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가" 이시바, 전후 80년 만의 이례적 자기반성

박성우 2025. 10. 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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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정부 담화들이 외면한 '문민통제 실패' 정면 지적… 퇴임 앞두고 과거사 반성 내놔

[박성우 기자]

 이재명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지난 9월 30일 한일 정상회담을 위해 부산 누리마루 APEC 하우스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퇴임을 앞둔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10일 과거 일본의 군에 대한 문민 통제 실패를 직접 언급한 '전후 80년 담화'를 발표하였다. 이시바 총리는 이달 중순 열리는 의회 총리 선거 뒤 공식 퇴임할 예정이다.

개인 명의로 발표된 해당 담화에서 이시바 총리는 단순히 전쟁의 참화를 애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왜 일본은 전쟁을 막지 못했는가'라는 구조적 원인을 군의 문민통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하며, 그 책임을 정치·군·언론 전반으로 확장했다.

"역대 전후 담화, '왜 전쟁 피할 수 없었는가' 근본 문제 언급 안해"

이시바 총리는 "태평양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지났다. 이 80년 동안 일본은 일관되게 평화국가로서의 길을 걸어왔으며, 세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힘써왔다"며 "오늘날 일본의 평화와 번영은, 전몰자를 비롯한 수많은 분들의 고귀한 생명과 고난의 역사 위에 세워진 것"이라고 했다.

특히 그는 역대 일본 내각의 담화를 계승한다면서도 "다만 과거 세 번의 담화에서는 '왜 그 전쟁을 피할 수 없었는가'라는 근본적 문제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 전후 70년 담화에서도 일본은 '외교적·경제적 막다름을 무력으로 해결하려 했다. 국내 정치체제가 그것을 제어하지 못했다'고 했을 뿐, 구체적인 분석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지난 전후 담화에서 역대 내각들이 전쟁을 야기한 근본적 원인에 대해선 회피했다고 지적했다.

이시바 총리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이미 일본 정부 내에서도 패전은 필연적임을 인식하고 있었다라면서 "왜 전쟁을 피하는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무모한 전쟁으로 돌입했는가. 왜 국내외의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희생시켰는가"라며 "전후 80년의 이 시점에, 저는 국민 여러분과 함께 이 문제를 생각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군의 문민통제 실패로 의회와 언론도 군 견제 못해... 전쟁의 근본 원인"

담화문에서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근본 원인은 군에 대한 문민통제가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대일본제국헌법 하에서, 군 통수권은 정치로부터 독립된 권한으로 여겨졌다. 그 결과, 정치 즉 문민이 항상 군사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는 문민통제의 원칙이 제도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며 그 결과 군이 정부의 통제를 거부했다고 꼬집었다.

또한 의회와 언론 역시 제 역할을 하지 못했음을 조목조목 짚었다. 이시바 총리는 소위 '반군 연설'로 알려진, 전쟁의 장기화를 비판한 1940년 사이토 다카오 의원의 중의원 연설을 언급하며 "그는 전쟁의 장기화를 비판하며 정부를 추궁했지만, 육군의 압박 속에 296대 7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의원직을 박탈당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언론 또한 책임이 있다"면서 "192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 언론은 제국주의 팽창에 비판적이었지만, 만주사변 이후 '전쟁 보도가 팔린다'는 이유로 전쟁 지지를 강화했다. 언론은 판매 부수를 위해 애국심을 자극했고, 비판적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통제되었다. 결과적으로 국민 여론은 전쟁 지지로 기울었다"고 언론의 책임을 지적했다.

역사 교육 중요성 언급하며 문민통제·과거사 반성 강조

이시바 총리는 전후 일본의 헌정체제를 평가하며 문민통제 제도를 확립했지만 제도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문민통제는 '운용'에 달려 있다. 정치인은 자위대를 통제할 능력과 식견을 가져야 하며, 감정적 결단이 아닌 합리적 판단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휩쓸려선 안 되며 여론의 압력에 굴복해선 안 된다. 자위대 역시 전문집단으로서 정치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의견을 개진해야 한다"면서 "정부, 국회, 군, 언론은 각자의 책임을 자각해야 한다. 전쟁 당시 이 기관들이 각자 따로 움직이며 국가 전체가 방향을 잃은 결과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시바 총리는 역사 교육을 강조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역사로부터 배우는 태도"라며 "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 타인의 주장에 귀 기울이는 겸허함, 그리고 건강한 민주주의와 리버럴리즘이야말로 일본의 근본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위와 억지력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힘이 민주적 통제를 벗어나면, 민주주의는 단 한순간에 붕괴할 수 있다. 반대로 문민이 오판해 전쟁으로 향할 수도 있다"며 "따라서 문민통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전쟁의 비극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 그것이 전후 80년을 맞은 오늘 일본이 세계에 보여야 할 진정한 반성의 자세"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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