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국제 2관왕 '철들 무렵', 모두가 칭찬하는 이유 있었네
김성호 평론가
<철들 무렵>을 볼 계획은 없었다. 한국의 비좁은 문화지반이 유효한 영화라 할지라도 수입배급되지 않아 영영 만날 수 없는 영화를 수두룩하게 남기는 탓으로, 국제영화제 기간엔 대부분 해외 영화에 관심을 맞추는 때문이다. <철들 무렵>이란 작품이 있다는 사실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언제고 다시 만날 기회가 있겠거니, 자연스레 다음을 기약했던 것이다. '비전' 섹션에 든 많은 작품에 그러하듯.
|
|
| ▲ 철들 무렵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기자며 평론가들이 들어찬 프레스센터에서였고, 다음은 영화제가 열리는 부산 센섬시티 인근 카페에서였다. 마지막은 지인들이 모인 술자리에서였다. 의도치 않은 자리마다 거듭 들려오는 호평에 마침내 일정을 수정하여 영화 한 편을 더 보고 가기로 결정했다. 마침 <철들 무렵>은 이번 제3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과 송원 시민평론가상 수상의 영광까지 안았다. 모두가 좋다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철들 무렵>은 정승오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다. 한국 독립영화를 눈여겨보는 이들에게 정승오는 2020년 작 <이장>을 만든 이로 기억돼 있을 테다. 지난 2020년 개봉한 <이장>은 아버지 묘 이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 가족 내의 소소한 이야기로, 무겁지 않은 시선으로 가부장제의 모순을 위트 있게 풀어내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정승오가 5년 만에 선보인 <철들 무렵>은 전작에 이어 또 한 번 한 가족을 소재로 한국사회의 일면을 조명했다.
서류상엔 부부이지만 사실상 갈라선 지 오래인 철택(기주봉 분)과 현숙(양말복 분)이 있다. 또 이들의 딸 정미(하윤경 분)와 정미의 외할머니이자 현숙의 어머니인 옥남(원미원 분)까지가 영화의 주역이다. <철들 무렵>은 이들 네 사람을 중심에 두고서 이들 가족의 마냥 웃을 수도, 또 울 수도 없는 서글프면서도 공감가는 이야기를 풀어낸다.
|
|
| ▲ 철들 무렵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철택에게도 기댈 곳이 아예 없지는 않다. 철택의 딸인 정미가 하루아침에 그를 간병해야 하는 처지가 된다. 저 말고는 손 벌릴 곳이 마뜩찮은 아버지를 모른 척 할 수는 없는 때문이다. 그러나 저라고 뾰족한 수가 없는 것이, 정미는 벌써 수년 째 단역만을 전전하는 무명 배우인 것이다. 돈이 없기로는 철택이나 정미나 거기서 거기라서, 둘은 얼굴에 철판을 깔고 여기저기 돈을 꾸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
일찌감치 철택과 갈라서 혼자가 된 현숙이지만 그녀라고 마음이 편하지 않다. 엄마 옥남의 구순잔치에 즈음하여 오빠와 누나들이 모두 현숙에게 옥남을 맡으라 떠미는 때문이다. 요양원은 아무래도 마음이 편치 못하다며 혼자 살 바에 엄마와 함께 지내면 오죽 좋으냔 게 형제들의 주장이다. 혼자 사는 삶에도 고충이며 계획이 있지만, 미리 입을 맞춘 듯이 몰아치는 형제들에겐 당해낼 재간이 없다. 어찌저찌 구순 잔치 준비를 전담하는 것으로 그를 갈음해보려 하지만 현숙의 상황 또한 제 마음과는 영 달리 돌아간다.
|
|
| ▲ 철들 무렵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정승오 감독은 간병과 돌봄, 또 가족행사라는 계기를 통하여 파편화 된 작은 가족을 대가족 집단으로 복원해낸다. 대가족의 구도 안에서 좀처럼 드러날 일 없던 서로 다른 세대와 자본계급의 충돌, 또 어우러짐이 빚어진다. 인간의 본래적이며 본질적인 욕구와 고난 또한 표면 위로 떠오른다. 나이는 먹었으나 여전히 누구도 제 삶을 제대로 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영화 속 인물 뿐 아니라, 영화 밖 관객 또한 마찬가지일 테다. 평생을 한 길만 보고 내달린 인생에서 잘못 살았구나 후회하는 이가 수두룩 빽빽이다.
잘 살고 못 사는 일이 어디서 어떻게 갈라지는지 정의내리기는 어렵다. 서로 다른 나이와 처지의 여러 인물이 제각기 제 인생과 마주하는 동안, 관객은 '인간이란 끝끝내 철이 들지 않는 건 아닐까'를 의심하게 된다. 철이 든다는 것, 삶을 제대로 살아간다는 건 무얼 말함인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일까.
|
|
| ▲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 ⓒ 부산국제영화제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더 이상 갈 곳이 없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
- 명절에는 왜 항상 LA갈비를 먹을까?
- 작가의 일기장에 적힌 '손상의 책임자들', 윤석열과 5인
- 6년 만에 맥아더 동상 찾아가 고개 숙인 국힘, 왜 그럴까
- 일흔여덟 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 화장실 다녀오고 야당 불참해 여당이 대타까지, 논란의 4박5일 필리버스터
- 민망하지 않은 걸로 골랐어요, 추석 연휴엔 이것과 함께 하세요
- 23년 만에 처음으로 차례 없는 명절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
- 미얀마 쿠데타 1700일 넘어... "민간인 7318명 살해"
- 추석에 레저보트 타고 밀입국 시도한 중국인 8명, 태안 해상서 검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