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간식이 호텔 티세트로…‘뉴밀리어’의 힘

정다운 매경이코노미 기자(jeongdw@mk.co.kr), 박환희 매경이코노미 인턴기자(phh1222@daum.net) 2025. 10. 3.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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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임자 젤라또? 땅콩 팥빙수? 주목받는 K디저트
웨스틴 조선 서울 라운지&바 ‘헤리티지 애프터눈 티 세트’. (조선호텔앤리조트 제공)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에서 판매 중인 ‘르 스쿱(Le Scoop)’ 젤라또. (르메르디앙호텔앤리조트 제공)
# 서울의 한 호텔에서는 고소한 알밤과 시원한 배, 달콤한 홍시가 구절판에 오른다. 곁들일 음료로 은은한 국화차와 빛 고운 화과수 아이스티가 나온다. 한국 전통미가 깃든 아름다운 구절판에 제공돼 눈과 입을 모두 즐겁게 한다. 한 외국인 관광객은 ‘먹기 아까운 예술품 같다’며 인증샷을 찍는다. 한국 전통 간식이 특급 무대 위에 올라, 멋스러운 옷을 입고 고급스럽게 재탄생한 순간이다.

# 한동안 외국인 먹방 유튜버 사이에서는 ‘꿀떡 시리얼’이 K푸드 이색 조합으로 인증 영상을 올리는 게 유행했다. 지난해 틱톡과 인스타그램에서 챌린지로 인기를 얻으며 빠르게 확산됐다. 제조법은 간단하다. 커다란 그릇에 시리얼 대신 달콤한 꿀떡을 가득 담고 우유를 넣으면 된다. 알록달록 화려한 색과 쫀득한 식감을 두고 해외 인플루언서들은 ‘K버블티’라고 찬사를 보낼 정도다. 특히 밀가루가 아닌 쌀을 재료로 해 ‘글루텐 프리’ 식품이라는 점에서 건강식으로까지 평가받는 분위기다. 지난 5월 KBS 예능 프로그램 ‘1박 2일’에서 김종민, 문세윤이 맛있게 즐기며 국내에도 널리 알려졌다.

팥, 인절미, 흑임자, 곶감 등 한국에서만 익숙하던 식재료가 디저트 테이블에 올랐다. K푸드 열풍을 타고 한국 전통 재료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K디저트’가 호텔과 커피숍, 그리고 SNS까지 장악하며 새로운 소비 아이콘으로 부상하고 있다.

K디저트 확산의 1막은 SNS였다. 해외 인플루언서들이 틱톡 등을 통해 꿀떡을 우유에 말아먹는 이른바 ‘꿀떡 시리얼’이나, 약과 위에 아이스크림을 얹어 즐기는 조합을 소개한 영상이 수백만, 수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며 입소문을 탔다. 한국 전통 디저트는 ‘인증샷’ 문화와 맞물려 외국인·MZ세대 입맛에 빠르게 안착했다. 쫀득한 식감, 고소한 고명, 과하지 않은 단맛은 ‘익숙하지만 한 끗 다른’ 감각으로 소비자 호기심을 자극했다.

K팝, K드라마를 넘어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까지 번진 한류 열풍 덕에 K디저트 구매로도 이어졌다. 드라마, 영화, 게임, 애니메이션 속 약과와 호떡, 꿀떡 같은 음식이 전 세계 시청자에게 반복 노출되면서 전통 간식에 대한 관심을 더 키웠다.

이런 분위기를 발 빠르게 반영해 유통가에서는 캐릭터, 스토리와 결합한 제품을 잇따라 선보였다. 파리바게뜨는 케데헌에 등장한 사자보이즈의 소다팝(Soda Pop) 무대를 표현한 ‘소다팝 케이크’, 헌트릭스를 모티브로 한 ‘골든 버터번’, 호랑이와 곶감 스토리를 담은 ‘파바 곶감파운드’, 오메기빵을 연상시키는 ‘제주쑥 오메기빵’ 등을 출시했다.

경복궁 궁중다과 체험으로 유명한 ‘생과방’은 이른바 ‘약케팅(약과+티케팅의 합성어, 인기 공연을 예매하는 것처럼 약과 구입에 높은 경쟁률을 뚫어야 한다는 뜻)’이라 불리는 붐을 일으킨 바 있다. 최근에는 현미의 고소함을 더한 현미 약과, 유기농 보성 녹차와 초콜릿으로 맛을 낸 녹차 약과, 은은한 바닐라 향과 누룽지의 고소한 풍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바닐라 누룽지 약과 등 전통 약과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입소문을 탔다.

롯데호텔 제주에서 판매하는 오메기떡 단팥빵과 우도 땅콩 오란다. (롯데호텔앤리조트 제공)
카시아 속초 호라이즌에서 판매하는 ‘옥수수’. (카시아속초호텔앤리조트 제공)
THE 22 남대문 베이커리 ‘어텀 딜라이트 세트’.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 제공)
호텔이 연 ‘프리미엄 무대’

길거리 음식으로 입호강·눈요기는 덤

K디저트 고급화는 호텔이 맡았다. 서울 주요 특급호텔은 전통 다과를 티세트로 재해석해 ‘경험 소비’를 전면에 내세웠다.

