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실히 남다른 시각, 홍명보 감독의 '본선 시뮬레이션'… 울산 우승시킨 비법을 대표팀에도?

김정용 기자 2025. 10. 15. 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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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감독.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 김정용 기자= 홍명보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은 행정가 생활을 거쳐 지도자로 돌아온 뒤부터 전술보다는 선수단 정신력 관리에 특히 신경 쓰고, 이 분야에서 역량을 보였다. 월드컵을 준비하는 대표팀에서도 자신의 강점을 발휘하기 위한 작업 중이다.


14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하나은행 초청 축구 국가대표팀 친선경기를 치른 대한민국 남자 축구대표팀이 파라과이에 2-0 승리를 거뒀다. 앞선 10일 브라질에 0-5로 대패했던 상처를 어느 정도 씻었다. 나아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도 24위 이내로 방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26 FIFA 북중미 월드컵 조추첨에서 2번 포트에 들기 위한 최소한의 과제를 달성한 셈이다.


홍 감독은 파라과이전을 마친 뒤 이번 2연전을 특이한 시각에서 정리했다. '시뮬레이션 이론'이다. "이번 소집은 시뮬레이션을 하는 소집이었다. 월드컵 1차전과 2차전을 시뮬레이션하는 것이었다. 월드컵 1차전에서 강한 상대를 만난 뒤 2차전을 치르는 상황의 시뮬레이션이다."


한국과 같은 조에 1번 포트 팀이 하나는 들어오게 되는데, 개최국이라면 고맙지만 더 높은 확률로 FIFA 랭킹 최상위권 강팀을 만나게 된다. 이 경기에서는 패배할 가능성이 높다. 패배하더라도 무너지지 않고 다음 경기를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한데 이 상황을 예행연습하면서 월드컵 본선에서 받을 압박에 대한 면역력을 키웠다는 것이다.


한동안 유행했던 심리학 용어 회복탄력성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다. 홍 감독은 "오늘 선수들을 칭찬하고 싶은 건 경기내용과 득점보다도 어려운 1차전 패배 후 약 3일 동안 파라과이전을 준비하면서 그 패배를 극복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심리적 압박을 미리 준비한다는 측면에서는 3년 전 홍 감독이 썼던 표현 '멘털 리허설'이기도 하다. 홍 감독은 울산HD 감독이던 2022년 K리그1 우승에 활용한 비장의 무기 중 하나로 '멘털 리허설'을 꼽은 바 있다. 당시 울산은 전북현대전을 비롯한 우승의 분수령에서 유독 약해지는 모습이 문제였다. 홍 감독은 시즌 막판 전북전을 2개월에 걸쳐 준비했다. 특히 FA컵과 K리그1에서 전북을 연달아 만나자, FA컵을 리그에 대한 정신적 준비 기회로 활용했다. FA컵에서 패배했지만 준비한 전술과 전략을 다 수행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자신감을 얻었다. 이어진 리그 경기에서 마침내 전북을 잡아내면서 천적관계를 끊어냈다. 울산은 이때를 시작으로 K리그 3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이 성공 공식을 대표팀에도 적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홍 감독은 울산 시절부터 훈련은 코치들에게 많이 일임하고 선수들의 정신적인 부분을 더 신경썼다. 지금 대표팀 훈련장에서도 훈련은 주앙 아로소 코치가 주도하는 모습이 많고, 홍 감독은 훈련 모습을 유심히 보면서 정신적인 컨디션을 확인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다만 울산 시절처럼 시뮬레이션 혹은 리허설이 성공할 거라고 장담할 순 없다. 울산 시절 리허설은 실전에서 진행됐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평가전에서 이뤄졌다. 평가전에서는 앞선 경기에서 패배했다고 해서 뒤 경기에 엄청난 압박을 받진 않는다. 월드컵 본선에서는 대패 후 탈락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솟구치기 때문에 압박이 심해지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 시뮬레이션으로서 가치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김민재(왼쪽). 서형권 기자
손흥민. 서형권 기자

다만 홍 감독의 시뮬레이션 이론과 별개로, 선수들은 이미 회복탄력성을 갖추고 있는 듯 보인다. 브라질전에서 공을 밟는 실수로 실점 빌미를 내줬고 수비수로서 5실점에 상처를 입었을 김민재는 파라과이전에서 활발한 수비로 여러 번 위기를 넘긴 뒤 어떻게 정신적으로 회복했냐고 묻자 풋 웃으며 "그냥 하는 거죠"라고 답했다. "저를 비롯해 저번 경기 실수했던 선수들이 있다. 다음 경기에서 운동장에서 어떻게 보여주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라고도 말했다. 시뮬레이션이든 뭐든 선수들이 꺾이지 않는 마음을 지녔다는 건 확인했다.


패배 후 연패에 빠지지 않는 건 본선행의 기본 조건이다. 한국은 원정 16강을 두 번 달성했는데, 모두 조별리그 2차전 패배 후 3차전에서는 승리나 무승부를 따냈기 때문에 살아남았다. 특히 2010 남아공 월드컵에서 2차전 아르헨티나전에서 1-4로 대패한 뒤 3차전 나이지리아전을 무승부로 틀어막았기 때문에 16강에 갈 수 있었다.


사진=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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