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럴파크에 뒤지랴, 한국 '네모' 읍성 가보셨나요?

이영천 2025. 10. 11.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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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한가운데서 생태계를 지키는 언양읍성

조선은 읍성의 나라였다. 어지간한 고을마다 성곽으로 둘러싸인 읍성이 있었다. 하지만 식민지와 근대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훼철되어 사라져 버렸다. 읍성은 조상의 애환이 담긴 곳이다. 그 안에서 행정과 군사, 문화와 예술이 펼쳐졌으며 백성은 삶을 이어갔다. 지방 고유문화가 꽃을 피웠고 그 명맥이 지금까지 이어져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읍성을 찾아 우리 도시의 시원을 되짚어 보고, 각 지방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기자말>

[이영천 기자]

무척 고마운 읍성이다. 곳곳이 허물어져 낮아진 성벽에, 성안 마을은 듬성듬성하며, 관아 터가 미나리꽝 차지가 되었어도 말이다. 우리 도시의 원형을 땅속 어딘가 고이 간직하고 있을 개연성이 높으니, 그래서 더 사랑스러운지 모르겠다. 주변이 온통 도시화로 빼곡함에도, 마치 뉴욕의 센트럴파크처럼 도시 한가운데에서 소나무처럼 독야청청 푸르르니 더욱 그러하다. 지난 9월 하순, 언양읍성을 찾았다.

양산 단층대가 지나는 퇴적층이다. 서쪽은 1000m를 넘나드는 산들이 지붕이라도 되는 듯 우람하게 둘러막았다. 영축산과 간월산, 신불산 등이다. 소위 '영남알프스'라 부르는 산맥이다. 골이 깊으니 물줄기가 세찰 수밖에 없다. 동쪽 역시 낮지 않은 산세다. 울산과의 사이에 문수산이 불뚝하니 말이다.
▲ 언양현(지승) 언양의 산세와 물흐름, 지형이 간략하게 표현된 옛 지도. 네모난 언양읍성이 뚜렷하다. 위쪽에 고헌산이 우측 중하단에 문수산이 표현되어 있고, 울산으로 흐르는 태화강이 양양하다.
ⓒ 서울대학교_규장각_한국학연구원
1968년 2월 착공해 2년 5개월 만에 완공된 경부고속도로가 인근으로 지난다. 대구에서 밀양을 지나 삼랑진에서 부산으로 빠지지 않았다. 당시 권력의 산업 배치 계획과 도시에 대한 안배였을 수 있다. 고속도로는 경주를 빗겨 울산으로 드는 길목 언양을 빠뜨리지 않았다. 예로부터 교통로로써 단층대의 쓸모가 재확인되는 순간이다.

이때 언양과 울주의 봉계가 쇠고기, 정확히는 불고기로 이름을 얻기 시작한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전국에서 모인 인부들의 입맛을 돋워주고부터다. 이런 연유로 언양이나 봉계에서 쇠고기 맛을 비교하면 곤욕을 치르는 수가 있으니, 조심할 일이다.

울산 한가운데를 가르며 흐르는 태화강이 가지산과 오두산, 고헌산 자락에서 발원한다. 3가닥 물줄기가 고헌산 아래에서 합수한다. 골을 타고 흐르다 언양 읍치에 이르러 몸집을 불려 비로소 강의 자태를 선보인다. 고헌산이 뻗어내린 능선이 편평한 평야에 이르러 화장산을 오뚝한 꽃망울처럼 맺혀 놓았다. 언양읍성이 화장산을 기둥처럼 붙여 잡고, 너른 평지에 네모나게 앉았다. 그래서 한때는 '헌양현'이기도 했다.
▲ 언양읍성 미나리꽝 맑은 물이 찰랑거리며 흐르는 동문 근처에, 미나리꽝은 여전히 푸르다.
ⓒ 이영천
고헌산 줄기가 만들어낸 작은 물줄기가 화장산 가까이 이르러 태화강으로 흘러든다. 언양천이다. 너른 들판을 적시며 흐르는 읍성의 젖줄이다. 언양천 맑은 물을 끌어다 해자를 채웠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성 밖으로 개울처럼 물이 흐른다. 여전한지 모르겠으되, 언양 특산품이라면 쇠고기와 더불어 단연코 미나리다. 어느 곳을 가더라도 찬으로 미나리가 같이했다. 아직도 성안으로 언양천 물을 끌어와 미나리 농사를 짓는다니 그저 고맙기만 하다. 옛 읍성에서 가장 중요시 여긴 물의 쓰임이 얼마나 치밀했는가에 시선이 가 닿는다.

