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아름다움이 서동요 타고 'K-문화'로 부활
[김병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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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
| ⓒ 김병모 |
지난 7일, 아침부터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도 있었던 터라 그러려니 했다. 기대의 찬 마음으로 서동과 선화공주가 노닐던 부여 궁남지(사적 제 135호)로 향했다. 궁남지 근처에 이르자 비도 그쳤다. 발걸음도 가볍다. 아름드리 연잎들이 가을바람에 시들고 있었다. 바람 부는 대로 회색으로 물든 연잎이 흔들리는 대로 걸어본다. 사람들도 삼삼오오 궁남지를 걸으며 가을을 즐기고 있다.
바람을 읊고 시를 노래하듯 궁남지를 거닐며 서동과 선화공주가 사분대던 발자취를 느껴본다. 연잎 빈자리에서 물질하는 청둥오리가 귀엽다. 부여 궁남지 연못 가운데 포룡정에서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치지 않는다. 처마에 내걸린 서동요(薯童謠) 현판이 이채롭다. 서라벌 골목 아이들이 서동이 준 마 뿌리를 손에 든 채, 서동요를 부르며 줄 다름질 친다고 씌어있다.
서동요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정을 통하고
서동 방을 밤에 몰래
안고 간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백제 무왕은 궁궐 남쪽 지점에 못을 파고 언덕 주변에 버드나무를 심은 연못, 궁남지를 만들었다. 서동은 왕위(무왕)에 올라 선화공주와 궁남지 주변을 거닐다 포룡정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궁남지 주변에서 펼쳐지는 서동과 선화공주 이야기가 천년이 넘도록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아 있다. 그들의 이야기가 역사일까. 설화일까. 지난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석탑에서 발견된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후가 선화공주가 아닌 사택왕후로 기록되어 있어 역사적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러함에도 유독 청춘남녀들이 궁남지를 많이 찾는다. 그들은 서동과 선화공주가 아름다운 로맨스가 되어 그들의 가슴속에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궁남지를 찾지 않을까. 그리스 신화에서 페니키아 공주 에우로페(Europe)와 제우스가 노닐던 지역이 오늘날 유럽(Europe)이란 용어로 재탄생되고, 신화 속 아스클레피오스 지팡이가 의술의 상징물로 거듭나듯 말이다.
필자는 궁남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등재된 사비 시대(무왕 후반으로 추정) 백제역사유적지구 정림사지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서자 오층석탑이 눈에 확 띈다. 정림사지 오층석탑(국보 제 9호)은 백제 문화의 정수를 보여준다. 정교하면서도 균형미가 있고 조형미를 더해 예술적 감각과 백제 미학을 풍긴다. 전해지는 설(說)에 따르면, 한 가지 소원을 가슴에 담고 탑을 돌면 그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탑돌이다. 달밤에 탑을 돌며 소원을 빌었던 백제인의 흔적을 느낀다. 필자 역시 보름달이 뜬 가을밤에 탑돌이를 해야 할 이유가 있다.
꽃이 피면 지기 마련인가. 그 찬란했던 백제 문화 역시 영원하지 못했다.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이 있던가. 온몸으로 그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 탑만이 외로이 천년을 가르며 휑한 가람(伽藍)을 지키고 있다.
일행은 잃어버린 백제의 아픈 숨결, 찬란했지만 백마강으로 쓸쓸히 사라진 역사가 꽃이 되어 다시 피어나길 바라면서 정림사지를 나온다.
점심으로 먹었던 연잎밥의 향이 아직도 입속에 가득하다. 백마강도 그 찬란했던 백제 문화를 속속들이 알련만 도도히 흐를 뿐, 말이 없다. 다행스럽게 백제 정림사지 오층석탑을 탄생시켰던 찬란한 백제 문화가 궁남지 서동요를 타고 민족의 심장을 두드린다. 1400년 전의 신비, 백제의 미(美)가 K-문화로 부활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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