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특유재산’→‘盧비자금 기여’→‘불법’ 파기…고법, 분할액 재산정

최태원(65) SK그룹 회장과 노소영(64)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이 ‘세기의 이혼’으로 불린 건 천문학적인 재산분할·위자료 액수 때문만은 아니다. 최 회장의 SK그룹 지분 형성에 장인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기여했는지가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르며,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 최 회장의 ‘옥중서신’ 등 현대 정치·경제사의 주요 장면들이 증거로 소환됐기 때문이다.
1심 “노 관장, SK 형성에 기여했다 보기 어려워”…혼인전 특유재산 인정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은 1심까지는 통상적인 가사 사건처럼 흐르는 듯했다. 노 관장은 최 회장이 보유한 그룹 지주사 SK㈜ 주식 중 50%와 계열사 주식 일부, 부동산 등 약 1조3000억원 규모의 재산 분할을 청구했다. 일반적인 부부의 이혼 소송과 마찬가지로 최 회장이 SK 지분을 포함한 재산을 형성·유지해온 데 대해 아내인 노 관장의 기여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그러나 1심 법원은 SK 주식이 재산분할 대상이 되지 않는 ‘특유재산(特有財産, 혼인 전부터 가진 고유 재산)’이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노 관장이 주식 형성과 유지, 가치 상승에 실질적으로 기여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내조와 가사노동만으로는 주식과 같은 사업용 재산을 분할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일부 계열사 지분과 부동산·퇴직금·예금 등만 분할해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665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2심서 “최 회장, 장인 노태우 덕 봤다” 비자금 300억 SK형성 기여 인정

2심에선 완전히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이 사돈인 최 전 회장이 회사를 키우는 데 도움을 줬다고 봤다. 재판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최종현 전 회장의 보호막이나 방패막이 역할을 하며 결과적으로 (SK의) 성공적 경영 활동에 무형적 도움을 줬다”고 했다. SK 주식을 비롯한 최 회장의 재산이 모두 분할 대상이 되며 재산분할 액수는 1조 3808억원까지 뛰었다. 1심 분할액의 20배가 넘는 액수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의 전신인 선경에 유입됐다고 판단한 게 결정적이었다. 재판부는 김 여사가 보관해 온 50억원짜리 약속어음 6장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제공의 증거로 인정했다. 김 여사가 1998년 4월과 1999년 2월 작성한 메모에 ‘선경 300’이 각각 기재돼있는 것, ‘채권’이라고 적힌 대봉투 안에 들어 있던 ‘선경 300’이라고 적힌 소봉투에 어음 6장을 보관해온 점 등이 근거가 됐다. 최 회장 측은 항소심 판결 후 기자설명회를 열고 “1995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조사 때도 300억원은 나오지 않았다”며 “300억 원을 받은 사실이 없다”고 반박했다.
대법에 증거로 등장한 ‘육성 녹음’ ‘옥중 서신’

2심 판결에 불복해 상고한 최 회장은 최종현 선대 회장의 육성 녹음파일을 법원에 제출하며 맞불을 놨다. 녹음에는 “사돈 힘을 빌리는 건 일절 피했다”는 취지의 발언이 포함됐다. 최 전 회장이 SK텔레콤의 전신인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한 뒤 1995년 “시장 가격에 비싸게 샀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도 제출했다고 한다.
반면 노 관장은 최 회장이 SK 분식회계 사건으로 구속됐던 2003년 보낸 옥중 서신을 증거로 제출했다. 편지에는 “SK텔레콤 사외이사들이 면회 왔다”며 그룹 경영 활동에 이야기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노 관장은 이를 근거로 자신이 최 회장에게 경영적 조언을 했으며, 그룹 성장에 유·무형의 기여를 했다고 주장했다.
양측은 상고심에서 초호화 변호인단을 꾸리며 만전을 기했다. 최 회장 측은 사법연수원을 수석 수료하고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법원행정처 사법지원실장 등을 지낸 홍승면 변호사(사법연수원 18기)를 영입했다. 법무법인 율촌에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출신인 이재근(28기)·민철기(29기)·이승호(31기)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노 관장 측 대리인단에서는 법원장과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 전 의원(13기) 등이 소송대리에 나섰다.

1년 3개월의 심리 끝에 16일 대법원은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법으로 되돌려보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노 전 대통령이 최종현 선대 회장에게 300억원을 지원했다고 보더라도, 이 돈의 출처는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 재직하는 동안 수령한 뇌물로 보인다”며 이를 ‘불법 원인 급여’라고 판단했다. 비자금이 불법인 이상, ‘불법의 원인으로 재산을 급여한 때에는 그 이익의 반환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민법 746조에 따라 이를 토대로 한 분할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구체적인 재산분할액은 향후 파기환송심에서 새로 정해질 전망이다. 대법원은 2심에서 판결한 위자료 20억원은 그대로 확정했다. 이혼 사건의 위자료 최대치가 통상 1억원으로 여겨지는 점을 고려하면 전례없는 규모다.
이날 재판 후 최 회장 측 이재근 변호사는 “SK그룹이 노태우 정권의 불법 비자금이나 지원을 통해 성장했다는 데 대해, 대법원이 명확하게 그것을 부부 공동재산의 기여로 인정하는 건 잘못이라 선언했다”며 “환송 후 재판에서 최선을 다해 임하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최서인 기자 choi.seo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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