우리 도시의 원형

우리 도성과 읍성은 중국의 그것을 원본으로 삼았다. 다만 규모 등에 있어 중국과 똑같이 적용할 수 없는 한계가 농후했다. 왕궁을 중심으로 사방 산세를 사신(四神)의 상징인 좌청룡, 우백호, 남주작, 북현무로 보았다.

왕궁 동쪽은 봄, 남쪽이 여름, 서쪽은 가을, 겨울은 북쪽으로 여겼다. 문도 이에 따랐다. 경복궁의 건춘문과 영추문이 각각 동문과 서문이 된 까닭이다. 또한 도성 안 왕궁에서 어디건 동궁(東宮)은 후계자인 세자의 거처였다. 만물이 피어나는 봄을 왕세자에 비유했기 때문이다.
▲ 언양읍성 언양읍성을 보여주는 안내판. 남문 근처 이전한 초등학교 자리가 객사와 관아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터다. 성을 두른 해자의 물길과, 성안으로 흐르는 물길도 잘 그려져 있다.
ⓒ 이영천(서문_안내판)
중국의 그것을 받아들이는 한편, 우리 산하에 맞는 법식도 따로 마련했다. 풍수지리의 핵심 역시 사람이 살기 좋은 땅을 택하는 데에 방점을 찍었다. 바람을 품고 물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기본적인 생활은 물론 삶의 바탕이던 농업 생산력이 우수한 곳이라는 의미다.
이런 측면에서 언양읍성의 입지는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자리다. 성을 쌓은 취지가 비록 왜구의 침략 방어가 으뜸이었다 할지라도 말이다. 정확한 네모다. 남원읍성처럼 평지성의 정형이다. 사방의 성벽 한가운데 문루를 두었다. 각 문루에서 반대편 문루를 향해 성안으로 가로가 뻗었다.
▲ 성안 4거리 4대 문루에서 각기 반대편 문루를 잇는 길이 읍성 한가운데에서 교차하는 곳. 곧은 길이, 서문과 동문을 잇는 길이며 옆으로 물이 흐른다.
ⓒ 이영천
직선의 곧은 길은 아닐망정 대체로 격자형으로 중심에서'十'자로 교차한다. 옛 지도를 보면 대체로 관청과 객사가 남쪽에 뭉쳐있음을 볼 수 있다. 모름지기 그 밖의 곳엔 민가와 농토가 조화롭지 않았을까?

비상 시 민관이 하나로

주변을 살펴보아도 산성이 눈에 띄지 않는다. 범서면 굴화리 어디에 산성이 있었다고 하나, 거리가 제법이다. 읍성과 산성으로 연계된 우리 전통의 방어 체계에서 살짝 빗겨 있다. 까닭이 있을 터이다. 왜구 등이 침범해 오면, 주변 백성이 성 안으로 몰려들어 집단 방어 체제로 전환하였다.
▲ 읍성 북벽 반나마 낮아진 언양읍성의 북벽. 남은 성벽이 그나마 가지런하다. 멀리 서쪽으로 지붕 같은 '영남 알프스'가 웅장하다.
ⓒ 이영천
임진왜란의 파상 공세엔 이마저 무용지물이었지만 말이다. 왜군의 한 갈래가 양산 단층대를 통과해 경주를 침탈했다. 이때 언양읍성이 무너지는 참화를 겪었으니, 백성인들 온전했을까. 이를 광해군 때 다시 쌓았다.
언양읍성은 그 평면 배치나 성벽 축조, 방어 시설 등에서 조선 시대 평지형 읍성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를 일찍이 1960년대 사적지로 지정함으로써 도시화의 위협을 비껴간 것도 큰 행운이라 여겨진다.
▲ 서쪽 성벽 성벽을 이용해 집들이 담이나 기단(基壇)으로 활용한 모습. 이런 이유로 성벽이 헐려 나가지 않은 역설을 보여 주는 희귀 사례다.
ⓒ 이영천
성벽 축조가 매우 과학적이다. 성벽을 쌓기 전에 바닥 기초를 다졌다. 흙을 파내고 말뚝을 촘촘히 박거나 잔자갈을 깔아 지반을 튼튼히 했다. 이 위에 돌로 성벽을 쌓았다. 성벽 곳곳에 안쪽으로 길게 뻗어 들어온 장대석을 놓아 흙으로 뒤채움했다. 성벽이 쉽게 무너지지 않게 방비한 장치다.
성벽 바깥 바닥은 바닥 기초가 빗물에 휩쓸리지 않게 1.5∼2m 너비로 판석을 깔았다. 성벽은 지대석을 놓고 30cm 뒤로 물린 지점에서 시작되게 쌓았다. 바닥에서부터 점차 돌의 크기를 줄여가면 세워 쌓기와 눕혀 쌓기를 번갈아 가며 엇물렸다.
▲ 언양읍성 남문 1/3 정도 복원된 남쪽 성벽과 문루(영화루) 및 옹성. 남문 밖은 일제 강점기부터 도시화가 진행되었다.
ⓒ 이영천
성의 한 변이 370∼380m다. 전체 둘레는 1520m이고, 현재 복원된 남문 주변 성곽 높이가 4.85m다. 해자는 성벽에서 2∼3m 떨어져 있었다. 너비 5m에 깊이는 약 2m다. 해자를 발굴해 보니 뾰족한 말뚝이 촘촘하게 박혀있었다.

