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기려고만 하는 시대"... 탑 여배우들의 세상을 향한 한방
민족의 대명절 추석을 맞아 책, 영화, 드라마, 여행, 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꼭 챙기면 좋은 ‘필수템’을 소개합니다. 가족·친지와 함께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긴 연휴에 어울리는 추천 콘텐츠와 함께 더욱 풍성한 연휴 보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말>
[손우정 기자]
|
|
| ▲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포스터 |
| ⓒ 넷플릭스 |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에로 영화 탄생기는 소재일 뿐, <애마>는 권력과 시스템, 그리고 그 속에서 처절하게 발버둥 친 초라한 인간군상을 다룬 80년대 초반, 그리고 우리 시대의 이야기다.
개인은 어쩔 도리가 없는 시스템의 힘
드라마의 초반은 각종 예고편에서 다룬 것처럼, 블랙코미디로 흘러간다. 배우로서 정점에 오른 정희란(이하늬)은 여배우를 성적 대상으로만 삼는 영화사와 관객의 시선에 염증을 느끼고, 오직 이윤만을 추구하는 제작자 구중호(진선규)는 '벗는 연기'를 거부한 정희란에 대한 복수심으로 신인 배우 신주애(방효린)를 발굴해 새 영화의 주연을 맡긴다. 영화 예술에 대한 갈망을 간직한 감독 곽인우(조현철)는 정부의 숨 막히는 검열과 너무나도 세속적인 제작자의 요구 속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조금씩 걸작을 향해 나아간다.
이들을 둘러싼 좌충우돌, 흥행과 예술 사이의 교차된 열망, 갈등과 화해의 에피소드가 전반부를 장식한다. 그러나 권력이 시대 배경처럼 '주어진 조건'에 머물렀던 전반부의 틀을 깨고 전면에 나서면서, 이 드라마의 성격은 확연히 달라진다.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낸 권력은 별다른 이유 없이 영화 제작을 중단시키고, 88올림픽 개최 축하 연회에 주연 배우 주애의 접대를 요구한다. 밤무대 탭 댄서의 삶을 벗어나 성공한 영화배우로 살고자 한 주애는 선택의 기로에 선다. 권력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것인가?
|
|
| ▲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스틸컷 |
| ⓒ 넷플릭스 |
이런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은 구로공단에서 일하다 친구 주애로 인해 월급도 없는 영화사 제작부장의 조수로 일하게 된 이근하(이주영)다. 근하는 주애의 접대 사건 이후 주연 배우의 옷을 대는 의상점을 협박해 촌지를 두 배로 올려 받으면서도 별다른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당시의 시스템은 그랬고, 애초부터 월급이 없는 제작부장 조수는 그렇게 해서야 먹고 사는 일이었다. 제작부장은 근하의 행동이 이 바닥의 선을 넘은 것이라고 나무라지만, 근하의 대답이 오히려 현실에 가깝다.
"애당초 지킬 선이라는 게 어디 있어요? 위, 아래 할 것 없이 온 세상이 엿같은데."(근하)
결국 근하는 영화판을 떠나지만, 그것은 그 세계의 시스템을 따르지 않기로 선택한 것에 불과하다. 계속 남았다면 다른 모두가 그렇듯, 폭력과 협박, 갈취의 순환을 따라야 한다. 지켜야 할 선 따위는 없다. 애초에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권력이 흘러내리다 고여 있는 곳
저항과 반발의 대가는 살벌하고 공포스럽지만, 순종의 대가는 달콤했다. 제작자 구중호가 감독의 의도 따위는 철저히 무시하고 마음대로 편집, 더빙한 애마부인은 최초의 심야 영화라는 타이틀을 얻은 채 엄청난 흥행을 이루고, 신인배우 주애는 희란의 자리를 위협하는 톱배우로 우뚝 선다. 자기 작품을 멋대로 난도질당한 감독 인우에게 '흥행 감독'이라는 보상은 이 치욕을 견딜 만하게 만든다.
그러나 항상 낮은 데로 흐르는 권력과 폭력에도 고이는 곳이 생기고, 인내심에도 임계점이 있다. 보통 그런 곳에서는 저항, 하다못해 꿈틀거리는 움직임이라도 생긴다. 여배우의 접대가 구중호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 희란은, 접대에 나갔다 살해당했으나 자살로 처리된 미나(이소이)의 죽음을 계기로 모종의 반란을 꿈꾼다. 그녀는 영화 시상식 자리를 활용해 구중호의 악행을 폭로하고, 정보기관은 폭로를 막으려고 하지만, 함께 '꿈틀거린' 사람들의 도움으로 통쾌한 한 방을 날린다.
