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 빛났지만 무너진 서사... '사마귀' 이상한 킬러세계의 몰락

박성호 2025. 10. 13.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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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영화 <사마귀>

[박성호 기자]

▲ 영화 <사마귀> 메인 포스터 영화 <길복순>에서 보여준 킬러들의 세계를 배경으로 한 새로운 영화 <사마귀>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사마귀>(이태성 감독, 임시완·박규영·조우진 주연)는 전작 <길복순>이 성공적으로 확립한 청부 살인업계 MK 엔터테인먼트 세계관의 첫 스핀오프 작품이다. 이 세계관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MK 엔터라는 거대 기업이 킬러들의 계약과 승부, 심지어 명예까지 관장하는 공상의 사회를 구축해 놓았다. MK 사회는 엄격한 규율 아래 움직이는데, 그 핵심은 두 가지 룰에 있다. 첫째, 회사에서 허가한 살인 의뢰는 반드시 완수해야 한다는 점이며, 둘째는 불만을 품거나 상대를 제거하고 싶을 때 칼을 보내 1대 1 명예 결투를 신청해야 한다는 최소한의 약속이다.

<길복순>은 비록 그들이 속한 세계는 관객이 납득하기 힘들었지만 그 세계만의 룰과 킬러의 삶 사이에서 고뇌하는 주인공 길복순을 통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다뤘던 반면, <사마귀>는 사마귀(한울)와 재이 등 MK의 차세대 에이스 킬러들이 은퇴한 독고 할배와 얽히면서 권력과 명예, 그리고 복잡한 애증 관계를 두고 충돌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니버스를 확장하며 젊은 킬러들의 치기 어린 야망과 폭주에 초점을 맞춘 이 작품이 관객에게 선사한 것은, 화려한 액션의 향연 뒤에 숨겨진 서사의 절망적인 공허함이었다. <사마귀>는 전작의 핵심을 모두 버리고, 오직 '멋'에 대한 집착과 '황당한 감정선'만으로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괴이한 힘을 발휘한다. 그러나 바로 이 점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실패는 다음 작품이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좋은 반례가 되어준다.

모성애의 공백, 대체 불가능한 '보편성'의 상실

여기 저기 이 작품에 대한 반응을 찾아보니 스토리 전개에 공감이 안된다는 글들이 많았다. <사마귀>가 <길복순>에 비해 관객의 공감을 얻지 못한 현상은 전작이 가졌던 대체 불가능한 '보편성'의 상실에서부터 시작된다. <길복순>이 비현실적인 킬러 세계관 속에서 최소한의 영화적 재미와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비결은 바로 길복순의 모성애였다. 길복순이라는 캐릭터는 킬러이면서 동시에 엄마라는 이중생활의 충돌 속에서, 킬러 룰을 어기는 모든 행위에 '딸을 지키기 위한 필연적인 절박함'이라는 보편적인 당위성을 부여했다. 이는 관객들이 아무리 잔인한 킬러라도 그 내면에 있는 인간적인 고뇌에 감정적으로 이입할 수 있게 만든 핵심 장치였던 것이다.
▲ 영화의 주요 스토리를 이끄는 재이와 한울 둘의 관계는 한쪽은 애정으로 한쪽은 경쟁심으로 어긋나 있다
ⓒ 넷플릭스
그러나 <사마귀>는 <길복순>이 남긴 모성애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웠을까? 영화는 '한울의 맹목적인 재이에 대한 사랑'과 '재이의 한울을 향한 열등감과 애증'이라는 다소 피상적인 감정으로 이를 메우려 한다. 문제는 이 사랑과 열등감의 깊이가 관객에게 전혀 와닿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울은 재이를 위해 모든 것을 걸지만, 두 인물 사이의 서사적 유대감은 피상적이고 얄팍하게 그려진다. 영화는 캐릭터의 모든 행동을 단 두 줄의 설정에 묶어버린다. "나는 너를 사랑하니까, 너는 나를 질투하니까"라는 이 단순한 공식이 전부가 되어버린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울의 모든 희생은 숭고한 헌신이 아닌 '이해할 수 없는 집착'으로만 보이게 되고, 재이의 복잡해야 할 감정은 시시각각 변하는 '납득할 수 없는 변덕'으로 전락한다. 영화는 가장 중요한 감정의 축을 허술하게 세움으로써, 이후 전개되는 모든 액션의 의미를 증발시켜버리고 만 것이다.

