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차례 없앴더니 밥상이 이렇게 달라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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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선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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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절 선물 마트에 이미 명절 선물들이 진열 되기 시작했다. |
| ⓒ 한선아 |
집안 어른이었던 할아버지께 인사를 올리러 오던 친적들까지 대접해야 했던 그 시절, 친정 엄마를 포함한 며느리들은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음식을 내놓고 치우는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며느리의 고생을 당연시 여기며 누구 하나 그 공을 치하한 사람이 없었다.
며느리가 느끼는 제사의 무게
결혼 후 나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한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다. 신혼여행 다녀온 후 인사를 드리러 시댁에 갔다. 아버님은 내게 손수 쓴 종이 한 장을 건네셨다. 종이에는 제사 날짜와 제사의 주인공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시댁 조상님들의 기일이 적혀 있는 종이를 받고 나니 내가 말로만 듣던 K 며느리가 된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남편은 제사 날짜도 누구의 제사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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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반 조기 나는 명절 일주일 전에 생선을 미리 사 놓고 다듬곤 했었다.제사 장에 생선 까지 살려면 하루 만에 되지 않았기에 틈틈히 장을 봐 둔 것이었다. 생선은 잘 다듬어 냉동실에 둔 후 해동 해 굽곤 했다. 지난 일이지만 그땐 일하면서 어떻게 장을 봤는지 모르겠다. |
| ⓒ 한선아 |
밥은 고봉밥으로 채우고 국은 건더기가 소복이 쌓이도록 담아야 했다. 자반 조기는 밥, 국과 함께 나가야 했다. 그 후 남자들이 절을 하며 술을 올린다. 그 의식이 끝나면 밥과 국을 걷어들이고 물을 내와야 한다. 집안마다 제사를 지내는 순서와 과정도 조금씩 다르기에 실수라도 할까 봐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의식이 다 끝나고 나면 많은 음식들을 먹기 좋게 덜어 내 식구들이 먹을 수 있도록 상을 차린다. 다 먹고 나면 과일과 차를 내어 놓는 과정까지 내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설거지를 하고 남은 음식들을 나누고 용기에 담아 보관하면 끝난 줄 알지만 일일이 다 나열하기도 힘들 만큼 소소한 할 거리들이 많은 것이 제사였다.
며느리 입장에서 보는 제사는 난센스 그 자체였다. 나는 시댁 조상들을 기리는 제사가 며느리들 손에서 시작되고 마무리 되는 현실에 부당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며느리인 내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면 시어머니는 큰일이 나는 것처럼 펄쩍 뛰셨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하다를 반복하며 어쩔 줄 몰라했고 마음이 편치 않아 어머니 눈치를 살피게 되었다.
그러던 중 집안 사정상 갑자기 제사를 넘겨받게 되었다. 몇 년간은 직접 제사의 모든 과정을 준비했고 마무리했다. 제사를 지내기 위한 수고는 늘 내 몫이었고 제대로 거들지 않은 남편과 싸움은 필연적이었다.
가문을 위한 전통적 의례라는 이름 하에 여성의 노동만이 대물림되고 있는 것이 제사 문화라고 생각했다. 또 가족 중 특히 며느리가 그 수고에 동참하지 못하면 질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시어머님의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제사 열전은 언제나 빨간 대야에 가득 채워 이고 온 제사 음식들 이야기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마음속의 말을 다 쏟아 낼 베짱이 없었던 나는 집안의 평화를 위해 참고 참으며 묵묵하게 17년간 전을 뒤집고 탕국을 끓였다. 결혼 후 명절은 더 이상 즐거운 연휴가 아니었다. 명절에 북적이는 공항 모습을 뉴스로 보며 '조상 복은 공항에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시부모님의 중대 발표가 있었다. 명절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선언하셨다. 그 선언에는 명절 후 알려지는 부정적인 뉴스와 차례를 지내지 않는 동네 이웃들의 공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나는 겉으로는 덤덤한 척했지만 속으로 그동안의 고생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것이 고생 뒤에 오는 낙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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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달 초밥 지난 명절에 시켜 먹은 음식 중 하나이다. 그 외에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치킨, 아버님이 드시고 싶으셨던 족발 등을 시켜 한끼를 먹고 즐겼다. |
| ⓒ 한선아 |
제사 대신 맛있는 음식을 배달시켜 먹는 급진적인 발전까지 보이며 꿈에 그리던 평등한 명절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바쁘게 움직이던 집안 여자들도 앉아서 여유 있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가족들의 안부를 묻고 대화를 나누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제사라는 짐이 사라지자 명절은 의무가 아닌 재충전을 할 수 시간이 되었다.
당연히 남편과 싸울 일도 없어졌다. 올해 추석은 긴 연휴가 있어 벌써부터 설레기 시작한다. 조상님들 역시 상다리 휘어지게 차려낸 음식 보다 가족들 모두 즐겁고 상처 없는 명절을 보내기를 바라실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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