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EC은 국격 회복의 기회다, 그러나… [신율의 정치 읽기]

먼저 국내 정치 환경을 보자. 이번 APEC 기간에는 국정감사가 진행된다. 이번 국정감사는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첫 번째 국정감사다. 본래 국정감사는 ‘야당의 시간’이다. 국정감사는 문자 그대로 행정부에 대한 감사이고, 그래서 행정 권력을 쥐고 있는 여권은 방어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국정감사는 양상이 다르다. 여당이 국정감사의 주제를 ‘내란 잔재 청산’으로 설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당이 이런 식으로 ‘내란 잔재’를 청산하겠다고 나서면, 국제사회는 ‘내란’이 아직 종식되지 않았다는 인상을 가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정부가 의도한 대로 정상 국가임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목표는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일단 현재 3대 특검이 가동 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특검이 가동 중이라는 것은, 특검이 어느 수준까지 내란을 청산할 수 있을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상황임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단 특검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내란 특검이 가동 중인데 국회, 특히 여당이 나서서 자신들도 청산하겠다고 나서면, 이는 수사에 혼선을 줄 수 있을 뿐 아니라 내란 청산이 정쟁의 수단이 됐다는 인상을 줄 수 있어, 국제사회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혼란한 상황이라는 인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정부도 난처한 입장에 처해질 수밖에 없다. 여당이 책임 있는 정치 세력으로서 현명한 처신을 하려면, 일단 이번 국정감사에서 내란 잔재 청산의 기치를 내걸고 총공세를 벌이는 것은 자제해야 한다. 특검 수사가 끝난 이후에도 청문회 개최와 같은 방법을 통해 얼마든지 수사의 미진한 부분 혹은 공백을 채울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번 국정감사에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상당수의 재벌 총수 그리고 CEO들이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줄소환’된다. 그중 대표적인 인물이 최태원 SK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 등이다. 그런데 이들을 APEC 기간에 부른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들의 욕심보다는 국익을 앞세웠어야 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여기서 말하는 국익이란 APEC의 성공적 개최를 의미한다. 증인으로 호출된 인물 면면을 보면, APEC과 같은 외교 무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인물들인데, 이런 측면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최태원 회장은 ‘APEC CEO 서밋 코리아 2025’의 의장을 맡고 있고, 정용진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 가족과 상당히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런 인물들을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호출’한다는 것은, 정치권이 도대체 APEC이라는 행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묻고 싶게 만든다.
우리나라 외적인 환경도 호의적이지 않다. 일단 북한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결속은 강화되는 모양새다. 얼마 전에 있었던 북한의 열병식에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 서열 2위인 인사들이 참석했다는 것을 보더라도 북·중·러의 결속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에 맞설 수 있는 한·미·일의 결속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다. 현재는 일본 총리가 누가 될지조차 안갯속이다. 극우, 강경 보수 성향인 것으로 알려진 다카이치 사나에는 자민당 총재가 되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일본의 야당들이 연합해 자신들 중에서 총리를 배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한일 관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특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 우리 입장에서는 일본과의 협력이 절실한데, 지금과 같은 상황은 우리 입장을 난처하게 만들기 충분하다.
국방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한·일 간의 협력이 필수적인데, 이것도 어떻게 될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밀착하는 북·중·러에 대항하는 우리의 카드는 점점 불투명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만일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면 문제는 달라질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에게 그러한 관심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APEC을 보더라도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리나라 체류 시간이 일본 체류 시간보다 짧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은 26일과 27일 양일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를 방문한다. 아세안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서다. 그 이후 27일부터 29일까지는 일본을 방문한다. 그 후 29일 오전에 우리나라를 방문하게 되는데, 이날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같은 날 혹은 다음 날 한중 정상회담을 하고 곧바로 출국한다는 설이 유력하게 대두됐었다. 그런데 이마저도 불확실한 상태에 빠졌다. 미·중 정상회담의 성사 가능성마저 매우 불투명해졌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유는, 미국과 중국 사이의 관세 협정이 어긋난 상황에서 중국이 희토류 수출 통제를 강화하려 하고 있어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트럼프 대통령 방한 일정이 무박 1일이 되든 1박 2일이 되든,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의 참석은 어렵다는 점이다. 애초에 우리 정부는 미·중 정상회담은 물론이고,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의 회담 성사도 막연하게나마 기대했던 모양인데, 트럼프-김정은 회담은 고사하고 트럼프 대통령의 APEC 정상회담 참석조차 불투명해졌으니 상당히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행동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두 가지다. 첫째, 과거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일본을 순방할 때는 ‘일정의 균형’을 고려했는데, 이번에는 그러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분명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모종의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메시지란 미국이 우리 정부에 한미 동맹 관계가 안정적이지 않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려 했다는 것이다.
둘째, 현재 진행 중인 한미 관세 협상에 대한 압박으로 우리나라 일정을 짧게 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우리의 희망대로 관세 협상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쨌든 트럼프 대통령이 빠진 상황이 되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APEC 정상회의의 주빈인 것처럼 비치는 상황이 초래될 수 있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진다. 만일 시 주석이 그러한 점을 노리고 이번 회의를 반미 연대라는 의미를 부여하려 시도한다면, 우리 정부의 전략은 더욱 꼬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재명 대통령을 지지했든 안 했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관점에서 모든 국민은 APEC과 같은 행사에는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 모두가 정부의 처지를 이해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31호 (2025.10.22~10.28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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