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그래도 전자전 승부는 모른다 [맞수맞짱]
최근 국내 방산 시장에서 새로운 라이벌이 등장했다. 전자전 무기와 통합체계 제작사로 유명한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이다. 천궁 블록III 체계개발 사업부터 한국형 전자전기 사업까지 정부 발주 사업 곳곳에서 부딪힌다. 두 회사는 본래 치열하게 다투는 경쟁자가 아니었다. 엄밀히 말하면 협력하는 동업자 사이였다. LIG넥스원은 무기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통제체계, 한화시스템은 눈에 해당하는 레이더가 주력이었다. 지대공 미사일 천궁 II와 같이 두 회사가 힘을 합쳐 제작한 무기체계도 꽤 많았다. 그러나 두 회사가 각각 서로가 주력인 분야에 진출하며 양상이 변했다. 육·해·공 전 분야에서 상대방을 넘어서기 위해 사운을 건 대결을 펼치는 중이다.

육·해·공 가리지 않고 격돌
협력사에 가까웠던 두 회사가 변화의 조짐을 보인 것은 지난해 9월 맞붙은 정찰용 무인 수상정 사업이다. 한화시스템은 같은 그룹 계열사인 한화오션과 손을 잡았다. LIG넥스원은 한화오션의 경쟁자인 HD현대중공업과 동맹을 맺었다. 경합 끝에 LIG넥스원·HD현대중공업 컨소시엄이 승리했다. 다만 이때는 LIG넥스원과 한화시스템의 싸움이라기보단,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의 대결 양상에 가까웠다. 직접 얼굴을 붉히며 싸우는 편은 아니었다.
직접적인 ‘라이벌 구도’가 부각된 것은 천궁 블록 III 체계개발 사업부터다. 해당 사업은 북한 미사일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기존 천궁 II 대비 요격 성능, 교전 능력 등을 향상시키는 연구개발 프로젝트다. 국방과학연구소(ADD)가 주관한다.
전작인 천궁 II 개발 당시 LIG넥스원은 교전통제시스템(ECS)과 유도탄 개발, 체계종합 총괄을 맡았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미사일과 발사대를, 한화시스템은 레이더를 제작했다. 즉, LIG넥스원이 개발을 주도하고 한화 방산 회사들이 협력사로 붙는 형국이었다. 그런데 천궁 III 사업에서 한화가 LIG넥스원이 주도하던 판을 깨트렸다. 한화시스템이 LIG넥스원이 맡던 ECS와 체계종합 사업 개발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갑작스레 한화가 도전장을 내밀자, LIG넥스원도 대응에 나섰다. 한화시스템이 개발을 맡았던 다기능레이더(MFR), 발사대에 제안서를 넣었다.
결과는 LIG넥스원의 판정승으로 돌아갔다. 올해 7월 ADD는 천궁 II 개발 구도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체계종합, ECS 등을 노렸던 한화시스템 수주는 실패로 돌아갔다. LIG넥스원도 레이더 사업은 따내지 못했으나, 핵심 사업자 지위를 유지한 덕에 타격은 없었다.
이후 그동안 원만한 사업을 지향하던 한화시스템이 ‘공격적인 수주’와 ‘사업분야 확대’ 기조로 돌아서면서 LIG넥스원이 진출하는 분야마다 맞붙기 시작했다.
올해 8월에는 전투용 무인수상정 자율임무체계 사업서 대차게 맞붙었다. 결과는 HD현대중공업과 손잡은 LIG넥스원의 승리였다. 한화오션과 손잡은 한화시스템은 또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싸움의 무대는 바다서 공중으로 옮겨갔다. 한국군 핵심 전력인 UH60 헬기 성능개량 사업에서 격돌했다. LIG넥스원은 대한항공을 파트너로 택했고, 한화시스템은 한국항공우주(KAI)와 손잡았다. 싸움은 또다시 LIG넥스원의 승리로 돌아갔다. 수리온, 미르온 등 헬기를 개발해 양산하는 KAI가 헬기 성능 사업에서 밀렸다는 점에서 업계에서는 상당한 이변으로 꼽혔다.
