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깡'으로 버티고 있나요? 그럼 읽어보세요 [변방에서 안방으로 : 일하는 사람책]
일하는 사람의 기록을 담은 책을 소개한다. 송곳이 되어 준 작가의 경험과 필자의 지금을 들여다보아 변방에서 안방으로 자리를 넓혀 먹고사는 오늘의 온도를 1℃ 올리고자 한다. <기자말>
[최문희 기자]
'녹초'가 장래희망은 아니었는데, 녹용을 달여 먹어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생활이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주말에도 곧잘 오는 일 관련 연락에 꼬박꼬박 답한 지 오래됐다. 그건 상대방 역시 쉬는 날마저 숨 돌려가며 내가 요청한 일을 해내고 있음을 조금은 알 것 같아서다. 나와 대다수 주변 사람은 먹고사는 일의 팔할을 '깡'으로 버틴다. 과연 좋은 삶일까.
성실을 다하며 자부심을 잃지 않고, 누군가를 조력하며 노동하는 삶을 책으로 써온 사람들 이야기를 그간 각양각색 소개했다.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던 직업군을 특히 눈여겨봤는데, 화면해설사·택배기사·장례지도사·퀴어를 지지하는 목회자·특수교사·요양보호사 등이 그러했다.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타성에 젖지 않고, 노동에 삶을 잡아먹히지 않는 저자들 덕분에 기운이 났다. 직업을 보는 스펙트럼이 넓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론 이런 생각이 더해졌다.
과연 직업을 갖지 않고 사는 사람의 삶은 '나쁜 삶'일까? 일하는 사람들의 생애를 다룬 책을 읽을 수록 든 두 가지 생각을 옮겨본다. 첫째, 세상 모든 직업은 보편적인 가치를 지닌 만큼 보편적으로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둘째, 노동이 신성한 만큼 '나'라는 존재의 신성함 또한 논하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퇴근 이후 고유한 삶을 알리는 노동 책은 드물고, 퇴근 후 생활마저 '취미(덕질)의 효능'을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이 둘째 항목에 관해선 여전히 숙제하는 중이다. 어렵다. 세상은 시종일관 인간의 '성실'을 최고로 친다.
매일 전쟁터에서 일한다고 느낀다면
축약하자면 '일할 때도 열심히, 놀 때도 열심히'라는 수식이 의심스럽다는 것인데, 삶에 관한 몸부림이 기약 없는 성실의 어떤 모양인 것 같아서 마음 한편이 알딸딸했던 것 같다. 평범한 회사원인 나는 되고 싶은 내일의 모양이 뾰족하게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텃밭을 가꾸고, 종종 책을 읽고, 세상에 나쁜 짓은 어지간하면 적게 하는, 운동 조금 하는 근육질의 인심 좋은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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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 |
| ⓒ 메멘토 |
그는 "직장인으로 사는 일이 당연하게 된 건 겨우 40, 50년에 지나지" 않는다며, "많은 사람이 같은 일을 하는 업계는 결국 전투적인 사람들의 전쟁터"와 같다고 지적한다. 그는 업무 스트레스 때문에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으면 잠 못 들던 시절도 겪었을 만큼 한 시절 '과로'했다. 어쩐지 보통의 회사원들과 닮았다.
