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 몰아내고 왕이 된 두 삼촌, 그 잔혹한 평행이론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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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벌거벗은한국사2 조선세조 고려숙종 |
| ⓒ TVNSTORY |
10월 14일 방송된 tvN STORY <벌거벗은 한국사2>에서는 '왕위찬탈 평행이론, 조선 세조 VS 고려 숙종'편을 다뤘다.
조선 7대 국왕 세조는 아버지 세종(4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이유이고, 왕자 시절에 받은 군호는 수양대군이었다. 똑똑했던 수양대군은 어릴 때부터 유교 경전을 전부 암기했고, 음악, 문학, 의술, 무예 등 다방면에 재능이 많았다고 한다. 세종은 이러한 아들 수양대군의 능력과 인품을 모두 인정하여 다양한 나랏일을 맡길 정도로 신임했다.
1450년 세종이 승하하고 장남인 문종이 그 뒤를 이었다. 하지만 병약했던 문종마저 2년 만에 승하하면서 왕위는 문종의 아들이자 수양대군의 조카 단종이 이어받게 된다. 아버지 문종은 조선 건국 이래 최초로 적장자(정실 부인이 낳은 맏아들) 출신의 왕이었던 데다, 심지어 그 아들 단종은 태어날 때부터 왕세손-왕세자-왕위 등극 루트를 거치며 조선 역사상 전무후무한 역대급 정통성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단종이 왕위에 등극할 당시의 나이는 12세에 불과했다. 어머니 현덕왕후와 할머니 소헌왕후 등도 모두 일찍 사망하면서 어린 왕을 보필하여 수렴청정을 해줄 대비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는 야심을 감추고 있던 숙부 수양대군에게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
문종은 죽음을 앞두고 고명대신(顧命大臣, 임금의 마지막 당부 유언을 받드는 신하)들에게 아들 단종의 보필을 맡겼다. 고명대신 중 하나였던 김종서는 북방개척(4군 6진) 등의 많은 업적을 남긴 명신이었다. 세종과 문종은 모두 용맹하고 충성스러운 김종서를 남달리 신임했다고 한다.
김종서와 원로대신들은 어린 단종을 보필하여 대신 국정을 이끌며 인사권을 대행하는 황표정사(黃票政事)를 시행하는 등, 막강한 권한을 휘두르게 됐다. 이에 수양대군을 비롯한 종친세력들은 김종서와 대신들이 왕권보다 강한 권력을 휘두른다고 반발했다. 또한 김종서는 수양대군을 비롯한 종친들의 국정 개입을 막으며 견제하려 했기에 양측의 갈등은 점차 깊어졌다.
1453년 10월 10일, 수양대군은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켜 김종서를 비롯한 다수의 대신들을 모두 학살하고 단숨에 권력을 장악했다. 김종서는 수양대군의 정치적 야심을 견제하기는 했지만, 설마 노골적인 쿠데타나 왕위찬탈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양대군은 은밀히 소수의 사병을 모아 기습과 정치적 테러로 정적들을 단숨에 제거하는 변칙적이고 폭력적인 수단을 선택했다.
하루아침에 단종의 친위세력과 반대파를 모두 제거한 수양대군은 모든 요직을 겸임하며 권력을 장악했다. 수양대군은 이 모든 것이 어린 조카 '단종을 보호하기 위한 행위'였다고 정당화했다.
하지만 수양대군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왕위 찬탈이었다. 강력한 정통성을 지닌 조카를 강제로 밀어낼 명분이 없었던 수양대군은, 단종이 아끼던 측근들을 하나둘씩 제거하며 끊임없는 압박으로 단종이 스스로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갔다. 1455년 8월, 결국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양위하고 상왕으로 물러나면서 조선 7대 국왕인 세조가 등극하게 된다.
하지만 단종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조 2년인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이 발각되어 실패로 돌아간다. 단종은 역모에 개입한 죄로 상왕에서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강원도 영월도 유배를 떠나게 된다. 그리고 약 4개월 뒤 단종은 영월에서 17세의 나이로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단종의 최후에 대해서는 조선왕조 실록마다 기록이 다르다. <세조실록>에는 단종이 자살했다고 기록했지만, 후대의 <선조실록>이나 <숙종실록>에는 '세조가 보낸 사약을 마시고 죽었다'고 기록되어있다. 심지어 야사에는 사약을 거부한 단종을 강제로 목을 졸라 살해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결국 세조가 왕위에 눈이 멀어 조카 단종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단종은 200여년이 지난 19대 숙종 시대에 이르러서야 묘호를 회복하고 국왕으로 복권된다.
그로부터 360년 전 고려 시대에는 이미 세조보다 앞서, 너무도 닮은 꼴의 인생을 살았던 평행이론 같은 인물이 존재한다. 바로 고려 15대 국왕 숙종이다.
숙종은 고려 11대 문종의 3남으로 본명은 왕희이며, 왕자 시절에는 '계림공'으로 불렸다. 숙종 역시 세조와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총명함과 뛰어난 능력을 인정받았다. <고려사>에는 아버지 문종이 "나중에 왕실을 부흥시킬 사람은 바로 너구나"라고 극찬했다고 한다.
