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장례식, 눈물 닦고 웃음으로…故전유성이 남긴 ‘축제 같은 이별’

박수호 매경이코노미 기자(suhoz@mk.co.kr) 2025. 10. 4.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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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김정렬이 자신의 대표 개인기인 ‘숭구리당당’ 춤을 추며 고 전유성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사진=매경 스타투데이)
“숭구리당당 숭당당. 형님 나를 보고 가세요. 어디 가시냐고. 날 보고 가라고.”

지난 9월 28일, 개그계의 대부 고(故) 전유성의 영결식. 엄숙함이 맴돌던 장례식장은 이내 웃음과 눈물이 뒤섞인 무대가 됐다. 개그맨 김정렬이 자신의 대표 개인기인 ‘숭구리당당’ 춤을 추며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슬픔에 잠겨있던 동료들의 얼굴에는 이내 옅은 미소가 번졌다. 고인이 평소 원했던 ‘웃음 가득한 작별’이 현실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장례 문화에 새로운 화두를 던지는 의미 있는 장면이다. 슬픔과 통곡이 당연시되던 장례식에서 고인의 삶을 유쾌하게 추억하고, 남은 이들을 위로하는 새로운 방식의 추모가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김정렬의 ‘춤추는 추모 퍼포먼스’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23년 고 서세원의 영결식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고인을 보냈다. 당시 그는 “탄생도 기쁨이고, 죽음도 기쁨이다. 가시는 길 잘 가시라고, 부드럽게 가시라고 제가 길을 만들어드리겠다”며 춤을 췄다. 슬픔을 웃음으로 승화하는 코미디언들만의 독특한 애도 방식이자, 고인이 생전 대중에게 줬던 웃음을 마지막까지 기억하겠다는 존중의 표현이다.

고 전유성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알려진 김신영 역시 진심 어린 추도사로 새로운 추모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사진=매경 스타투데이)
고 전유성과의 특별한 인연으로 알려진 김신영 역시 진심 어린 추도사로 새로운 추모의 본보기를 보여줬다. 김신영은 영결식에서 고인을 “나의 어른 전유성 교수님”이라고 칭하며 “제자를 넘어서 친구라고 불러 주셨고, 제가 가장 힘들 때 ‘한 물 가고 두물 가고 세 물이 가면 보물이 된다’는 믿음을 주셨다”며 고인과의 추억을 회상했다. 그녀의 추도사는 슬픔 속에서도 고인에게서 받았던 따뜻한 가르침과 애정을 기리며, 살아있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줬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장례식은 엄숙주의와 형식에 얽매여 있었다. 고인에 대한 예의라는 명분 아래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마저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 개인의 삶과 개성을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장례 문화도 변화의 기류를 맞고 있다. 고인이 좋아하던 음악을 틀고, 즐겨 먹던 음식을 나누며, 생전의 유쾌했던 일화를 이야기하는 등 고인을 추억하는 방식이 다양해지는 추세다.

이런 변화의 중심에는 ‘어떻게 기억될 것인가’에 대한 고인 자신의 의지가 담겨있다. 평생을 남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살아온 코미디언 전유성에게 ‘숭구리당당’ 춤보다 더 어울리는 추모 방식이 있었을까. 그의 마지막 길은 슬픔에 잠긴 장례식이 아닌, 그의 삶을 축하하고 기억하는 한 편의 ‘개그콘서트’ 피날레 무대 같았다.

고인의 생전 애창곡을 전속 성악가가 직접 불러주는 서비스로 각광받고 있는 김해 낙원추모공원(낙원추모공원 제공)
고인의 생전 애창곡을 전속 성악가가 대신 불러주는 서비스로 새로운 장례문화를 이끌고 있는 낙원추모공원의 박승현 이사장은 이러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박 이사장은 “과거 장례는 슬픔을 나누는 엄숙한 의식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지만, 최근에는 고인의 삶을 기리고 추억하는 축제의 장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김정렬 씨의 추모 퍼포먼스와 김신영 씨의 진심 어린 추도사는 슬픔에만 갇히지 않고, 고인이 생전 대중에게 줬던 웃음과 따뜻한 마음을 기억하며 보내드리려는 최고의 존중”이라며 “획일적인 장례 문화를 넘어, 고인의 개성과 인생을 반영한 다양한 추모 방식이 우리 사회에 자리 잡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 전유성과 그를 떠나보낸 개그맨들이 우리 사회에 남긴 것은 비단 웃음만이 아니다. 그들은 눈물 속에서도 웃을 수 있고, 가장 슬픈 날을 가장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다는 새로운 이별의 방식을 선물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잘 사는 것(Well-being)’을 넘어 ‘아름다운 마무리(Well-dying)’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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