도심 생태계의 중심으로

고속의 교통 시설이 언양을 통과한다. 옛 역참 자리에 KTX 울산역이 들어섰다. 그런 면에서 어쩌면 땅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역참과 고속철도의 역할이 다르면 얼마나 다르겠는가.
▲ 언양읍성(1954년)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언양읍성을 촬영한 항공사진. 평야가 제법 넓다. 네모난 읍성의 4대 문에서 뻗은 옛 길과, 남쪽 태화강 변으로 형성된 시가지에서 뻗은 신작로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 국토정보플랫폼
역사와 시간이라는 거인이, 언양읍과 삼남읍·삼동면을 주머니 속 구슬처럼 여겨 고이 남겨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공업화가 극에 이르러 울산이 공해에 시달리게 되면, 산소통 역할이 맡겨질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언양읍성(2022년) 경부고속도로와 KTX 등이 지나는 지금의 언양. 시가지 한가운데 센트럴파크처럼 네모난 읍성이 오롯하다. 사시사철 물이 흐르고 바람이 불어, 도심 환경을 지켜내는 생태계 보고다.
ⓒ 국토정보플랫폼
반면, 언양읍성 주변이 초고층으로 개발될 개연성 또한 늘 열려 있다고 본다.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아니 지금까지 진행된 도시화만으로도 매연 등 '부(負)의 외부효과'가 무겁게 짓누르는 현실이다.
확산하는 도시화 압력에도 내몰려 있다. 오래된 현재다. 그 압력은 KTX 울산역을 중심으로 이미 일반화하였다. 자본의 논리가 횡행하는 그 거센 힘을 막아낼 자신은 없다. 받아들여야 한다면 제발 제대로 개발되기를 바랄 뿐이다. 환경과 생태계를 이젠 그만 무너뜨리자. 바람과 물의 흐름을 더는 방해하지 말자. 반구대암각화에 저지른 만행을 반면교사로 삼자.
▲ 해자 흔적 어쩌면 해자였을지도 모르는 성 밖으로 여전히 물이 흐른다. 사시사철 흐르는 물이, 생태계를 유지하는 고갱이다.
ⓒ 이영천
이와 같은 상황에서, 도시 한가운데에 메뚜기가 뛰고 물벼룩이 지천인 읍성은 분명 축복이다. 미나리가 자라고 벼가 고개를 숙인다. 바람이 길을 잡고, 물이 졸졸 낮은 데를 찾아 흐른다. 한여름이면 다른 곳보다 몇℃는 낮은 온도를 보일 터다.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뒤질 게 무어란 말인가. 주변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생태적으로는 오히려 그보다 훨씬 뛰어날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휑한 읍성이 그래서 무척 고맙다. 현대 도시는 도시 숲과 바람 길을 만드느라 부산하다. 프랑스 파리는 차도를 줄여 나무를 심고 자전거 길을 닦느라 엄청난 노력과 비용을 치르고 있다. 그 바람에 대기 환경이나 센 강이 부쩍 정화되기는 했지만 말이다.

언양읍성은 이미 그런 모든 걸 갖추고 있다. 조선 시대 우리 도시의 원형이 내쉬는 숨결이다. 미래에 후손이 살아갈 모범적인 도시를 조상들이 마련해 둔 셈이다. 그래서 무척 고맙다. 사랑스러워 고이 간직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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