룰의 파괴, 킬러 세계관의 자가당착

이처럼 허약한 감정선은 킬러 세계관의 핵심 질서인 룰의 파괴와 자가당착으로 이어지며, 관객들의 황당함을 극대화한다. 필자가 <사마귀>를 보며 느낀 가장 큰 불만은 킬러 업계의 '명예로운 규칙'이 너무나도 허무하게 붕괴하는 지점이었다.
▲ 킬러회사 MK의 독고 대표와 수련생 재이 MK에서 킬러 데뷔를 하지 못하고 독고로부터 퇴출 통보를 받고 있는 재이
ⓒ 넷플릭스
<길복순>에서 차민규가 길복순에게 칼을 보내 1대 1 결투를 신청한 것을 떠올려보자. 그 행위는 비록 잔인한 킬러 세계에서도 최소한의 '명분'과 '규칙'이 작동한다는 영화적 약속이자, 킬러들의 존중과 명예를 담보하는 장치였다. 그것이 이 세계관을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하는 핵심이었다. 하지만 <사마귀>에서 한울과 재이가 독고 할배에게 벌인 2대 1 대결 시도는 이러한 영화적 약속을 철저히 짓밟는다. 킬러 업계에서 칼을 보낸다는 것은 1대 1 승부를 뜻하는 상징적인 행위다. 그런데 한울과 재이는 스승에게 2대 1을 강요하며 규칙을 위반하고도 전혀 거리낌이 없다.

더 황당한 것은 한울의 태도다. 그는 자신이 업계의 1인자이자 차세대 리더가 될 자격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그가 보여줘야 할 것은 최고 실력자의 명예로운 승리일 텐데, 정작 그의 행동은 가장 비겁하고 명예롭지 못한 방법을 택한다. 2대 1로 몰아세우면서도 스승을 향한 도리나 킬러로서의 명예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일말의 고뇌조차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그들이 지키려 했던 '새로운 질서'가 결국 '힘 있는 자가 규칙을 무시하는 무자비함' 외에는 아무것도 아님을 스스로 폭로하는 것 같다.

<사마귀>는 규칙이 무의미한 세계를 보여줄 것인지, 아니면 규칙을 어기는 필연적인 이유를 명확히 제시할 것인지 정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관객들은 자조적으로 "말도 안 되는 킬러 세계에 무슨 룰이 있느냐"라고 중얼거리게 될지도 모른다. 영화는 자신이 애써 구축한 세계관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역설적인 성과를 달성했던 것이다.

엔딩의 억지스러운 반복, 서사의 자기 복제와 퇴행

그리고 이 모든 모순은 엔딩의 억지스러운 반복과 서사의 퇴행에서 절정에 달한다. 많은 이들이 이미 지적했듯이, <사마귀>는 <길복순>의 '스승을 제거하고 해방되는 구도'를 억지로 반복하려는 시도에서 방향을 잃었다.

<길복순>의 엔딩을 다시 살펴보면, 그녀는 생존이라는 절박한 동기 아래 자신을 키워낸 스승 차민규의 오더(딸을 지켜야 하는 엄마에게는 불가능한 오더)에 반발하여 최종 결투를 벌인다. 이 대결은 길복순에게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자 '성장'의 통과 의례였고, 관객에게 강력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 반면 <사마귀>의 한울은 어떨까. 그는 독고 할배를 제거할 개인적인 복수심이나 생존의 절박함이 부족하다. 그의 동기는 모호한 '재이와의 미래'와 '권력 장악'에 불과하며, 이 동기가 스승을 죽이는 것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하기에는 너무나 가볍다.

따라서 한울이 독고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행위는 캐릭터 내면의 필요라기보다는, 마치 '길복순처럼 엔딩을 만들어야 한다'는 플롯의 강요처럼 느껴진다. 주인공이 스승을 죽여야 하는 정당한 이유를 찾는 대신, 그저 스타일리시하게 칼을 휘두르는 모습만 반복하는 서사의 동기 없는 퇴행이야말로 이 작품의 진정한 비극이다. 전작의 구도를 빌려왔을 뿐, 그 구도를 뒷받침하는 감정적 무게와 필연성을 담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비교 우위의 상실: 다음 작품을 위한 위대한 교훈

결론적으로, <사마귀>는 K-킬러 유니버스에서 <길복순>에 비해 아쉬운 지점을 명확히 보여준 사례다. 이 영화는 한 가지 단순하지만 강력한 진리를 관객에게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액션 스타일과 간지 나는 대사만으로는 훌륭한 영화가 될 수 없다는 것 말이다.

한울은 천부적인 재능을 가졌음에도 납득 불가능한 사랑꾼으로 전락했고, 재이는 복잡미묘해야 할 감정선이 마지막 결투 한 방으로 증발해버렸으며, 독고는 그저 새로운 세대의 희생양이 되기 위해 등장한 구세대 빌런에 머물렀다. 이 모든 얄팍한 설정과 붕괴된 개연성에도 불구하고, <사마귀>는 단 하나의 미덕을 남긴다. 그것은 바로 "다음 스핀오프는 절대로 이렇게 만들면 안 된다"는 명확한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것이다.

비록 영화 자체는 황당함의 연속이었지만, <길복순>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의 교훈이야말로 이 유니버스가 나아갈 길을 밝혀주는 위대한 나침반이 되어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이 기사는 네이버 블로그 <드가의 다큐맨터리 이야기>에도 실립니다.필자는 현재 동국대 학부 강의로 방송제작을 강의하고 있으며, 해당 강의에서 모든 스토리의 기본을 형성하는 네러티브의 구성요건과 개연성 있는 네러티브의 조건에 대한 내용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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