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명언과 가짜 뉴스 시대... '굿뉴스'가 전하려한 것들

유정렬 2025. 10. 1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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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넷플릭스 영화 <굿뉴스>

[유정렬 기자]

지난 17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한국 영화 <굿뉴스>는 실화를 모티프로 한 블랙코미디다. 1970년 3월 31일, 일본 극좌 단체 적군파 소속 청년 9명이 일본항공 351편(요도호)을 납치해 비행기를 북한으로 향하게 했다. 세계적 충격을 불러온 이 사건은 냉전시대의 긴장과 이념 대립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건으로 기록됐다.

납치범들은 북한행을 요구했으나, 기장의 기지로 인해 비행기는 일시적으로 일본 공군기지에 착륙했다. 일본 정부는 협상을 통해 일부 승객을 구출했지만, 결국 비행기의 북한행을 막지 못했다. 이에 한국 공군은 김포공항을 북한 공항으로 위장해 착륙시키는 '더블 하이재킹' 작전을 펼친다.

그러나 납치범들이 미국 민항기를 발견하면서 작전은 탄로 났고, 결국 일본 정부는 인질 교환 조건으로 교통부 차관을 대신 태워 보내며 사태를 마무리했다. 북한은 범인 전원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고 인질과 항공기를 송환했다.
 1970년에 일어난 JAL 요도호 납치사건
ⓒ 넷플릭스 [굿뉴스] 갈무리
위의 내용은 실제 사건에 대한 요약이자, 동시에 영화 <굿뉴스>의 핵심 서사이기도 하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실제 사건에서 영감을 받았지만, 모든 인물과 상황은 허구'라는 자막을 내보낸다. 하지만 그 문장이 무색할 만큼 현실과의 싱크로율은 높다.

역사적 사실과 영화적 허구가 교묘히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경계가 놀라울 만큼 모호하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서부터가 허구인지, 시청자는 계속 혼란스러워진다. 감독의 의도인지 알 수 없지만, 이러한 장치들은 영화 전반에 촘촘히 배치되어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트루먼 셰이디가 말했다는 다음의 명언이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그러나 이는 존재하지 않는 가짜 명언이다. 트루먼 셰이디라는 인물 또한 허구다. Truth(진실)와 Shady(그늘)를 결합한 이름으로, 감독이 만들어낸 상징적 장치에 불과하다. 명언이 아니라 허언인 셈이다.

이 가짜 명언을 내뱉는 인물 또한 흥미롭다. 영화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인물, 설경구가 연기한 아무개다. 이름도 신분도 불분명한 그는 군사정권의 해결사이자 충실한 하수인이다.
 '아무개'를 능청스럽게 연기한 설경구 배우
ⓒ 넷플릭스 [굿뉴스] 갈무리
아무개는 권력의 뒤편에서 모든 일을 기획하고 조작한다. 사실을 왜곡해 국가가 원하는 진실만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임무다. 언론이 통제되고 기사가 조작되던 1970년대, 그는 정체가 모호하지만 분명히 '권력의 개'로 기능한다.

트루먼 셰이디의 거짓 명언이 등장할 때, 필자 역시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다. 그런 말이 있나 보다, 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하지만 영화가 끝난 뒤 검색해 보고 나서야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됐다.

일어난 사실, 약간의 창의력, 그리고 믿으려는 의지. 이 세 가지가 결합하면 거짓말도 진실이 된다.

영화에서 아무개가 말한 것처럼, 관객인 나조차 그 함정에 빠졌던 것이다.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기는 순간, 거짓은 진실의 얼굴을 하고 우리의 시선을 가린다.
진실을 숨기고 '좋은 소식'이라 포장하던 시대가 있었다. 군사정권 시절 '보도지침'이라는 이름으로.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무개는 과연 영화 속 허구로만 존재하는 인물일까. 안타깝게도 그는 여전히, 더 교묘한 방식으로 우리 곁에 살아 있다.
 명언도 사람도 감독이 지어낸 허구다
ⓒ 넷플릭스 [굿뉴스] 갈무리
바로 '가짜 뉴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화 속 아무개가 마지막에 '최고명'이라는 이름을 얻듯, 오늘날의 아무개는 실제처럼 눈에 보이는 훨씬 정교한 모습으로 현실 속에 존재한다. 권력과 결탁한 일부 언론이 만들어내는 조작된 뉴스들이 바로 그것이다.

알고리즘을 타고 확산되는 가짜 뉴스들은 현시대의 아무개이자 또 다른 트루먼 셰이디다. 그런 의미에서 <굿뉴스>라는 제목은 역설적으로 들린다.

영화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언론에는 권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진실의 빛으로 나아가라고. 그리고 대중에게는 무분별한 소비자가 아니라 비판적 수용자가 되라고 말이다. 그래야만,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우리는 비로소 '진짜 진실'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SN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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