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중시위는 단순 갈등 아닌 민주주의 시험하는 '사건'

조경일 2025. 10. 4.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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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일본과 독일의 눈길 끄는 대응... 혐오 방치한다면 그 끝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조경일 기자]

 9일 오후 ‘차이나 리(재명) 아웃’ 행진에 참여한 자유대학 등 윤석열 지지자들이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은 서울 중구 명동을 행진하며, “차이나 아웃” “닥쳐!” 등 혐중 구호를 영어로 외쳤다. 이날 오전 이재명 대통령은 국무회의 토의중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 명동 한복판에서 열리고 있는 혐중시위에 대해 "관광객을 늘려야 하는데 얼마 전 기사를 보니깐 특정국가 관광객을 모욕하는 집회를 하고 있더라”며,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깽판’이라고 지적하고 대책마련을 주문했다.
ⓒ 권우성
요즘 한국 사회의 거리 한복판에서는 극우 성향 단체들이 주도하는 '혐중시위'가 공개적으로 펼쳐지고 있다. "차이나 아웃", "공산당 아웃" 같은 구호가 확성기를 타고 울려 퍼지고, "중국인 입국 전면 금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러한 선동은 단순한 민원이나 불만의 표출이 아니다. 윤석열 정권의 12.3 계엄 선포 당시에도 '중국 개입에 의한 부정선거'라는 음모론이 동원되었듯, 혐중 시위는 내란정국과 맞물려 정치적 세를 불리고 있다. 특정 집단을 위협으로 규정하고 사회 불안을 외부로 전가하는 이 구조는 곧 혐오의 정치적 동원이다.

일본의 사례: 혐한시위와 법적 대응

이 풍경은 낯설지 않다. 일본 사회는 이미 2000년대 이후 '재특회'를 중심으로 한 극우 세력의 '혐한시위'를 경험했다. "조선인은 일본에서 나가라", "한국인은 범죄자 집단"이라는 구호가 난무했고, 이는 경제 불황과 역사적 적대와 왜곡, 민족적 배타주의가 결합한 결과였다. 혐한시위는 특정 집단에 대한 단순한 반감이 아니라, '민족적 배제의 정치'를 대중화하는 도구였다.

그러나 일본은 제도적 대응에 나섰다. 2016년 '헤이트스피치 해소법'을 제정하며 혐오 발언에 제동을 걸었다. 형사처벌 규정은 없어 한계가 있지만, 공적 공간에서 혐오 표현이 사회적으로 용납될 수 없음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상징적 판례도 있었다. 교토지방재판소는 '우토로 마을'에서 극우 혐한 시위대가 재일한국인을 향해 "불법체류자", "범죄자 집단"이라 모욕하고, 한 20대 청년의 방화 행위가 심각한 존엄 침해라 판단해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이후 혐한 발언을 공공연히 외치는 극우 시위는 크게 위축되었다. 일본 사회는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혐오 표현을 법과 사회적 금기의 영역으로 끌어내리는 경험을 축적한 셈이다. 참고로, 독일의 경우 온라인 SNS 상에서의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도 처벌하는 네트워크 시행법(Network Enforcement Act), 일명 '페이스북 법'이 있다.

닮은 풍경, 닮은 논리

한국의 혐중시위와 일본의 혐한시위는 구조적으로 닮아 있다. 첫째, 위협이라는 프레임이다. 한국의 극우는 중국인을 안보 위협과 간첩으로 동일시한다. 계엄 당시 '중국인 간첩 99명 체포'라는 가짜뉴스가 대표적이다. 일본 역시 한국인을 '역사적 반일세력'이자 '범죄 집단'으로 규정했다.

둘째, 정치적 동원이다. 한국 보수 단체가 혐중 구호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듯, 일본의 재특회도 혐한시위를 정치적 영향력 강화의 수단으로 삼았다. 특히 한국의 경우, 제1야당 정치인 일부가 직접 혐중론을 뒷받침하며 극우 담론을 제도 정치와 접합시킨다는 점에서 더욱 위험하다.

셋째, 불안의 전환이다. 경제적 불안과 정치적 갈등을 민족주의적 적개심으로 바꾸는 메커니즘이 작동한다. 이는 사실(fact)이 아니라 선동의 논리로 움직인다. 예컨대 중국인 무비자 입국 정책이 사실은 윤석열 정부에서 추진하고 결정한 것임에도, 극우는 이를 '이재명 정부 책임'으로 왜곡한다. 사실보다 선동이 우선되는 것이다.

경계를 만드는 고립의 정치

혐오 시위는 단순한 증오 표출이 아니다. 그것은 경계를 구축하고, 경계인을 배제하려는 정치적 실천이다. 일본에서 재일한국인이, 한국에서 북향민과 조선족이 '내부의 외부'로 존재해온 역사적 맥락이 이를 뒷받침한다. 그들은 사회 내부에 있으나 언제든 외부로 밀려날 수 있는 존재, 곧 경계인이다. 혐오 시위는 그들을 주변부로 몰아내려는 집단적 폭력이다.

문제는 정치가 이를 제지하기는커녕 정당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재일조선인, 재일한국인, 북향민, 조선족, 고려인, 재미한인들은 각자 속한 사회에서 다른 경계 위에 서 있으면서도, 경계를 넘어서는 삶을 통해 '다름 속 공존'의 가능성을 체화해온 존재들이다. 혐오는 이들의 존재론적 투쟁을 다시 주변화시키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새로운 공동체적 상상력을 요청한다. 혐오에 맞서는 일은 단순히 차별의 억제가 아니라, 경계를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대응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일본의 경험은 의미 있는 교훈을 준다. 혐오 표현 규제하는 '헤이트 스피치법'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표현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자유가 특정 집단의 존엄을 짓밟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국회는 차별금지법 제정을 서두르던지 '헤이트 스피치법'을 도입해야 하며, 지방정부도 혐오 대응 조례를 마련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사회 전반에 혐오에 대한 민감성을 확산시키는 일이 병행되어야 한다.

혐오는 자유가 아니다

혐중시위는 단순한 사회적 갈등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의 원칙을 시험하는 사건이다. 혐오는 사회를 분열시키고, 공동체를 붕괴시킨다. 법적·제도적 대응 없이 방치한다면 그 끝은 폭력일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가 혐중시위에 무관용을 선언하는 것은, 단지 중국인을 보호하는 일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다.

우리는 지금 분명히 선택해야 한다. 혐오는 자유가 아니다. 혐오는 민주주의를 좀먹는 독이다. 혐오의 정치가 아닌 연대의 정치로 나아갈 때, 한국 사회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민주주의를 마주할 수 있다. 내란을 종식시킨 시민민주주의의 힘이 혐오를 넘어 공존의 사회를 열어갈 토대가 되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조경일 작가는 함경북도 경흥(아오지) 출신이다. 정치컨설턴트, 국회 비서관을 거쳐 현재 피스아고라 대표로 활동하며 대립과 갈등의 벽을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까 줄곧 생각한다. 책 <아오지까지> <리얼리티와 유니티> <이준석이 나갑니다>(공저) <분단이 싫어서>(공저)<한반도 리빌딩 2025>(공저)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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