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포퓰리즘의 득세

2025. 10. 9.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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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명절 때면 어김없이 쏟아지는 정치인들의 안부문자 공세는 말하자면 일종의 스팸이다. 아마 어디선가 주고받은 명함 때문에 단체문자 목록에 내 번호가 등록됐을 텐데, 대다수는 한 번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어서 번거롭기만 할 뿐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도 가끔 한 번씩 눈길을 붙드는 수작(秀作)도 있기는 한데, 이번 추석에는 국민의힘 모 최고위원이 보낸 문자가 단연 압권이다. “정청래·추미애는 저에게 맡기시고 추석 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어쩌다 이런 말이 정치인의 명절 인사가 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는지 씁쓸하지만, 상당수 국민의 목에 걸린 생선 가시 같은 껄끄러움을 콕 짚은 센스는 돋보였다.

「 포퓰리즘 현상 국회에서 나타나
제도보다 ‘국민 뜻’ 앞세우며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 배제시켜
플랫폼 규제·정당정치론 역부족

명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까지 국민의 피로감을 극대화하던 법사위발 폭주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바로 재개될 것이고, 대통령도 이를 말릴 수 없다는 것은 이미 확인된 바 있다. 예전에는 서슬 퍼런 임기 초에 여당 중진들이 대통령 지지율을 까먹으면서까지 폭주하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그들은 이미 이재명 대통령이 같은 방식으로 성공하는 것을 생생하게 목격한 사람들이다. 정치인에 대한 지지의 구조가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탓에 중도를 버리고 당을 좌지우지하는 강성 지지층에 투항해야 성공한다는 것을 그들은 학습했다. 지방선거가 8개월밖에 안 남았고, 또 ‘누가 알랴. 나라고 대통령 되지 말라는 법 있나’에까지 생각이 미치면 대통령조차 그들을 말릴 수 없다. 이쯤 되면 민주당의 강경노선은 대통령의 레임덕이라고 해도 딱히 반박하기도 애매하다.

상식을 지닌 국민 입장에서 폭주가 껄끄러운 것은 레임덕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이득을 위해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대는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권은 포퓰리즘 정치의 주요 특징들을 거의 다 가지고 있다. 첫째, 근거 없는 대법원장 청문회처럼 민주주의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행동을 하면서도 국민의 뜻이 형식적인 제도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도는 이와 같은 자의적인 해석을 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둘째, 주요 현안에 대한 다양한 주장을 무시하고 하나의 해석만을 강요한다. 내란 진압이 최우선 과제라는 주장 앞에 내란은 이미 진압된 거 아니냐고 묻는 것은 금기가 됐다. 셋째, 정부조직법 개정안에서 보듯 관료나 전문가는 불신의 대상이다. 그들은 자기 이익만 앞세우는 부패한 기득권 취급을 받는다. 1970~80년대 한국의 경제 기적이 그들의 헌신에 상당 부분 빚지고 있다는 인정이라든가, 그들의 전문성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에 어찌할 것인지에 대한 대책은 없다. 이 모든 것은 다 포퓰리즘의 전형적 특징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우리가 가진 민주주의 제도의 핵심이라 할 국회에서 합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포퓰리즘을 “민주주의를 이용해 민주주의를 해치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포퓰리즘의 득세는 여러 면에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첫째로 그것은 겉으로는 민주주의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국민주권을 핑계로 대의제 민주주의를 건너뛰려고 시도한다. 직접민주주의가 더 좋은 민주주의인 것처럼 말하지만 실상은 대중으로부터 민주주의라는 제도에 대한 믿음을 배제하고 특정 정치 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충성만을 강화한다. 마침 대통령은 이미 당대표 시절부터 직접민주주의를 강조해 온 바 있다. 둘째로 포퓰리즘은 진짜로 필요한 구조개혁을 뒤로 미루고 단기적인 선심성 정책에 몰두한다. 현금성 복지가 대표적이다. 셋째로 포퓰리즘은 정치를 국가 백년대계를 설계하는 장(場)이 아니라 분노를 배설하는 위험한 오락으로 만들어버린다. 유튜버들이 중진 의원들을 불러앉혀 놓고 호통을 치고, 매일같이 멱살잡이 직전까지 가는 국회의 장면들은 그래서 만들어진다.

지난 10여 년 사이에 한국 정치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달라졌고, 따라서 해법도 달라져야 한다. 오랫동안 논의돼 오던 해법들은 거의 대부분 약효를 잃은 것으로 생각된다. 숙의민주주의가 대안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문재인 정부 때 일부 시도해 봤던 숙의민주주의 실험들은 다수제하에서 대통령이 동의하지 않는 숙의민주주의 제안은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었다. 포퓰리즘 득세는 SNS 때문이라며 플랫폼 규제를 강화하면 된다는 의견도 있다. SNS가 한몫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위원장 한 사람을 제거하기 위해 방송통신위원회를 폐지하고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를 신설하는 데서 보듯 플랫폼 규제가 포퓰리즘에 제동을 거는 방식으로 이뤄질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정당정치를 복원하고 내각제적 요소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어 왔지만, 여당이 대통령을 추월해 폭주하는 상황에서 이제는 설득력을 잃었다.

이것도 저것도 해법이 되지 못한다면 남는 건 역사의 판단뿐이다. 이 길을 끝까지 갔던 나라들이 어찌 됐는지 세계사가 말해 준다.

장덕진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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