 야구에 비해 적다. "예전에 야구할 때는 달에 15경기씩 했습니다...포항구장 생기고 나서는 13번씩 하고 그랬는데, 축구는 해봐야 달에 두 번 합니다"라고 말했다. 축구 경기가 열리는 날에도 동네를 찾는 사람들은 야구 경기가 있던 예전만 못하다. 

가게를 찾는 사람들의 면면도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 종합경기장일 때는 훈련하러 오는 학생들이 오고 그랬는데, 축구장 바뀌고 나서는 훈련을 딴 데서 해서 못 옵니다"라며 아쉬움 털어놓은 뒤 "가끔 야구장에서 중학생들 경기하고 하면 밥 먹으러 오기도 합니다"라고 말했다. 삼성은 떠났지만, 여전히 어린 야구인들이 이곳을 찾는다. 
현재 시민운동장 야구장에는 '대구 야구의 역사와 전설들'이 새겨져 있다. (사진=스포츠춘추 박승민 기자)

과거 삼성이 이곳에 머물던 시절이 그립진 않냐는 질문에 "그런 생각도 들고 하지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옮긴 뒤에는 선수단과 기자단의 발길이 거의 끊겼다. 이따금 양준혁 이사장은 이곳을 찾는다고. "차라리 한쪽을 주차장으로 싹 만들고 야구장을 여기에 새로 지었으면 어땠을까 싶어요"라는 솔직한 마음도 내비쳤다. 삼성을 쫓아 수성알파시티역 인근으로 가게를 옮길 생각은 없었냐는 질문에 "거기 가면 6개월밖에 장사를 못 합니다"라고 말했다. 

야구장이 사라진 뒤로 허한 마음이 들기보다는 "그냥 몸이 하는 거죠. 매일 하던 대로 하는 거지"라 대답했다. 매일 하는 장사 때문에 개장 10년을 앞둔 라이온즈파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훌륭했던 식사를 마친 기자가 감사 인사를 전하고 가게를 뜨려 하자, "와줘서 고마워요"라는 따뜻한 인사를 돌려받았다. "대구에 오게 되면 꼭 다시 들르겠습니다"라는 약속과 함께 가게를 뜨는 그 순간에 보았던 그의 눈빛에는, 시민운동장과 삼성이 함께했던 34년의 세월이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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