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스타일 춤추는 할아버지... 영포티 논란, 참 씁쓸하다

김소리 2025. 10. 15. 1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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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리의 세상을 읽다] 다양한 개성을 표현하는 중년들, 폄하당하지 않았으면

정의를 이야기하면 그래도 들어주는 세상이라고 아직 믿고 있다. 사람들은 내게 순진하다고들 하지만, 순진한 사람들이 잘 사는 사회야말로 정의로운 사회가 아닐까? 법은 기득권을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겉으로는 약자를 위한다고 표방하는 것이 또한 법이기에 부조리한 세상을 포기하지 않고 법으로써 할 수 있는 것들을 해나간다. 그 과정에서 마주한 세상의 모습을 이곳에 전한다. <기자말>

[김소리 기자]

파리에서 이번 연휴를 보냈다. 어느 날씨 좋은 날, 세계적인 현대무용단인 '아크람 칸 무용단' 공연을 보기 위해 파리 시립 극장에 갔다. 공연 시작 시간보다 한 시간 정도 빨리 도착했는데, 극장 문이 닫혀 있었다. 극장 앞 돌 벤치에 앉아서 기다리기로 했다. 몇 분 뒤 편안한 옷차림의 어느 할아버지가 닫힌 문을 열려고 시도하다가 실패한 후 내 옆에 와서 앉았다.

할아버지에게 영어로 언제 문을 여는지 아냐고 물어보면서, 할아버지와의 스몰토크가 시작됐다. "저 공연을 보러 온 거냐, 나도 그거 보러 왔다", "어느 나라에서 왔니" 등의 기본적인 대화부터 시작했는데, 중간에 우리가 앉아 있던 벤치에 페미니즘과 관련한 문구가 낙서 돼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함께 사진을 찍으며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까지 나누었다.
▲ 우리가 앉아 있던 돌벤치 할아버지가 먼저 사진을 찍으며, 내게 기재된 문구의 내용이 ‘알몸이든, 베일을 썼든 모두 다 페미니스트’라는 뜻이라고 설명해주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에 대한 대화로 이어졌다.
ⓒ 김소리
티켓 오피스가 열려 표를 사고 주변을 둘러본다. 한쪽에서는 학교에서 단체 관람하는 청소년들로 북적이고 있었고, 또 한쪽에서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인 2030 관객들, 또 조금 전에 대화한 할아버지 연령대의 관객들이 두루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와중에 한국 뉴스를 보던 중 '영포티'에 대한 여러 기사들을 보았다. '영포티'는 본래 자식을 낳고 가족을 위해 사는 것에만 집중했던 과거의 중년상과 달리 개성을 잃지 않고 다양한 자기계발과 취미생활, 도전을 하는 중년의 의미로 사용됐다. 하지만 요새는 '젊어 보이려고 애쓰는 중년'으로 폄하하는 '멸칭'이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이야기하며, 실제로는 보수화된 40~50대 남성들에 대한 분노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있었다.

후자의 정치적인 배경에 대해서는 충분히 이해가 갔지만, 중년층이 다양한 개성을 발현하는 것을 폄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려스러웠다. 그간 개성 없이 납작한 모습으로만 인식되던 중년들이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스스로를 표현하기 시작한 것은 긍정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춤은 젊은이들의 전유물? 아닙니다

외국, 특히 서구권 국가를 여행하며 항상 느끼는 것이 있는데, 바로 예술·놀이 등 다양한 취미생활의 향유층이 폭넓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공연예술을 좋아해 여행을 가면 꼭 그곳의 공연을 찾아보는 편인데, 앞서 극장 앞에서의 일화처럼 무용 공연장이든, 재즈클럽이든 우리와 달리 젊은층 뿐 아니라 중년, 노년 등 다양한 연령대의 관객들을 볼 수 있다.

또 나는 취미로 현대무용을 배우고 있기도 하여 종종 여행지의 무용 학원에서 무용 수업을 듣기도 하는데, 이곳 풍경도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뉴욕이나 런던 등에 있는 대형 댄스 센터에서 발레, 현대무용, 힙합 등 다양한 클래스를 들으며 가장 놀랐던 점은 모든 클래스에 중년은 물론이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자연스럽게 꼭 있다는 점이었다. 프리스타일 춤을 추라는 선생님의 요구에 당황하는 나와 달리, 자기 필(feel)에 취해 춤추던 할아버지의 모습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수강생이 2030 여성이 주인 우리나라 무용 스튜디오나 댄스 학원에서는 결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춤뿐 아니라 많은 놀이, 취미생활의 영역이 젊은이들의 전유물처럼 돼 있는 것이 우리나라의 모습이다. 신나는 일은 젊을 때나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중년에 대해서는 주책이라거나 철이 없다는 꼬리표를 붙인다. '영포티' 논란도 비슷한 맥락에서 생각해 보게 된다. 중년이 되면 재미있는 활동과 자기표현을 자제하고 얌전히(?)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데, 어째 우리나라에서는 재미있고 신나는 활동은 젊은이들만이 누리는 것으로 되어 있을까.

목수정 작가는 그의 저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에서 우리 사회에 대해 아래와 같이 이야기한 바 있다. 개인적으로 위 책에서 참 좋아하는 대목이다.

중년 남성의 콩닥거리는 연애는 차단되어 있지만, 매춘은 무한히 허락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끊임 없이 부추기는 사회.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이고 흥미로운 관계 맺기인 연애를 특정 시기, 특정 연령층의 전유물로 규정하고 비좁은 김밥의 틀 속에 밀어 넣어버린 사회. 어쩔 수 없이 옆구리로 빠져나오는 비명과 분출되는 욕구들은 모두 어두운 음지 속에 처넣어 버리는 사회. 이 숨막히는 사회적 모순을 비집고 우리가 건강하고 싱그러운 연애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사랑에 한정하여 이야기한 것이지만, 스스로의 삶에서 개성 있는 존재로 살고자 하는 욕구로 넓게 치환하여 읽을 수도 있다. 다양한 활동과 관계맺음, 경험의 기회를 차단하는 사회에서 건강하고 싱그러운 삶을 지속할 수 있는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다양한 중년의 모습을 기대하며
 12일 전남 구례군 마산면 화엄사 보제루 앞에서 열린 제2회 지리산대화엄사 구례군 라인댄스 동호인대회에서 참가팀 동호인들이 라인댄스를 추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모두 10개팀이 참가해 경연을 벌였다
ⓒ 연합뉴스
이제 드디어 중년의 문턱을 넘은 뒤에도 자신의 개성과 취향대로 사는 세대가 등장했구나 싶었는데, 돌연 조롱거리로 전락하여 씁쓸하다. 자기 취향과 방식대로 살아가는 중년을 젊어 보이려고 애쓴다고 평가하는 것은, 특정 행위를 젊은이들의 전유물로 보는 것을 전제하므로 타당하지 않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우리 각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앞으로는 '영'(young)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필요도 없었으면 좋겠다. 각자의 포티, 피프티, 식스티를 살아갈 뿐이니 말이다.

연령, 세대 간 구분 짓기는 소통을 가로막기도 한다. 여러 공간과 활동에서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과 평등한 모습으로 함께 하는 경험은 서로 간 소통의 기회를 높인다(사실 '평등한 모습으로'가 중요한 부분이긴 하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은 결국에는 서로에 대한 몰이해와 그에 기반한 혐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앞서 나와 대화를 나눈 할아버지는 나이가 80살이 다 돼간다고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낯선 예술, 놀이 공간에서 연령과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하는 경험을 자주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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