쉰 넘어 인간 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3가지... 한번 보실래요?

신정섭 2025. 10. 15.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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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가 인근서 시작한 주말 농막 생활... 일상을 바꾸면 인식 또한 달라집니다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신정섭 기자]

저는 요즘, 일주일 중 닷새는 도시에서 생활하고 이틀은 농촌에서 규모가 작은 밭을 일구는 오도이촌(五都二村)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2022년 3월에 충남 부여군 세도면의 한 시골 마을에 농막을 설치했으니, 어느덧 3년 조금 넘게 세월이 흘렀네요.

처음엔 시간 내기가 쉽지 않아 한 달에 한두 번 정도만 갈 수 있었고, 농사일이 워낙 낯설어 시행착오를 거듭했습니다. 감자 심는 시기를 놓쳐 씨감자 구하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녔고, 옥수수 모종 간격을 너무 넓게 두어 이내 풀과의 전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하지만 서당 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이젠 제법 적응이 된 것 같습니다.

4~5년 전쯤 아내가 제천에 있는 '한겨레 건축학교'에 입소해 농막을 직접 지은 적이 있는데, 프로그램을 이수한 '학생'에게 우선권을 준다는 얘길 듣고 덜컥 농막을 사기로 했습니다. 부여군 세도면 한 시골 마을에 홀로 계시는 장모님도 자주 찾아뵐 겸, 큰맘 먹고 처가 인근에 땅을 사서 주말을 이용한 텃밭 농사를 시작한 거죠.
▲ 농막에서 바라본 텃밭 풍경 몇 년 전에 시골 마을 한적한 곳에 농막을 설치해 텃밭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집 막둥이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네요.
ⓒ 신정섭
지금 생각하면 참 잘한 결정인 것 같습니다. 농막의 넓은 창을 활짝 열어 젖히면 자연이 그대로 쏟아져 들어옵니다. 모기와 파리, 벌레가 같이 들어오긴 해도 이젠 그 동거가 익숙해져 괜찮습니다. 우리 집 반려견 둥이는 비좁은 도심 주택을 벗어난 게 좋은지 덩달아 신이 나서 들판을 맘껏 뛰어다닙니다.

오도이촌이 선물한 3가지 감수성

저는 오늘 농사가 아닌, '감수성'에 관해 얘기하려고 합니다. 오도이촌(五都二村)의 삶이 제게 3가지 감수성을 선물로 주었다고나 할까요. 나이가 쉰을 훌쩍 넘어가니, 인간답게 살려면 감수성 세 가지는 꼭 갖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바로 문학 감수성(literary sensitivity), 생태 감수성(ecological sensitivity), 그리고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입니다.

'문학 감수성'은 고등학교 때 야간 자율학습 마치고 집에 돌아와 책상 앞에서 시를 끄적일 만큼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어쩌다 영어 교사로 살고 있지만, 어릴 때부터 국어를 좋아했고 특히 시가 가슴에 와 닿았던 적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래는 지난 5월 농막 부근에서 찍은 지칭개꽃 사진인데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전 첫눈에 반해 짧은 시 한 편을 썼습니다.
▲ 들판에 핀 지칭개꽃 지난 5월 하순, 농막에서 가까운 들판에 지칭개꽃이 수줍게 피어났는데, 자태가 너무 고와 시 한 편을 썼습니다.
ⓒ 신정섭
지칭개

