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비단 위 꼿꼿한 금빛 대나무...도도히 이어진 역사
조선 '삼청첩' 최초 전면 공개
'묵죽도의 거장' 이정의 '풍죽'
매화, 대나무,난초 회화 100점
![이정,'신죽'(新竹). 새로 나온 대나무 ⓒ간송미술문화재단. [사진 대구간송미술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joongang/20251006060242055rgta.jpg)
![이정, '월매'(月梅), 달과 매화. ⓒ간송미술문화재단.[사진 대구간송미술관]](https://img1.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joongang/20251006060243359xwef.jpg)
지금 지갑에 5만원권 지폐가 있다면 다시 한 번 꺼내 들여다보라. 앞면엔 신사임당 초상화와 함께 사임당이 그린 묵포도가 있고, 뒷면엔 조선에서 손꼽히던 두 거장 화가의 대표작이 겹쳐 그려져 있다. 탄은 이정(灘隱 李霆, 1554∼1626)의 '풍죽도(風竹圖)'와 어몽룡(1566∼?)의 '월매도(風竹圖)'다. 특히 이정은 세종대왕의 고손이자 '조선 묵죽화(墨竹畫)의 대가'로 이름을 떨친 화가다. 그가 임진왜란 때 팔을 다친 후, 부상에서 회복되자 제작한 시화첩은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대구간송미술관(관장 전인건)은 지난달 23일 개막한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 '삼청도도–매·죽·난, 멈추지 않는 이야기'(이하 '삼청도도')를 통해 탄은 이정의 그림과 시를 함께 엮은 시화첩 『삼청첩』을 최초로 전면 공개하고 있다.
'삼청도도'는 조선시대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문인화가들이 제작한 매화·대나무·난초 작품 35건 100점을 4부로 나눠 소개하는 전시로, 이번 전시의 핵심이 바로 이정의 시화첩이자 한국 미술사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삼청첩』(1594)이다.
'세 가지 맑음'이라는 뜻의 삼청(三淸)은 군자가 지녀야 할 태도와 마음을 가리키는 말로, 매화와 대나무, 난초를 뜻한다. 대구간송미술관이 광복 80주년을 기념해 지은 전시 제목 '삼청도도'엔 추위를 이겨내는 절개(매화)와 꺾이지 않는 곧음(대나무), 은은하고 고결한 마음(난)이 ‘도도’, 즉 물 흐르듯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삼청첩』, 조선의 자존을 지킨 보물
![세종대왕의 고손 탄은 이정이 1594년에 제작한 『삼청첩』표지. [사진 대구간송미술관]](https://img3.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joongang/20251006060244632wouo.jpg)
![『삼청첩』의 56면이 전시되고 있는 '삼청도도'의 1부 전시장.[사진 대구간송미술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joongang/20251006060245930hmaj.jpg)
한 시대의 보물, 즉 '일세지보(一世之寶)'라 불릴 만큼 가치가 높았으나, 현재까지 전해져 관람객을 맞기까지 430여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병자호란(1636~1637) 때 화재로 소실될 뻔했고, 19세기 일제강점기엔 일본으로 반출됐다. 일본에서도 소장자가 한 번 바뀌었으나, 1935년 간송 전형필(1906~1962) 선생이 사들이며 고국으로 돌아왔고, 2015년 전면 수리 작업을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간송이 사들일 당시 경성의 좋은 기와집 한 채가 1000원, 겸제 정선의 화첩이나 추사 김정희 글씨가 150원 남짓했는데, 간송은 『삼청첩』을 455원에 샀다고 일기에 기록돼 있다.
『삼청첩』은 그림 20면, 글 29면, 공면 5면, 표지 2면 등 총 56면으로 구성됐다. 당대 유명 문인들의 시문과 함께 엮어진 이 화첩은 화법(畫法)과 서법(書法)의 예술적 조화를 인정받아 2018년 보물로 지정됐다. 이번 전시에선 『삼청첩』56면 전면을 특별공간에 모아 별도로 공개한다. 전시를 기획한 신현진 대구간송미술관 학예연구사는 "『삼청첩』은 불에 탄 흔적으로 사라진 공면이 있는 데다 일본 반출 당시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어 그동안 일부 면만 골라 소개됐다"며 "이번처럼 56면이 전면 공개된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묵죽화의 정점, 이정의 '풍죽'
![이정,풍죽 (風竹),바람에 맞선 대나무. ⓒ 간송미술문화재단 [사진 대구간송미술관]](https://img2.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10/06/joongang/20251006060247237qwhi.jpg)
특히 여기에선 한국 묵죽화 최고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풍죽'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백인산 대구간송미술관 부관장이 "한국 사군자 그림 중 최고의 걸작"이라고 소개하는 작품이 바로 이 '풍죽'이다. 백 부관장은 "조선시대 제일 품격이 높은 그림으로 꼽힌 묵죽화 중 이정의 '풍죽'이야 말로 최상의 품격과 기량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백 부관장은 이어 "고난과 시련에 맞서는 선비의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풍죽의 내재한 본질과 의미를 이만큼 잘 살려 낸 작품은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이 전시장에선 이정이 남긴 유일한 인물화 '문월도'도 함께 소개한다. 또 3부에서는 국란과 역사적 위기에 기개와 결기를 지켜나간 조선의 절의지사들이 남긴 삼청 작품 10건 16점을 소개한다.
전인건 관장은 "임진왜란·병자호란·일제강점기를 버텨낸 이 유물들 자체가 민족의 극복 서사를 담고 있다"며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 전면 공개하게 된 것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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