주애가 정보기관 요원들에게 붙잡힌 희란을 구해 함께 말을 타고 도망치며 손가락 욕을 하는 장면은 '애마'가 세상과 시스템을 향해 날리는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현실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비극적 결말을 맞았겠지만, <애마>는 해피엔딩을 택한다. 이 작은 반란에 가담한 이들은 권력의 진실을 적당히 덮어주는 대가로 다시는 여배우를 접대에 동원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낸 희란 덕분에 모두 남산에서 풀려나고, 구중호와 권력의 채홍사 역할을 한 최실장(이성욱)이 희생양으로 선택된다.
사건이 정리된 이후 주애는 여배우로 승승장구하고 희란은 그토록 열망하던 명감독 권도일(김종수)의 작품에 출연한다. 그리고 감독 인우는 구중호에 의해 엉망진창이 된 자신의 걸작 애마부인을 되살려, '오리지날레'라는 부제를 달아 다시 세상에 내놓을 준비를 마친다.
|
|
| ▲ 넷플릭스 시리즈 <애마> 스틸컷 |
| ⓒ 넷플릭스 |
그러나 거기까지다. 희란과 주애는 세상을 향해 빅엿을 날리고 성상납으로부터 여배우를 지켰으며 이 과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제작자와 정보기관 담당자를 처벌했지만, 권력의 핵심은 건들지도 못했다. 우리가 80년대의 역사를 잘 알고 있듯, 책임 있는 권력자들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승승장구했다.
여배우들이 더는 성 상납을 안 하게 되었을지는 몰라도 누군가는 그 빈자리를 채웠을 것이고, 정보기관의 채홍사 역할도 누군가는 이어받았을 것이다. 결국 '애마'는 세상을 조롱하는 통쾌한 한 방을 날렸지만, 시스템을 바꾸거나, 최소한 개선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나 서슬 퍼런 1982년의 시절에, 이 이상 무엇을 더 할 수 있었단 말인가? <애마>는 권력과의 적절한 타협으로 생존을 선택했지만, 그 작은 꿈틀거림이 쌓이고 쌓여 1987년의 거대한 저항을 만든 밑거름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드라마에 잠깐 나온 구로공단 여공들의 싸움도 마찬가지다. 꿈틀거림을, 소소한 저항을, 세상을 향한 욕설과 빅엿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애마>의 시절과 지금은 또 얼마나 다를까? 권력의 핵심에서 한참이나 떨어져 있어야 마땅한 사람들이 권력의 핵심을 부여잡고 나라의 운명을 좌지우지했던 것이 불과 몇 달 전이다. 그들의 핵심 중 일부는 법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이 안주했던 시스템은 여전히 견고하다. <애마>의 빅엿, 그리고 작은 꿈틀거림,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여전히 필요한 시절이다.
긴 연휴, <애마>를 통해 견고하게 남아 있는 이 시스템에 빅엿을 날릴 방법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그러나 주의하라. 추석에 온 가족이 함께 볼만한 드라마는 아니다. 이래 봬도 19금 드라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연어 술파티' 그날, 쌍방울 법카 수원지검앞 1800원 결제... 대체 무얼 샀을까
- "버스 차로에 교복 입은 애들이..." 다급한 신고, 이거 진짜 위험합니다
- 진보교육감 연장? 보수체제 전환? 충남교육감 선거 가를 키워드
- '담력 체험장'이 된 죽음의 골짜기... 이곳들을 어찌 잊을까
- "전광훈·전한길 곱셈정치"보다 더 충격적인 그의 대정부질문
- 말기암 극복 후 하루 8시간 타이핑... 86세에 자서전 낸 아버지
- 새벽 수영, 저녁 러닝, 주말 등산… 운동 꾸준히 하는 저만의 비결은요
- 박수현 "국힘, 계속 '냉장고' 얘기하면 국민 눈살만 찌푸려져"
- 혼자 119 부르고, 배곯고...'독거 중증장애인' 우리의 추석은 이렇습니다
- 사돈이 연 '역귀성 추석 파티', 평생 추억이 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