어디에나 있지만
아무도 찾지 않는다

강렬한 엉겅퀴보다
풀죽은 표정이 좋아서

가슴 한 비탈에 널 심는다

눈물 나는 날 들어봐도 될까?
너의 고요한 맥박 뛰는 소리를

문학 감수성은 부끄러운 수준이나마 뒤처지지는 않는 것 같아 안심입니다. 자연과 생태계의 상호 관계를 섬세하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태도를 일컫는 '생태 감수성'은 어떨까요? 엉겅퀴와 지칭개, 갓꽃과 유채꽃, 고들빼기꽃과 씀바귀꽃을 구별할 줄 아는 것은 생태 감수성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은 텃밭이나마 농사를 짓고 워낙 사진 찍는 걸 좋아하다 보니, 원래 없던 생태 감수성이 최근 들어 생겨난 것 같습니다. 타고나는 게 아니라 길러지는 것이니까요. 저는 대전의 한 작은 집에 사는데 마당에 조그만 텃밭이 있습니다. 철 따라 괭이밥꽃, 채송화, 쑥부쟁이, 오이꽃, 부추꽃 등이 피어납니다. 얼마 전 비가 그친 후 찍은 쑥부쟁이 사진 한 번 보세요. 연보랏빛 꽃잎이 아름다워 눈을 떼기가 어렵습니다.
▲ 도심 우리 집 텃밭에 핀 쑥부쟁이 대전 도심의 우리 집 작은 텃밭에 연보랏빛 쑥부쟁이가 아름답게 피어났습니다.
ⓒ 신정섭
혹시 '벼바심 내다'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단언컨대 한 번도 못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국어사전에 없는데 제가 만든 말이니까요. 곡식의 낟알을 떨어서 거두는 일, 즉 타작을 우리 조상들은 '바심'이라고 불렀는데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도시 어른 중에도 이 말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벼바심(나락바심)은 벼 타작의 옛말입니다.

조마조마하여 마음을 졸이는 것을 '조바심 내다'라고 하는데요. 이 말의 어원이 조 타작이라고 알려져 있어요. 조를 수확할 때는 이삭을 잘라 한꺼번에 두드려서 털어야 하는데, 두껍고 질긴 껍질에 겹겹이 쌓여 있어 탈곡이 여간 힘든 게 아니랍니다. 농부들에게는 조바심이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것이죠. 그래서 '조바심 내다'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해요.

요즘 때 아닌 '가을장마'로 비가 자주 내립니다. 벼바심이 한창이어야 할 들판에 농부들의 한숨 소리가 가득합니다. 비가 많이 내려 제때 벼를 수확할 수가 없으니 걱정이 태산입니다. 때를 놓치면 애써 농사지은 나락이 쓰러지기도 하고 썩어 버리기도 하니까요. 조바심이 아니라 벼바심을 내는 농부들이 늘고 있습니다.

성인지감수성은 현재진행형

이제 마지막으로 '성인지감수성(gender sensitivity)' 얘기를 할게요. 성 평등의 시각과 성별 차이에 대한 이해를 갖추고 일상생활에서 성차별적인 요소를 인지하는 능력을 의미하는 성인지 감수성은 많이 접해 본 말일 텐데요. 솔직히, 머리로는 아는데 일상에서 실천하기는 쉽지 않죠. 저는 뒤늦은 가부장 제도의 그늘 아래 막내아들로 자라 성인지감수성이 떨어지는 편이었는데요. 몇 년째 이어진 오도이촌의 삶 덕택에 성 평등 인식이 나름 높아진 듯합니다.

맞벌이 부부임에도 그동안 집안 살림은 아내가 주도적으로 해왔는데, 요즘은 어느 정도 분담은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아내가 감자 아욱국을 끓인다고 하면 아욱과 감자를 깨끗이 씻고 다듬는 일은 제 몫입니다. 텃밭 수확물을 나르고 차에 싣는 일은 당연히 제 일이죠. 삼겹살 수육, 된장국, 미역국 정도는 이제 능숙하게 요리할 자신이 있습니다. 며칠 전에는 잘 익은 늙은 호박을 따서 손질했습니다. 편자(編者)를 닮은 늙은 호박, 참 예쁘죠? 요즘 아침 식사는 호박죽입니다.
▲ 편자를 닮은 늙은 호박 농막 앞 텃밭에서 잘 익은 늙은 호박을 따다가 정성스럽게 손질하였습니다. 요즘 아침 식사는 호박죽입니다.
ⓒ 신정섭
지난 주말에는 장모님 댁 감나무에서 장대를 이용해 월하감을 땄습니다. 집에 가져와서 감을 깨끗이 씻어 꼭지를 손질하고, 소금과 물을 1대 5의 비율로 섞어 끓인 소금물을 섭씨 50~60도 정도로 식혀 유리병에 부었습니다. 이불을 덮어두면 이틀 정도 후에 맛있게 우린 감을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아내한테 배워 저 혼자 해낸 일이죠.
▲ 소금물로 감 우리기 소금과 물을 1대5의 비율로 섞어 한 번 끓인 후 50~60도 정도로 식혀 유리병에 붓고 이불을 덮어두면 이틀 정도 후 월하감이 우려집니다.
ⓒ 신정섭
오도이촌 생활이 3대 감수성을 키웠다는 말 조금은 공감이 되나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이렇게 조금씩 애쓰고 노력하면 머지않아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이 될 것도 같습니다. 일상을 바꿔야 인식이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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