회사에서 일한 하루를 떠올리면 묘하게 두리뭉실한가? 그럼 "그 시기에 빈약한 삶을 살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저자. 뜨끔해지는 독자라면 구미가 당기겠다. 물론 자신이 일했던 회사 경험도 삶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객관적인 평가도 잃지 않는다. 200페이지 조금 넘는 분량이기에, 책 읽기조차 기진맥진한 회사원에게 진입 장벽이 높지 않은 이야기겠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생업'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회사 대신 선택한 생업
마침내 사표를 낸 저자는 생태·농업 잡지에서 프리랜서 기자로 활동한다. 이윽고 특별한 재능 없이도 시작할 수 있는 '생업'을 프로젝트로 꾸린다. 첫 생업은 획일적인 여행 패키지에 지친 여행자를 위한 '몽골 진짜배기 생활체험 캠프'. 정해진 코스 없이 현지에서 참여할 사람들을 모집해 '뚝딱' 워크숍을 만든다. 장작 가마로 굽는 빵 가게를 연 뒤 강의도 하고 해마다 농가 매실 수확도 돕는다. 저자는 지금도 여러 생업으로 삶을 지탱하는데, '무리하지 않는' 게 철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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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온라인 서점 미리보기 화면 갈무리. |
| ⓒ 메멘토 |
"자력으로 생활을 꾸려가는 기술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사람들 대부분이 지닌 능력이다. (중략) 봄에는 꿀을 채취하고, 겨울에는 볏짚으로 물건을 만들거나, 술을 만들기 위해 양조장에 나가는 등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일을 갖는 것이 당연했다. (중략) 옛날 사람들의 삶을 보면, 한 가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은 오히려 드물었다." -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이토 히로시) 중에서
산업혁명 이후 분업화가 불러온 바람은 실제로 인간을 자급자족하는 생활에서 먼발치 멀어지게 했다. 세계를 불문하고 이 땅의 조상들은 스스로 집 지어 살았고, 가축을 길렀으며, 옷을 직접 지어 입고, 장례도 십시일반 이웃과 함께 상여를 만들어 불을 지펴 치렀다. 지금은 인간의 탄생과 죽음이 모두 분업화되었다. 어쩌면 자급자족이란, 자본주의가 가장 싫어하는 삶의 형태가 된 셈. 저자는 "유목의 묘미"가 사라진 노동 현실을 보며 우리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매일같이 바빠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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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래 우리는 바빠야 할까?' |
| ⓒ marvelous on Unsplash |
조금 더 현실적으로 말해보자. 나를 바쁘게 하는 '그 무엇'을 지우고 나면, 나는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보여주기 위한 성실'에서 벗어나면 우리는 각자 어떤 모양의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오늘날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일본인은 자기 힘으로 일을 만들어 본 경험이 거의 없다. 그러나 고도 경제 성장기 이전에는 개인 사업자가 많았고, 그런 일들이 계속 골을 넣던 시대가 있었다. (중략) 일본은 전국적인 대기업을 육성하면서 농민들을 대규모로 고용했고,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일본이 성장했다."
-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이토 히로시)중에서
회사를 이루는 사람으로서 역할을 다하는 일의 기쁨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 기쁨이 내 삶의 기쁨과 그리 일치하지 않는다면, '회사라는 지붕에서 벗어난 나'에 관한 생각을 과감히 켜는 시간이 필요하다. 우선 집에서, 회사 밖에서, 친구와 함께하며 즐겁게 꾸린 일들을 떠올리면 어떨까. 이토 히로시는 그 모든 것의 가능성을 '생업'이라 부르며, 그 첫걸음을 떼는 방법을 명쾌하게 알려준다.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매달리기보다 무언가 스스로 만들어보는 경험 쌓기, 콘텐츠 중심의 발상보다 다양한 개별 사례 중심으로 먼저 생각하기. 주어진 현실이 바닥이면 거기서 출발하고, 사람들이 선망하는 목표 대신 현재 내 생각과 감각을 들여다볼 때 우리 존재는 '원래' 모양을 드러낼 것이다. "진이 빠지지 않으면서도 천천히 음미하는 즐거움"이 깃든 삶과 가까워지겠다.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건 전문가의 능력보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아마추어적 상상력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시도는 '특정한 콘셉트'를 짜려는 목표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는 것. 저자는 그간 우리가 수행한 업무는 서구적 발상에 기인했음을 비판하며, '개별적 경험'을 모아 할 수 있는 일을 먼저 궁리해볼 것을 권한다.
이토 히로시는 말한다. '생업적' 발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욱 중요해질 시대가 올 거라고. 그리하여 "기획하지 않는 삶, 애쓰지 않는 자연스러운 방식은 그들이 사는 동네의 일상과도 맞닿아(<적당히 벌고 잘 살기>, 슬로비)" 오늘의 우리를 해방시킬 수 있겠다. 우리의 삶을 도둑맞게 하지 않을 재간이 생기겠다. 다른 말로 하자면, 희망이 조금 보이겠다.
여전히 내 삶의 팔할은 회사 일에서 비롯하지만, 생활의 달인 이토 히로시 덕분에 한 가지는 터득한 것 같다. 언젠가 내 삶의 팔할을 '자연스러움'으로 채우기. 그 실마리를 건네는 <작고 소박한 나만의 생업 만들기> 읽기를 권해본다. 미친듯이 성실하지 않아도 잘 살 자유를 알리는 비법이 담겼다.
본디 '소박하다'의 사전적 의미는 '꾸밈이나 거짓이 없고 수수하다'이다. 어쩌면 소박한 생업은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있을 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그 자립의 이정표가 되어준다. 퍽 신랄하다. 무엇보다 유능한 브랜드로 살아남으라고 하지 않는다. 꾸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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