웨스틴 조선 서울은 주악과 양갱, 곶감말이 등 한국인에게 친숙했던 디저트를 ‘헤리티지 애프터눈 티 세트’로 구성했다. 여기에 오미자차와 쌍화차를 곁들이며 차와 다과가 어우러지는 전통의 미학을 그대로 살렸다.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새로운 문화 체험의 장이, 내국인 고객에게는 잊었던 미각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

코트야드 메리어트 서울 남대문은 구절판에 무화과·알밤·홍시·사과·배 등 가을을 대표하는 재료를 칸칸이 담아냈다. 고객들은 계절의 단면을 눈으로 보고 혀로 느끼며, ‘먹는 전시회’와 같은 경험을 공유한다. 특히 MZ세대 여성 고객층이 사진과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인증하는 문화로도 번졌다.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K디저트도 호응을 얻고 있다. 더 플라자는 제주 우도 땅콩을 입힌 팥빙수를 대표 메뉴로 만들었다. 팥의 달큰함과 땅콩의 고소함이 어우러진 이 메뉴는 외국인 고객에게는 여행의 기억을 되새기는 기념품이다. 롯데호텔 제주는 제주 특산 오메기떡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오메기떡 단팥빵을 내놨다. 떡과 빵의 경계를 허문 독특한 식감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지역성과 브랜드 가치를 함께 끌어올렸다. 강원도에 자리 잡은 카시아 속초는 강원도산 옥수수로 매일 갓 구워내 지역 특산물이 지닌 느낌을 그대로 전한다.

흔하게 보던 길거리 음식을 고급 디저트로 탈바꿈시킨 사례도 있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바삭한 찹쌀 반죽 안에 호두와 수수, 견과류를 채우고, 그 위에는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얹은 ‘호두호떡’을 선보였다.

한국 재료와 세계 디저트가 만나는 접점도 있다.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한국 재료를 활용한 유럽풍 디저트를 내놨다. 쌀로 만든 젤라또와 제주 감귤의 청량을 담은 한라봉 젤라또, 흑임자 티라미수 등이다. 마다가스카르 바닐라빈, 시칠리아 피스타치오 등 서양의 고급 원료 위에 한국적 재료를 얹어 만들었다. 호텔신라도 서양식 디저트를 한국식으로 변주하는 길을 택했다. 프랑스 전통 과자인 마들렌과 카눌레에 흑임자·오미자·호박·무화과·밤을 더해 한국의 계절을 녹여냈다.

이외에도 호텔 베이커리들은 명절·시즌 한정 상품에 전통 재료를 적극 적용해 선물 수요까지 흡수하는 중이다.

수출 전선도 움직인다. 삼립이 제조한 ‘삼립약과’는 지난해부터 미국 코스트코와 일본 돈키호테에서 판매 중이다. 하동 녹차를 활용한 말차 랑드샤는 미국·동남아 유통 채널에 입점하며 반응을 시험 중이다. ‘프랑스식 디저트 양식+한국 재료’라는 공식을 바탕으로 현지 소비자에게 낯설지 않은 형태로 다가가는 전략이다. 앞서 국내 호텔들이 프렌치·이탈리안 디저트에 팥·밤·흑임자·쑥을 접목해 호평을 받은 경험은 해외 시장에서도 유효한 참고서다.

패스트리 부티크 카눌레 컬렉션. (서울신라호텔 제공)
고소한 콩고물과 담백한 통팥이 어우러진 ‘시그니처 빙수’. (워커힐호텔앤리조트 제공)
더 플라자 우도 땅콩 팥빙수. (한화호텔앤리조트 제공)
반얀트리 서울에서 판매하는 호두호떡. (반얀트리클럽앤스파서울 제공)
K디저트 열풍 이유는

익숙한데 새로운 ‘오리지널의 힘’

전문가들은 K디저트의 힘을 ‘근본이즘’과 ‘뉴밀리어’에서 읽는다. 근본이즘(근본+ism)은 고전적인 가치와 믿을 수 있는 원조가 주는 안정감과 만족을 추구하는 트렌드다. 뉴밀리어(Newmiliar)는 영어 단어 새로움(New)과 익숙함(Familiar)을 합쳐 만든 용어다. ‘익숙한 새로움’이란 뜻으로, 익숙한 범주 안에서의 새로움을 추구하는 MZ세대 성향과 K디저트가 잘 맞아떨어졌다는 설명이다.

전다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급변하는 시대에도 소비자는 변치 않는 ‘원조’ ‘클래식’이 주는 안정감과 만족을 추구한다”며 “유통가와 호텔 업계 입장에서도 약과, 양갱, 식혜 등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갖춘 디저트가 브랜드 가치를 높여주는 효과를 누리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한국 전통 재료가 서양 디저트의 주재료인 정제설탕, 버터, 밀가루에 비해 훨씬 건강한 식재료라는 인식이 한몫했다”며 “여기에 ‘할머니 간식’ 이미지를 벗고 세련된 패키징과 플레이팅으로 젊은 수요를 흡수한 것도 K디저트 열풍에서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K디저트는 SNS, 문화 콘텐츠, 호텔, 지역 특산물까지 다양한 기반을 확보한 만큼 한동안 유행이 지속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동시에 호텔, 고급 커피숍 등 프리미엄 시장을 중심으로만 확산되다 보면 대중 접근성이 떨어지고 ‘비싼 유행’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경고도 덧붙는다.

전 연구위원은 “본질을 잃은 모방 상품이 쏟아지면 피로감이 커지고, 장기적으로 전통 디저트 전체 이미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K디저트가 롱런하려면 ‘한국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한다. 녹차, 옥수수처럼 보편 재료는 ‘한국적 해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차별성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이 교수는 “산지·제조 공간·조리법 등 한국만의 고유한 맥락을 제품에 입히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정다운 기자 jeong.dawoon@mk.co.kr, 박환희 인턴기자]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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