아버지 문종에 이어 형인 순종과 선종이 차례로 고려의 왕위를 계승했다. 고려 왕실 역시 적장자 승계원칙이 우선이기는 했지만, 조선과는 달리 형제간의 왕위계승도 가능했다. 왕위에 오를 명분이나 정통성 자체가 없었던 세조와는 달리, 숙종은 아버지 문종 시절부터 유력한 왕위계승 후보로 꾸준히 거론되었다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선종은 이미 능력과 재주를 인정받은 동생 대신 자신의 아들인 헌종에게 보위를 넘겼고, 숙종을 견제했다. 이에 숙종은 내심 큰 한을 품게 된다. 1094년 선종이 승하하며 헌종이 11세의 나이로 뒤를 이었다.
당시 헌종의 상황은 단종과는 또 달랐다. 어린 왕을 지켜줄 왕실 어른들이 부재했던 단종과 달리, 헌종은 어머니인 사숙태후가 있어서 섭정을 맡았다. 하지만 헌종은 단종만큼의 강력한 정통성이나 확실한 친위세력이 없었다. 심지어 헌종은 매우 병약하여 건강마저 좋지 않았다. 이에 고려 조정은 불안한 왕권을 둘러싸고 분열과 혼돈에 휩싸이게 된다.
세조에게 최대의 정적이 김종서였다면, 숙종에게는 이자의가 있었다. 그는 선왕 선종의 후궁인 원신궁주의 오빠로서, 왕실의 외척이자 유력한 문벌귀족이었다. 이자의는 자신의 조카이자 헌종에게는 이복동생이 되는 한산후 왕윤을 옹립하려 했기에, 유력한 왕위계승후보였던 숙종과 대립했다.
1095년 숙종은 이자의가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측근이었던 소태보에게 군사를 일으켜 이자의를 먼저 공격하게 한다. 이자의 세력은 숙종의 기습에 허무하게 무너지고 만다. 고려역사에서는 이를 '이자의의 난'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난이 일어나기 전에 숙종의 선제공격을 당하여 살해당했기에, 이자의가 정말로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했는지는 역사의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세조가 계유정난을 일으킨 명분으로 김종서에게 역모의 혐의를 뒤집어씌웠던 것을 감안하면, 숙종 측의 날조일 가능성도 있다.
숙종 역시 세조처럼 정변 이후 반대파를 제거하고 고려의 권력을 장악했다. 조카 헌종은 숙부의 압박을 버티지 못하고 왕위를 넘겨주게 된다. 단종과 마찬가지로 양위 2년 만인 1097년 헌종은 불과 14세의 어린 나이로 끝내 세상을 떠나게 된다.
헌종의 죽음 역시 여러 가지 석연치 않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하지만 세조에게 사실상 살해당한 정황이 명확한 단종과는 달리, 소아당뇨를 앓은 것으로 추정되는 헌종은 어릴 때부터 병약하여 언제 세상을 떠나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나마 헌종은 단종처럼 폐위되지는 않았고, 태상왕으로 남아 마지막 명예를 지킬 수 있었다.
하지만 숙종은 즉위 후 고려의 15대 국왕임에도 공식문서나 왕의 도장에 스스로를 '14대'로 규정하면서 조카 헌종의 존재 자체를 아예 부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조카의 왕위를 찬탈했다는 정치적 오명을 피하고 싶었던 의도로도 해석된다. 이를 볼 때 헌종이 설사 더 오래 살았다고 해도 단종같은 운명을 피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높다.
세조와 숙종은 재위 기간 동안 나름의 치적도 남겼지만 잔혹한 업보와 한계로 인하여 후대에는 정통성 없는 권력찬탈이라는 오명을 피하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조카를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던 '피의 군주' 였던 두 사람은 모두 말년에 들어서는 지난 과거를 은근히 후회하는 모습도 드러냈다.
<세조실록>에 따르면, 세조는 "내가 차례를 어기고 외람되게 비기(왕위)를 이어받았으나 이제 다시 생각하니 부끄럽기 그지 없다"라는 회고를 남겼다고 한다. 세조는 말년에 극심한 피부병에 시달리며 고통받다가 세상을 떠났는데, 야사와 민간에서는 이를 가리켜 억울하게 죽은 단종의 원혼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나왔다.
<고려사>에 따르면 숙종 역시 죽음을 앞두고 "왕이 된 이후 하루라도 편안한 날이 없었으며, 걱정과 피로가 병이 되어 드디어 오랫동안 낫지 않을 지경에 이르렀던가?"라며 회한에 잠겼다고 한다.
묘하게도 세조와 숙종 모두 사망 당시의 나이도 똑같은 52세였다. 정당하지 못하게 차지한 권력은, 결국 지울 수 없는 고통과 후대의 낙인이라는 오명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은, 두 사람의 평행이론이 우리에게 남기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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