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혁명은 무엇일까" 질문 던진 이 영화
[김형욱 기자]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폴 토마스 앤더슨(PTA)의 신작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단순히 '정치 영화'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복합적 감정의 파노라마다. 이 영화는 우리가 오래전 잊고 지냈던 단어, '혁명'을 다시 꺼내 들며 그 의미를 새롭게 되짚는다. 동시에 피보다 진한 가족 서사로 인간적인 접점을 만들어낸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이상과 현실, 사랑과 분노, 과거와 미래가 한데 뒤엉킨 긴 여정을 압축해낸다.
그렇다고 무겁기만 한 영화는 아니다. PTA는 이번 작품에서 자신의 전작들보다 훨씬 더 명확하고 직접적인 어조를 취하며 관객에게 직진하는 힘을 보여준다.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아온 그의 필모그래피와 달리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접근성 면에서 훨씬 더 친절하다. 다만 그 친절함 속에서도 날카로운 시선과 시대를 향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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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한 장면. |
|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밥은 급진적 테러조직 '프렌치 75'의 핵심 멤버였지만, 16년이 흐른 현재는 마약에 찌든 폐인이 되어 있다. 그에게 혁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하지만 그의 딸 윌라가 위협받는 순간, 그는 다시 총을 들고 일어선다. 과거의 신념이 아니라 현재의 사랑 때문에. 이 변화는 우리가 사는 현실과도 닮았다.
대의보다 소중한 개인의 삶이 우선시되는 시대, 그러나 그 삶조차 위협받을 때 우리는 다시 싸움을 선택할 것이다. 영화는 그 '다시'라는 지점을 정교하게 포착한다. 단순한 부활이 아닌 형태를 달리한 혁명으로의 귀환이다. 그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필요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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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한 장면. |
|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예외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메시지와 서사를 대중적인 방식으로 풀어내면서도, 자신만의 미학을 놓치지 않았다. 영화는 시작부터 빠른 템포로 전개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숀 펜이 각각 밥과 스티븐 역을 맡아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복잡한 감정의 결들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퍼피디아 역의 테야나 테일러는 신선한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캐릭터에 몰입하며 긴장감을 끌어올린다.
흥행 면에서도 성과는 뚜렷하다. 미국 개봉 첫 주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PTA 본인의 커리어 하이 기록을 경신했다. 워너 브라더스는 이번 작품으로 크리스토퍼 놀란 이후의 공백을 메우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까지 받고 있다. 한국 개봉 역시 기대 이상의 흥행력을 과시하는 중이다. 극장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지켜볼 만하다.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겉으로는 정치적이지만, '가족' 이야기다. 밥이 딸 윌라를 구하기 위해 다시 싸움에 뛰어드는 이야기이라서다. 그는 더 이상 혁명을 믿지 않는다. 하지만 윌라를 위해 다시 총을 든다. 사랑은 때로 이념보다 강력한 추진력을 가지며, 영화는 이 지점을 깊이 파고든다.
스티븐 대령의 복잡한 감정선도 인상적이다. 과거 자신이 성적으로 모욕당했다고 느꼈던 퍼피디아의 딸이 자신과 연관되어 있다고 확신하면서, 그는 이 개인적인 치욕을 체제적 복수로 끌고 간다. 이처럼 영화는 개인의 감정이 어떻게 집단적 폭력으로 확대되는지 보여준다.
영화는 질문을 던진다. "진짜 혁명은 무엇인가?" 거창한 이념이 아닌 한 아이를 위해 싸우는 것, 가족을 지키려는 몸부림이야말로 지금 시대의 또 다른 혁명이 아닐까? 그리고 이 사랑은 세대를 건너 다음 세대에게 또 다른 싸움의 의미를 전해준다.
극적인 액션, 정치적 텍스트, 섬세한 감정선이 교차하는 보기 드문 영화다. 무엇보다 폴 토마스 앤더슨이 처음으로 '모두를 위한 영화'를 만들었다는 사실에서 의미가 크다. 혁명은 더 이상 낯설거나 무거운 단어일 필요가 없다. 영화가 말하는 건, 그것이 삶의 일부였고 지금도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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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 포스터. |
| ⓒ 워너브라더스코리아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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