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의 배신? 이러다 다 망한다

최경영 2025. 10. 14.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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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영의 돈과 시간 이야기] 빚 (1)

국가경제적 관점에서도, 인구 구성으로 봐도, 개인의 재테크라는 측면에서도 앞으로의 몇 년이 나와 한국의 성장·행복을 결정하는 중대한 시기입니다. 자본시장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지만 정치권마저도 부동산 중심의 사고에 매몰되어 있는 상황에서 어디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국인들의 삶의 질이 풍요롭게 될지 함께 생각해 보는 마당이 되었으면 합니다. <기자말>

[최경영 기자]

 영화 <빅쇼트> 스틸컷
ⓒ 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배트맨>의 크리스천 베일, 드라마 <오피스>의 스티브 커렐, 영화 <라라랜드>의 라이언 고슬링, 그리고 기자의 학교 동문 브래드 피트가 나온 영화 <빅쇼트>는 단순히 미국 금융위기 전 공매도를 크게 쳐서(Big Short) 떼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만 있지는 않다.

수많은 금융 지식이 영화 곳곳에 숨겨져 있는데, 그중 현대금융자본주의 원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 거의 맨 처음 나온다.

주택담보채권의 '유동화'

영화에서 묘사된 때는 1979년, 장소는 '살로몬 브라더스' 채권팀 사무실이다. 70년대풍의 발라드(Kiss You All Over by Exile)가 감미롭게 흘러나온다.

지금이나 그때나, 미국도 사람들이 자기 집을 살 때 돈이 모자라면 은행에서 돈을 빌렸다. 은행은 보통 30년짜리 대출을 해주고 사람들은 연 4% 정도의 이자를 낸다. 은행은 30년 동안 4% 안팎의 이자와 소량의 원금상환액을 매달 받겠지. 확정적이다. 그러나 수익이 낮다. 지루하다. 그러나 이게 과거 은행이 했던 주업무였다.

그런데 1979년 이때, 기발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낸 거다.

1. 뭘 30년 만기까지 다 기다려.
2. 30년짜리 주택담보대출들을 이것저것 묶어서 팔아보자. 주식처럼.
3. 잘 팔리네. 안전하네. 수익률도 높아졌어.
4. 그렇지. 누가 자기 집 주택담보대출을 상환하지 않겠어. 안 갚으면 자기 집에서 쫓겨나는데.

지금은 당연하게 들리겠지만 이건 혁명적인 변화였다. 주택담보채권의 증권화, 유동화(Securitization)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채권이 유동화가 됐다는 게 무슨 말인가?

1. 그건 채권이 시간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난다는 뜻이다.
2. 30년 만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이 주식처럼 자기의 채권이나 남의 채권을 사고팔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3. 구로동에 있든, 서초동에 있든, 경북에 있든, 전북에 있든, 아파트를 담보로 은행이 개인에 빌려준 빚을 번들로 묶어서 신용등급을 매기고 사고팔게 됐다는 뜻이다.
4. 얼마에?
5. 가격은 당연히 주택시장상황에 따라, 담보물들의 신용에 따라 달라지겠지.
6. 그렇다면 시장상황에 따라 가격은 매일, 매시간 변동할 것이고.
7. 어떤 금융기관은 싸게 사고, 어떤 기관은 비싸게 팔 수 있다 보니 당연히 위험요소(리스크)가 발생하고.
8. 그렇다면 또 다른 선물옵션(서초구지역 주택채권상품은 1년 후 오를 것 같다, 내릴 것 같다)을 통해 미래의 리스크를 사거나 팔게 되었다는 뜻이 된다.

이렇게 되면 누가 가장 좋을까? 30년 동안 딱 두 차례(처음 빌렸을 때, 만기 상환했을 때)만 거래하다가 하루에도 수십번을 1. 비슷한 신용등급의 담보물들을 함께 모아 2. 다양한 신용등급의 담보들을 함께 모아 3. 미래의 가격에 대한 예측(선물옵션)까지 사고파는 장사를 하게 된 금융기관들이 가장 좋을 것이고.

이런 장사가 가능하도록 허가해 준 정부는 금융거래가 활발해지고 금융기관이 돈을 많이 벌어 세금을 많이 내면 세수가 증가하니 좋고, 개인도 기관처럼 유동화된 투자상품에 투자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좋다.

거대한 '빚'의 세계... 망해도 나만 망하는 게 아니다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어 있는 주택담보대출 상품 현수막.
ⓒ 연합뉴스
단, 전제가 있다.

1. 주택담보대출을 한 누군가가 원금과 이자를 꼬박꼬박 갚아야 하고.
2. 주택의 가격은 꾸준히 오르는 게 좋다.

그런데 어떤 시장이든 가격은 변동한다. 오르거나 떨어진다. 만약 떨어지면? 약간 떨어지는 게 아니고 단기간에 급락한다면? 그때는 일이 굉장히 복잡하게 꼬이게 된다.

채권이 유동화되기 이전의 상황을 상상해 보자.

내가 실업자가 됐다. 주택을 담보로 한 대출이자를 갚지 못하게 됐다. 나는 은행에 이자 납부를 연체하겠지. 그럼 은행은 빚 갚으라고 독촉하다가 돈이 없다고 하면 내 집을 경매로 넘길 것이다. 그걸로 끝이다. 나와 은행, 양자간의 계약이었으니까. 깔끔하다. 나는 망했지만 나만 망하면 됐다.

그런데 채권이 유동화되고, 유동화된 채권을 다시 각종 투자상품으로 묶어 대중에게 팔고, 그 투자상품에 대한 선물옵션시장까지 발달해 있는데 경기침체로 다수가 실업자가 됐다면, 다수가 빚을 못 갚게 됐다면, 다수의 주택이 경매로 넘어간다면, 집이라는 본원적 담보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수많은 집들을 통해 유동화된 증권들과 이 증권들의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베팅한(콜 옵션을 산) 금융기관 전체로 위험이 전이되게 된다. 정부가 달러 빚을 내고 돈을 찍어서 몇몇 금융기관들을 구제하다 보면, 나는 돈을 빌리지 않았는데 전체 사회가 이들의 빚을 떠안게 된다.

최근 20여년간 언론에서 '꼬리가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란 표현이나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란 표현이 자주 나오는 이유는 이런 현상들이 자주 발생할 수밖에 없는 금융자본주의의 구조 속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유동화된 거대한 빚의 세계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결코 빠져나오지 못한다. 빠져나오면 오히려 더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이미 거대한 빚으로 축조된 성이다. 우리는 금융 자본주의의 각종 선진금융기법을 예찬해왔고 이미 빚으로 축조된 성안에 분에 넘칠 정도로 안락하게, 즉 내 소득과는 걸맞지 않게 살고 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빚이 싫으니까 우리를 지켜준 저 성곽 사이 사이의 저 거대한 돌덩어리(빚)들을 다 빼버릴 테야라고 한다면… 성은 당연히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다.

(다음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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