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가 달라 어려움 겪는 두 자매 얘기, 경험에서 영감 얻었죠"
[이남주 기자]
제21회 미쟝센단편영화제(10월 16일~ 10월 20일)에서 상영하는 단편영화 <자매의 등산>은 코다(CODA. a Child Of Deaf Adult의 약자,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인 언니 미정과 농인(청각 장애가 있어 수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사람)인 동생 은지의 이야기이다.
은지는 결혼을 앞두고 돌연 파혼 통보를 받은 미정을 대신해 예비 형부였던 남자를 혼쭐 내주기로 마음먹는다. 반면, 일을 벌이고 싶지 않은 미정은 출가해 스님이 됐다는 소문이 도는 그를 찾아 막무가내로 등산에 나선 은지에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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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매의 등산> 스틸컷. 등산하겠다는 은지(좌)와 말리는 미정(우). |
| ⓒ 김수현 감독 |
"'서로 사랑하지만 언어가 달라 세계가 다른 두 사람이 서로의 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는 사건을 만들고 싶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일본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했을 때, 프랑스에서 온 친구랑 정말 소중한 우정을 쌓게 됐어요. 일본어로 대화를 했는데 '세상의 반대편에 나랑 똑같은 애가 있었다니!' 할 정도로 잘 통했거든요. 그러다 그 친구가 부모님이랑 통화하는 걸 우연히 듣게 됐는데, 프랑스어 특유의 파열음을 내면서 말을 하는데 성질이 되게 더러워 보이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지금 너무 나쁜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싶더라고요. 근데 그 친구도 제가 한국어로 대화하는 걸 보면 완전 다른 사람 같다고 했어요. 그때 언어가 다르면 세계도 달라진다고 느꼈어요. 이 서로 다른 세계 간에 격차를 메우는 건 우리의 사랑이고 노력이겠구나, 생각했고요."
-이 영화에는 '코다'인 언니와 '농인'인 동생이 등장하는 작품인데요.
"그 후 한국에 와서 배리어프리영화(음성해설과 자막을 삽입해 시각·청각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있게끔 제작된 영화)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됐어요. 그때 '코다'인 분들이 제가 생각했던 '사랑하는 사람과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느껴졌어요. 너무나 사랑하지만 언어가 달라 속한 세계가 다른 두 자매가 서로를 이해하게 되는 이야기. 그걸 <자매의 등산>으로 풀고 싶었던 거예요."
-청인(농인에 대응하여,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장애인을 의미)인 감독으로서 연출할 때 어려운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농인인 동생 은지 캐릭터에 대해 자문을 정말 많이 했어요. 실제 농인분들이랑 수어통역사분들, 코다 분들에게 은지가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라든지, 쓰는 수어에 대해 의견을 구했어요. 어설프지 않고 실제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은지가 선천적으로 귀가 안 들린다는 설정인데, 그렇다면 발화가 이렇게 나오는 게 맞는지, 평소 소통은 어느 정도까지 되는지에 대한 자문들이요. 미리 시나리오 검토도 받고 촬영 후에는 가편집본을 농아인협회 통해서 보여드리기도 했고요. 촬영 전 수어 수업도 다 같이 받았어요. 은지 역을 맡은 심해인 배우와 미정 역을 맡은 강진아 배우 모두 청인이라, 촬영 현장에서도 수어가 어색하지 않은지 봐주는 수어통역사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워낙 잘하셔서 나중엔 할 일이 없다고 하셨죠. (웃음)"
-언니 미정 캐릭터 표현에 있어 어떤 점을 가장 신경쓰셨나요?
"코다인 언니 미정을 표현하는 건 생각보다 수월했어요. '내가 미정이라면 어땠을까?'를 상상하고 표현한 것들을 코다 분들한테 보여드렸을 때 실제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하셨어요."
그는 자문한 코다 분들이 미정의 코어(core)에 대해 공감했다고 말했다.
"농인 가족들과 청인인 세상 사람들 간에 통역을 맡을 때, 단순한 통역가의 역할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문제를 떠안는 사람이 된다는 거예요. 단순히 '이 사람이 화가 났어요'라는 태도로 통역을 하는 게 아니라, 이 사람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내야 하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게 그 캐릭터가 가진 어려움이에요. 많은 코다 분들이 유년 시절에 이런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하더라고요."
-<자매의 등산>의 관전 포인트가 있다면.
"음... 코미디와 드라마요. 제가 점점 더 장르에 치중해 작품을 만들어요. 드라마는 감동이고, 코미디는 웃겨야 한다. 이 둘만 해내면 된다는 생각으로 노력했어요. 연출을 할 때 가장 신경 썼던 것도 편안한 마음으로 이 이야기가 받아들여졌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이 훈훈한 감정으로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 장르적인 재미를 관객들이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면 성공이에요."
한편, 올해 미쟝센단편영화제에는 역대 최다 작품 수인 총 1891편이 출품됐다. 그중 심사를 통해 엄선된 65편의 작품이 총 다섯 섹션으로 나뉘어 상영된다. 4년 만에 개최하는 영화제인 만큼, 섹션명 또한 탈바꿈했다. 사회적 관점을 다룬 드라마를 상영하는 '고양이를 부탁해' 섹션, 로맨스·멜로를 상영하는 '질투는 나의 힘' 섹션, 코미디를 상영하는 '품행제로' 섹션, 공포·판타지를 상영하는 '기담' 섹션, 액션·스릴러를 상영하는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섹션이 있다. <자매의 등산>은 이번 미쟝센단편영화제의 '품행제로' 섹션에서 17일(금), 18일(토)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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