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럭저럭 어른 행세] 일흔여덟 아버지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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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부산, 경기도 가평, 제주, 미국에 흩어져 사는 6인이 쩨쩨하지만 울고 웃고 버티며, 오늘도 그럭저럭 어른 행세하며 살아가는 삶을 글로 담습니다. <편집자말>
[원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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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의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기 위한 교재들. 손때 묻은 종이에 그의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
| ⓒ 원미영 |
"아빠, 축하해요!"
"아버님, 정말 대단하세요. 축하드립니다."
그만하라며 손사래를 치는 아버지의 입가엔 수줍은 웃음이 서려 있다. 대체 나이 든 아버지가 무슨 대단한 일을 했기에 딸과 사위, 손주들의 축하를 한 몸에 받는 광경이 벌어진 것일까? 거실 한편엔 일흔여덟 아버지에게 발급된 따끈따끈한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당당히 세워져 있다.
평화로운 일상에 찾아온 위기
엄마가 뇌경색으로 쓰러진 지도 어느덧 8년의 세월이 흘렀다. 모든 불행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오듯 그 일은 우리 가족의 평온한 일상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가족 안에서 엄마의 존재가 워낙 컸기에 당시 우리 네 남매와 아버지는 공황에 빠졌다. 눈앞에서 보고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받아들이고 엄마의 회복에 집중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었다.
소중한지 몰랐던 지난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은 가파른 산을 오르는 것처럼 험난했다. 언제 다다를지 모르는 종착지를 향해 숨 가쁘게 걸음을 내딛고,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싶은 순간들이 찾아왔다. 이성보다 감정이 앞서 서로를 할퀴었고 상처 주었다. 얄팍하고 미성숙한 우리의 본성은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다시 그때를 돌아보니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골든타임을 놓쳐 편마비와 언어장애가 남은 엄마를 볼 때마다 상처에 소금을 뿌린 듯 가슴 한구석이 아렸다.
없는 살림에 아이는 넷이나 낳아 평생 늦잠 한번 자지 않고 자식을 키운 당신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던 삶을 보상받을 여유는 없었다. 자식 다 키워놓고 이제 좀 살만하니 병이 찾아온 엄마의 박복함에 우리의 가슴엔 알 수 없는 죄책감과 무거운 슬픔이 자리 잡았다. 네 남매가 왈가닥거리며 시끄럽게 떠들던 집안엔 적막이 먼지처럼 내려앉았다.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던 날들은 시간이 약이 되어 흘렀다. 피나는 재활 끝에 엄마의 상태가 처음보다 호전되었다. 우리의 슬픔도 무뎌져 과거의 엄마와 다른 지금의 엄마를 조금은 고요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유쾌하고 말솜씨가 좋아 사람들을 웃게 했던 엄마 대신, 단어 하나하나 힘겹게 내뱉어 한참 동안 기다려야 문장을 완성하는 엄마를. 동네 아주머니들과 어울려 스포츠 댄스를 배우러 다니던 엄마 대신, 발이 편한 운동화를 신고 힘겹게 산책길을 나서는 엄마를 말이다.
일흔여덟 아버지의 도전
그럭저럭 평온한 날들을 보내던 중, 아버지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장기 요양 등급을 받고도 낯선 이의 손길을 거부하고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 늙고 기력이 없는 어머니를 두고 볼 수 없어 결심했을 것이다.
아버지의 난데없는 도전장에 당혹스러웠다. 우리 아버지가? 아버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응원도 모자랄 판에 우리는 아버지에게 괜한 헛수고 하지 마라, 관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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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려고 공부한 교재들. 손때 묻은 종이에 그의 고군분투가 느껴진다. |
| ⓒ 원미영 |
순조롭게 원하는 바를 이루기엔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어느 날 아버지는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숨쉬기가 어렵다며 혼자 운전을 해 대학병원 응급실에 갔다. 자식이 넷이나 있는데 누구에게도 전화하지 않고 119도 부르지 않았다. 그 마음을 모르지 않지만, 운전 중에 상태가 악화해 자칫 큰 사고로 이어졌으면 어쩔 뻔했을까.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버지는 다행히 숨이 붙은 채 응급실 문턱을 넘었고,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엑스레이와 폐 CT 촬영 결과 '흉막 삼출액'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입원 후 며칠 뒤 아버지의 흉막 삼출액의 원인이 폐결핵이란 결과가 나왔다. 급히 일인실로 병실을 옮겼고 접수한 시험은 치르지 못했다.
2025년에 폐결핵이라니! 올 초 실습을 나갔던 노인요양원이 원인이었을까. 야간에 학원 수업을 들은 탓에 몸에 무리가 갔을 것이다. 이쯤 되면 요양보호사가 문제가 아니라 본인이 요양을 받아야 할 처지 아닌가.
독한 약을 9개월간 먹어야 한단다. 입맛이 떨어져 식사량이 줄고, 식전 약을 먹은 뒤 며칠을 토했다. 당뇨환자인 아버지는 혈당조절이 되지 않아 자칫 위험할 수 있다고 했다. 호흡기내과와 내분비내과 협진으로 한동안 치료를 받아야 했다. 수개월 만에 몸무게가 8킬로그램이나 빠졌다.
친정집 곳곳에 놓인 빛바랜 액자 속엔 어린 우리뿐만 아니라 눈부신 부모님의 젊은 시절이 담겨있다. 사진 속 내 나이쯤 되어 보이는 아버지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은 것도 모자라 양 볼이 푹 패인 아버지의 얼굴이 대비되어 콧등이 시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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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도 담벼락 아래 핀 코스모스 |
| ⓒ 원미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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