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주안의 시시각각] 조희대 대법원장이 아니었다면

정부와 여당은 ‘조희대 대법원장만 아니었다면 얼마나 개운하게 이재명 시대를 열었을까’ 하는 생각에 골똘한 모습이다. 대법원이 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을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결론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조 대법원장이 취임한 2023년 12월 이후 행보를 복기하면 여권이 그를 비난만 할 일인가 싶다. 조 대법원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첫 선택이 아니었다. 윤 전 대통령은 당초 이균용 후보자를 사법부 수장으로 점찍었다. 그러나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되자 더불어민주당도 동의할 인사로 찾아낸 인물이 조 대법원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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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문회·탄핵까지 거론하는 여권
윤석열 의지 좌절시킨 일 잊었나
대법관 증원해도 뜻대로 안 될 것
」

조희대 코트가 윤석열 정부에 호락호락하지 않으리란 느낌을 준 건 지난해 1월 법원행정처장 교체 인사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 헌법재판소의 수장으로 선택한 김상환 헌재소장이 당시 법원행정처장이었다. 윤 전 대통령은 2대 공수처장으로 김태규 전 방송통신위원회 부위원장을 생각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러나 공수처장 후보자 추천위에서 김 소장이 반대해 가로막혔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래서 후임 법원행정처장이 주목됐다. 그런데 조 대법원장은 후임 처장으로 천대엽 대법관을 지목했다. 김명수 전 대법원장이 제청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관이었다. 김 전 부위원장의 공수처행은 또다시 좌절됐다.
만약 김 전 부위원장이 공수처장이 됐다면 정국이 어떻게 흘렀을까. 그는 윤 전 대통령 탄핵 직후 최상목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하자 국무회의에서 강력히 항의한 사실이 보도될 정도로 ‘친윤’ 성향이 뚜렷했다.
“22대 총선에서 국민의힘 참패 요인은 ‘채 상병 사건’이었다”고 지난 정부 대통령실 관계자는 분석했다. 이 사건은 총선 직전 공수처가 호주대사로 가려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을 출국금지하면서 핵폭탄이 됐다. 만약 윤 전 대통령 의중대로 김 전 부위원장이 공수처장이 됐다면 이 전 장관을 출국금지했을까.
탄핵 국면에서도 김 전 부위원장이 공수처장이었다면 총 든 경호처 직원들과 맞서면서 윤 전 대통령 체포를 두 차례나 시도했을까. 이런 큰 흐름을 짚어 보면 조 대법원장을 연일 조롱하는 여권의 행태를 납득하기 어렵다.
여권의 조 대법원장 압박을 전략·전술로 본다면 이해할 만하다. 지금 입법부와 행정부를 장악한 민주당이 사법부만 무릎 꿇린다면 못할 일이 없다. 그게 안 되니 화가 나는 모양이다. 법과 상식에 따른다면 조 대법원장 임기가 끝나는 2027년 6월까지 기다려야 한다. 현재 14명인 대법관을 26명으로 늘린다고 해도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제청하도록 한 헌법을 바꾸지 않는 한 당분간 조 대법원장의 의견을 무시하기 어렵다.

지금 이 대통령과 민주당 지지율이 높으니 무슨 일인들 해내고 말겠다는 의욕이 감지된다. 지난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다론 아제모을루와 제임스 A 로빈슨은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법원에 불만을 품고 사법부 개혁을 시도한 사례를 소개했다. 폭넓은 지지를 받은 대통령이었고 민주당이 의회 상·하원의 과반을 넉넉하게 확보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법관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명분을 내세워 사법부를 물갈이하려던 계획은 의회에서부터 제동이 걸렸다. 이를 두고 “미국의 상·하원 역시 대통령이 사법부의 독립성을 훼손한다면 정부 체제에서 힘의 균형이 무너져 자신들도 무사하지 못할지 모르며 다원적 정치제도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것”이라고 분석했다.
재선 일반 투표에서 61%의 지지를 받은 루스벨트도 무리한 사법부 개혁을 포기한 과정을 여권은 참고할 만하다. 그래도 분노가 진정이 안 된다면, 조 대법원장이 아니었다면 벌어졌을 사태를 2023년 12월부터 찬찬히 되짚어 보라.
강주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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