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의 시시각각] 조용필과 ‘여의도의 하이에나들’

‘가왕(歌王)’ 덕분에 추석 연휴가 더 풍성해졌다. TV로 방송된 콘서트 ‘조용필, 이 순간을 영원히’는 그가 왜 노래의 왕인지 재확인하는 자리였다. 경외심마저 느낀 건 1950년생, 만 75세의 무대라 믿기지 않는 가창력 때문만은 아니었다. ‘서태지와 아이들’ 세대인 필자에게도 젊은 날 여러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조용필이 녹아 있었다.
연애가 잘 안 풀리던 때 ‘정녕 그대는 나의 사랑을 받아 줄 수가 없나’(모나리자·1988)를 목놓아 불렀고, 개똥철학을 읊으며 ‘바람처럼 왔다가 이슬처럼 갈 순 없잖아’(킬리만자로의 표범·1985)라고 폼을 잡았다. 입대하는 친구들과 ‘친구여’(1983)를 울부짖었고, 어느새 제대한 그들과 대성리가 떠나가도록 ‘여행을 떠나요’(1985)를 외쳤다. 한 달 전 공연장에서 응원봉을 흔든 60대 ‘오빠부대’는 더한 감흥에 젖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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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 삶 채워준 가왕의 노래
생명력은 새로움 추구한 도전
썩은 고기 찾는 정치가 배워야
」
이번 공연에서는 30곡 정도 불렀지만 조용필은 200곡 넘는 노래를 발표했고, 매번 새롭게 팬과 교감했다. 데뷔 57주년을 맞은 노래 인생이 얼마나 많은 이를 위로했을지 가늠하기조차 버겁다.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바람의 노래·1997)라는 통찰과 관조의 품격엔 고개가 숙여진다.
조용필 장르가 지닌 힘의 원천을 한 대중음악 전문기자는 1988년의 인터뷰에서 찾았다. 조용필은 “가수의 생명은 늘 새로움을 추구하며 한발 앞서 가는 음악에 있다”고 강조했다고 한다. 그 생명력이 팬에게 전해졌다. 영화 ‘어쩔 수가 없다’에서 ‘고추잠자리’(1981)를 사용한 박찬욱(62) 감독은 “고추잠자리를 들었을 때 새 시대의 문이 열리는구나 싶었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발매된 20집 앨범도 록과 팝을 조화한 다양한 시도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는다.
노년의 신곡에도 MZ들이 반응하고 75세 가왕이 늙어 보이지 않는 이유는 자명하다. 자신이 설정한 가수의 본령에 충실했다는 것. 젊은 뮤지션들이 조용필을 계속 리메이크하는 것도 그 본질의 힘이 다음 세대에 영감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한류 역시 ‘조용필 보유국’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가수 아이유는 “전 세대가 사랑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분”이라고 칭송했다.
조용필을 시인으로 명명한 문학평론가 유성호 한양대 교수는 수년 전 칼럼에서 “폭은 넓었고, 음색은 다양했으며, 노랫말은 깊었다”고 평가했다. 이런 찬사를 받는 가왕은 정작 “여러분들이 좋아해 주셔서 제가 할 수 있었다”며 팬들에게 공을 돌렸다. 마지막 로망은 “노래하다 죽는 것”이라고 하니 위대한 신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추석의 감동을 문득 여의도 정치권에 전하고 싶어졌다. 조용필을 흉내라도 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폭넓고 다양하게 깊은 울림을 주는 정치는 불가능한가. 이번 추석에도 기대난망이다. 새로움을 추구하기는커녕 상대를 죽일 듯한 혐오만 반복되고 있다. 여야는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까지 결국 고소·고발 전으로 비화시켰다.
자리를 바꿔 가며 쏟아내는 동어반복에 실소가 나온다. 국민이 치를 떨게한 비상계엄과 결별하지 못한 국민의힘의 대표가 ‘공포정치’와 ‘입틀막’을 비판한다. 헌법에 따른 탄핵 결정으로 정권을 잡은 더불어민주당에선 ‘대법원장이 뭐라고’라며 삼권분립 원칙을 우롱한다.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의 본질은 당리당략과 자기 정치에 매몰됐다. 강성 지지층에게 충성하면 내년 선거가 유리해지고 나라가 결딴날지언정 나만 이기면 된다는 계산속이 여야 정치인들의 승리 공식이 돼버렸다. 여당의 한 초선 의원은 “어떻게든 자극적인 말을 해야 존재감이 생기니 난감하다”고 토로했다. 이제 여의도엔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만 득실거리게 되는 것인가. 굶어 죽어도 산정에 오르는 표범을 찬양한 조용필의 독백을 남은 연휴에 음미해 보길 바란다.
김승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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