한화시스템이 번번히 LIG넥스원에 막혀 수주전을 탈락하자, 아예 한화 측이 LIG넥스원을 대놓고 저격하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발단은 214급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이다.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맞붙었고, HD현대중공업이 사업자로 선정됐다. 사업의 관건은 잠수함 핵심 부품인 ‘기뢰회피 소나’ 확보였다. 한화오션 측은 기뢰회피 소나의 연구개발 업체인 LIG넥스원이 해당 장비에 대한 기술자료와 견적을 HD현대중공업에만 불공평하게 제공했다고 주장했다.
LIG넥스원 측 주장은 다르다. 경쟁사인 HD현대중공업의 보안 벌점 1.8점 때문에 한화오션이 쉽게 수주를 따올 것이라 기대했다고 봤다. 그것만 믿고 기술이 가장 앞선 LIG넥스원을 제외하고 한화시스템을 믿고 컨소시엄을 꾸렸다가 실패했다고 주장한다. 정부 중재로 더 이상 확전이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업체 간 감정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싸움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9월, 1조8000억원 규모의 전자전 항공기 개발서도 LIG넥스원이 승리의 낭보를 올렸다. 한화시스템은 KAI와 컨소시엄을, LIG넥스원은 대한항공과 힘을 합쳐 사업에 뛰어들었다. 방위사업청이 전자전 역량에 중점을 두고 평가한 덕분에 전자전 분야 1위 기업으로 꼽히는 LIG넥스원이 승리했다.

방산 강자 한화시스템 뜻밖의 부진
최근 수주전 성적을 보면 승리의 무게추는 LIG넥스원으로 기울었다는 평가다. 지난해부터 올해 9월까지 6번의 수주전에서 모두 승리한 까닭이다.
승자인 LIG넥스원은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UH60 사업, 214급 잠수함 성능개량 사업 등 고전할 것이라고 예측된 분야에서도 모두 승리를 거뒀다. 한화에 밀려 방산업계 ‘만년 2인자’로 불리던 서로움도 떨쳐냈다.
다만, 6연승에도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한화와 LIG넥스원의 상황이 달라서다. 한화시스템은 방산이 주력이긴 하지만, SI 등 민수(민간사업) 사업 규모도 만만찮다. 방산 수주 실패로 매출이 꺾이긴 했어도 회사 존립을 흔드는 방향으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민수 사업이 뒤를 든든히 받친다.
반면, LIG넥스원은 회사 매출에서 방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다. 사실상 민수 분야가 거의 없다. 방산 매출이 고꾸라지면 곧 회사 실적 전체의 타격으로 이어진다. 방산 경기가 좋을 때 최대한 수주를 해놔야, 수주 가뭄 시기에 버틸 수 있는 체력이 생긴다.
과거 승리에 만족하기보다는 앞으로 있을 수주전에서도 승리하도록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승기를 잡은 LIG넥스원과 달리. 6연패를 당한 한화시스템의 내부 분위기는 최악인 것으로 전해졌다. 계속되는 수주전 패배로 한화시스템 내부 분위기가 상당히 험악해졌다는 후문이다. 방산 업계에서는 ‘한화가 방산업을 독식하려 한다’는 이미지 때문에 한화시스템이 고전하는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한화시스템을 이끄는 손재일 대표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겸직한다. 두 회사는 별개의 회사지만, 대표가 같아 방산 업계서는 ‘사실상 한 몸’으로 본다. 한화시스템이 사업 규모를 키우며 다른 회사와 싸움을 벌일수록, 방산 업계선 ‘한화 독점’에 대한 공포가 커진다. 이는 곧 한화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경계하는 방산당국이나 라이벌 업체들이 LIG넥스원을 택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6연패는 경영진이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사안이다. 한화시스템이 독자적인 회사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현재의 겸직 체제를 개편하고 조직을 정비해야 할 때다”라고 설명했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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