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정의 판앤펀] 감정이 주인공이 된 드라마

2025. 10. 3.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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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유난히 긴 이번 연휴는 드라마 ‘은중과 상연’을 보기에 좋은 시간이다. 15부작이라는 만만찮은 길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두 여주인공의 10대부터 40대까지 이어지는 감정의 궤도를 끊김 없이 한 호흡에 따라가시길 권하고 싶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좋았냐고 이유를 설명하라고 하면 혹시 개인적인 역사를 들추어내야 할지도 모른다. 친구와의 우정이라는 겉표지 속에 자리 잡은 은밀한 진실들. 동경과 끌림으로 시작해서 배려와 애정이 있었지만 질투와 부러움, 심지어 파괴 욕망까지. 웃는 얼굴 뒤에 숨겼던 치졸하고 때로는 음험했던 마음. 그런 것들을 고백해야만 두 주인공의 드라마에 푹 빠져 공감하는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30년 우정 그린 ‘은중과 상연’
두 친구의 애증과 연민 실감 나
감정들의 파편 모인 게 인생

나도 어렸을 때는 상연처럼 부러움의 대상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내면은 비어 있었다. 또 한때는 은중처럼 상연 같은 뾰족한 친구들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 속이 찬 사람인 척 하려 하기도 했다. 딱 은중과 상연 같은 애증의 관계를 내 주변에서 보기도 했다. 아마도 이 드라마를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두 주인공의 모습에 자신의 모습들을 덧대어 보게 될 것이다. 좋은 드라마는 그렇게 내 삶과 마음속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아 근데 사건이 없어. 그냥 여자애 둘이 지지고 볶다가 절교했다, 그게 다예요.”

은중(김고은)의 대사는 이 드라마를 가장 간결하게 요약한다. 조력사망·성소수자 같은 무거운 소재가 있긴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내면의 감정들이다. 은중은 화장실 두 칸 있는 상연의 집과 뭘해도 뛰어난 상연을 부러워했던 아이였고, 상연은 “아무리 잘해도 엄마를 기쁘게 할 수 없어” 일찍 좌절한 아이였다. 커서는 늘 인기 많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은중에 질투를 느낀다. 각자의 결핍은 서로를 통해 자극되고, 그 감정은 끝내 삶의 궤적을 바꿔놓는다. 부러움과 질투, 애증과 연민. 누구에게나 있었던 그 복잡한 마음의 파장이 반전을 거듭하는 사건 이상의 강도로 밀려든다.

‘30여년간에 걸친 여성 간의 우정’이라는 단순한 스토리라인 속에 이 드라마는 동경과 원망, 자존심과 수치심이 얽힌 인간관계의 심층을 찬찬히 들여다본다. 15부작이라는 길이는 이런 감정의 층위를 차근차근 쌓아가는 데 필요한 시간이었다. 떨림과 긴장, 숨겨진 분노, 한숨을 천천히 전달하는 김고은, 박지현의 차분한 연기를 담아내는 느린 호흡이 오히려 이 드라마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상연의 질투는 자신을 혐오하고 은중이 가진 것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으로까지 번져나간다. 높은 자존심과 낮은 자존감의 상연은 연애든 커리어든 끊임없이 둘의 관계를 무너뜨린다. 은중이 참지 못하고 “도둑년”이라고 그를 경멸할 때까지. 그러면서도 자신의 마음속 폐허가 갈구하고 있는 마지막 애정과 지지를 은중에게 바란다. “네가 누구에게 받아들여지겠니”라고 저주했던 은중을 찾아가서 굳이 자신의 안락사 여행에 동참을 바란다. “내가 결국 너에게 받아들여졌구나”라는 안도의 말을 유언같이 남기며. 결국 우리를 버티게 하는 건 누군가의 인정, 누군가의 품이다.

관계는 늘 불완전하다. 받은 상처는 세밀히 기억되지만 내가 준 상처는 대충 잊힌다. 오해는 진실보다 오래 남고, 이해는 늘 늦게 도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 누군가를 동경하고, 미워하고, 끝내는 안아주고 만다. 어쩌면 삶은 그 불완전한 관계들을 지고 가며 겨우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과정일지 모른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당신의 마음은 계속 질문하게 될 것이다. 나는 저 우정의 관계와 그것을 해치는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 나를 배신한 친구가 돌아왔을 때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혹시 죽기를 결심했을 때 누가 옆에 있기를 원하는가. 세상을 떠나는 방식은 어떤 게 좋을까. 좋은 드라마는 그저 과거를 아름답게 되돌아보게만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여러 선택들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하게 만든다.

‘은중과 상연’은 무언가를 완결하고 정답을 찾기 위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것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다. 사람의 감정도 성격도 관계도. 무언가 한마디로 정의 내릴 수 없는 다채로운 감정의 파편들이 모여 한 사람의 성격과 두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그 속에 끝내 남은 흉터도 있다.

그런 감정과 성격과 관계의 조각보들이 얼기설기 모여 있는 게 인생이라는 것. 그러니 어떤 감정이 옳고 어떤 감정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 또 어떤 우정은 든든하지만 어떤 우정은 깨어지기 쉬운 연약함 속에서도 가늘게 이어질 수도 있다는 것. 그러니 정답을 구하지 말고 그래도 나와 너를 덜 미워하며 이끌고 가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 그런 생각들을 하기에 이렇게 여유 있는 연휴가 적당해 보인다. ‘은중과 상연’은 그 불완전한 콜라주 같은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드라마다.

이윤정 문화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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