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가는 며느리에게 시아버지표 김밥을 싸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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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섭 기자]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일 2박 3일로 여행을 가는데, 강아지를 좀 맡아줄 수 있을까요?" 아내는 "그럼 아침은 집에 와서 먹고 가라"라고 말했다. 무엇을 먹고 싶냐고 묻자 아들은 잠시 고민하더니 "쫄면!"이라고 대답했다.
며칠 전, 큰아들도 같은 대답을 했다. 아내의 쫄면이 유난히 맛있어서일까, 아니면 어릴 적 그 맛의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아마도 엄마의 손맛이 깃든 추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잠시 후 아들이 다시 전화했다. 쫄면 말고 순두부찌개랑 파전을 해달라고 했다. 아마 며느리가 순두부를 좋아해 바꾼 눈치였다.
아내는 아침 8시부터 분주히 주방을 오갔다. 10시쯤이면 아들과 며느리가 도착할 예정이다. 아내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행길 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간식거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캐나다에는 한국처럼 고속도로 안에 휴게소가 없다. 음식을 먹으려면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인근 식당이나 푸드점을 찾아야 한다. 대부분은 주유소 옆의 푸드코트나 샌드위치 가게에서 간단히 끼니를 때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의 풍경이 그리워진다. 따끈한 어묵 국물, 김밥, 핫바, 가락국수 같은 음식들. 그 시절, 여행의 설렘과 '먹는 즐거움'이 함께하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소풍이나 운동회, 가족여행 때도 늘 김밥은 빠지지 않았다. 어머니표 김밥에는 달걀지단, 시금치, 당근, 우엉이 고르게 들어 있었고, 그 김밥은 그 자체로 여행의 상징이었다.
며칠 전 아내와 장을 보며 김밥 재료를 사 두었던 게 떠올라, 나는 주저하지 않고 김밥을 싸기 시작했다. 사실 아들 여행길에 줄 김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 우리 부부가 평상시에 먹으려고 사두었던 재료였다.
김밥을 싸려 하자, 아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당신이 정성껏 싸준 김밥, 혹시 안 가져간다면 속상하지 않겠어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안 가져가면 저녁에 우리가 먹으면 되지 뭐"라고 태연한 척 했다.
나는 밥을 넓게 펴고, 미리 조려두었던 우엉과 시금치, 당근, 계란지단, 맛살을 차례로 올렸다. 돌돌 말린 김밥은 썰 때마다 속 재료가 고르게 드러나, 괜스레 마음이 뿌듯했다. 김밥을 먹기 좋게 썰어 플라스틱 통에 가지런히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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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길에 오를 아들을 위해 김밥을 싸는 아버지의 손길 |
| ⓒ 김종섭 |
요즘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조심스러울 때가 많다. 선물보다 마음과 정성이 중요하다고 말은 하지만, 정작 마음만으로는 부족한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또한 상대의 취향을 먼저 살피는 센스도 필요한 시대다. 그래서일까, 손수 만든 김밥 한 줄이 더욱 귀하게 느껴졌다.
그 안에는 우리 부모의 세월, 그리고 여전히 변하지 않은 사랑이 담겨 있다. 나는 김밥을 싸며, 자식과 며느리를 향한 마음을 천천히 눌러 담았다. 비록 김밥 두 줄에 불과했지만, 그 정성이 여행길의 간식이자 작은 선물이 되기를 바랐다.
아들이 떠난 뒤, 아내가 말했다. "이나마 힘이 있을 때 챙겨줘야 하지 않겠어요?" 나는 식탁 위에 남은 김밥 두 줄을 바라보았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돌봄이 이런 것이 아닐까.' 이제는 그런 마음을 전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겠지만, 오늘만큼은 김밥 안에 담긴 내 마음이 아들 부부의 여행길에서 따뜻하게 전해졌기를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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