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날 맞아 돌아보는 소쇄원 제월당의 편액들
[이윤옥 기자]
소쇄한 원림이 유벽하고 / 瀟灑園林僻
청진한 지개가 유원하였네 / 淸眞志槩悠
꽃을 심으니 따뜻한 꽃잎이 열리고 / 栽花開煖蘂
물을 끌어대니 맑은 물결 부딪히네 / 引水激淸流
고요하고 가난한 것 싫어 아니하고 / 靜與貧非厭
한가로이 늙는 것 걱정하지 않았네 / 閒仍老不憂
어찌 갑자기 세상을 떠날 줄 알았으랴 / 那知遽觀化
슬프게도 흰 구름만 떠 있네 / 怊悵白雲浮
- 고봉전서(高峯全書) 고봉속집 제1권 '모인에 대한 만장' 가운데 첫수-
지난주, 남들보다 한발 빠른 한가위 성묘차 지방에 내려갔다가 담양 소쇄원에 발길을 옮겼다. 소쇄원의 '소쇄(瀟灑)'는 '깨끗하고 시원하다'라는 뜻이라는데 그 이름에 걸맞은 노래 같아 고봉 기대승(高峯 奇大升, 1527-1572)의 시를 골라봤다. 대충 내용은 알겠으나 '원림이 유벽'하다든지, '지개가 유원하다'라는 표현은 요즘 말이 아니라서 이해에 어려움이 있다. 이 시는 평소 즐겨찾는 <한국고전종합데이터베이스>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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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쇄원 제월당 가을비가 내리는 소쇄원 제월당 모습 |
| ⓒ 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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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월당 제월당 툇마루에 앉아 작은문을 통해 본 뜰은 액자 속의 그림 같다. |
| ⓒ 이윤옥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원(庭園) 풀이를 보면 '집안에 있는 뜰이나 꽃밭'이라는 풀이 뒤에 '황석영 작가의 <폐허, 그리고 맨드라미> 속의 예문인, 안채는 ㅁ자 집이며 정원에는 분재 수석이 가득했다'를 들고 있다. 황 작가는 기와집이었을 ㅁ자집 안의 '뜰'을 '정원'이라고 표현했지만 어쨌거나 소쇄원은 정원보다 '뜰'에 가까운 듯하다. 왜냐하면 '꽃밭'은 아니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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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인묵객들의 시 제월당에 걸린 시인묵객들의 시는 모두 한자라 그 내용을 알 수 없다. 읽을 수 있는 글자는 붉은 동그라미 속의 한글로 된 '주의문(아래 사진)' 뿐이다. |
| ⓒ 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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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글 문구 한자 편액 사이에 유일하게 읽을 수 있는 한글 문구 |
| ⓒ 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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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풍각 제월당 아래 정자 광풍각 |
| ⓒ 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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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풍각 앞 계곡 광풍각 앞에는 작은 계곡에 물줄기가 흘러내린다. |
| ⓒ 이윤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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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나무밭 사잇길 소쇄원 입구 대나무밭 사잇길 |
| ⓒ 이윤옥 |
소쇄원이야기를 하다가 옆으로 샜다. 제월당에서 광풍각으로 내려오니 귀여운 고양이 녀석이 반갑게 맞이한다. 손님도 없는 고요한 광풍각 툇마루에서 졸고 있다가 기자를 발견하고는 놀자고 꼬리를 친다. 녀석과 전세 낸 듯한 텅빈 소쇄원 뜰에서 비 오는 가을날의 한때를 즐긴 시간은 또 하나의 추억이다.
참고로, 소쇄원의 제월당은 명승 (구)제40호로 2008년 5월 2일 지정되었다. 하나의 제언을 하자면, 제월당에 걸린 명시들을 한글로 설명한 안내문을 <제월당 툇마루>에 마련 해두었으면 하는 점이다. 이것이 어렵다면 소쇄원 누리집에 한글로 된 번역본을 실어주어도 좋을 법하다. 아무리 좋은 시라도 그 내용을 모르면 그 시대를 살다 간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며칠 뒤면 한글날이다. 그러고 보니 소쇄원을 만든 양산보 선생을 비롯한 제월당에 시를 써 걸어둔 당대의 시인묵객들이 살다 간 시대는 세종의 한글 창제로부터 100년 뒤다.
세종임금은 '백성들이 어려운 한자 때문에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억울함을 겪는 것을 안타까워해서 백성들이 쉽게 익히고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글자를 창제하여,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하고자 한글을 만들었다'라고 했는데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비, 학자들은 세종임금의 '한글 창제'를 왜 외면했을까? 창제 이후 100년이 지났건만 제월당 벽면을 가득채운 문자는 '한글'이 아니라 '한자'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의 경우에도 한자 시가 여전히 편액 속을 장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어쩔 수 없는 환경이었다 해도 후대의 우리들이 찾아가서 그 내용을 알 수 있는 조치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한글 번역본을 툇마루에 놓아두거나(코팅해서 읽고 그 자리에 두라고 하거나) 따로 설명판을 만들어 두거나 아니면 누리집을 활용해도 좋을 듯하다.
이 글을 쓰면서 혹시 소쇄원 제월당 편액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싶어 누리집을 찾으니 누리집이 '기간 만료'란다. 소쇄원이 단순한 '정원 구경용'이 아니라면 그 속에 들어 있는 '선조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세세한 작업의 필요성을 느꼈다. 담양 소세원이 하드웨어라면 제월당 편액에 걸린 시들은 옛 선현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소프트웨어일 것이다.
인터넷에 올라온 소쇄원 글들은 하나같이 '하드웨어 찬양 일색'이다. 건물이 어떻고 배치가 어떻고 말이다. 모두 건축가가 될 것도 아닌데 그런 하드웨어적 관점보다는 자연 속에서 인생을 관조하던 선현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다음 방문 때에는 기자의 제언이 받아들여져 제월당 편액 시들의 의미를 새겨볼 수 있으면 좋겠다.
* 담양 소쇄원 : 전라남도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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