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때문에 전염병 퍼졌다? 마을에 퍼진 소문의 진실
[김성호 평론가]
영화예술의 현재적 경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주된 창구가 바로 영화제다. 창작자가 제 작품을 세상에 발표하고 동료 작가며 평론가, 관객에게 평가를 받는 장이다. 또한 지역 문화예술의 가능성을 환기하고 수입과 배급 등 거래가 체결되는 마켓으로의 역할을 수행한다. 그 영화제 가운데서도 전 세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곳이 바로 프랑스 칸영화제다. 베니스와 베를린, 또 지역영화제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아카데미시상식 등이 경쟁하지만, 전 세계 최고의 작가들이 경합하는 독보적 지위를 가진 곳이 칸영화제란 데 이견은 없을 테다.
칸영화제 경쟁부문은 곧 동시대 최고 수준 작가들이 경합하는 장이다. 칸영화제는 경쟁부문과 함께 다채로운 섹션을 운영하며, 그저 수준에의 추구만이 저의 유일한 지향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그중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이 있다. 경쟁부문을 제한다면 가장 인지도 높고 주목받는 섹션이다. 베니스, 베를린에서 최고상을 받은 작품 못잖게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에서 대상을 받은 영화도 전 세계적 관심을 받고는 한다. 한국에서도 홍상수와 김기덕이 이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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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부산국제영화제는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작을 한국에서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창구가 되고는 한다. 올해 또한 마찬가지다.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이 '플래시 포워드' 섹션에 초청된 12편의 작품 가운데 하나로 이름을 올린 것이다. 칸영화제 초청작이 12편 중 무려 8편이나 돼 칸영화제의 선도적 지위를 부산국제영화제 측이 각별히 고려하고 있음을 확인케 했다.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은 1980년대 칠레의 광산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광부가 유독 영화예술 가운데 인기가 있는 직업이란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마도 육체노동의 특성, 위험하고 고된 환경 등이 상징적이며 극적 효과를 발하는 때문일 테다. 그런데 이 영화는 조금 다르다. 광산마을을 배경으로 하지만 광부들은 조연일 뿐, 서사의 중심에 서는 건 그들에게 웃음과 즐거움을 파는 이들이다. 노동자들의 휴식처가 되는 작은 바, 그곳에서 일하는 게이와 트랜스젠더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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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그러나 어디 삶이 완벽하기만 할까. 리디아에게도 어려움이 있는데, 다름 아닌 친구가 없다는 것이다. 이 마을 또래 아이들과 리디아의 배경이 너무나도 다른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대부분 광부의 자식이지만, 리디아는 그렇지 않다. 그것도 다른 아이들의 엄마가 비난하고 모욕하는, 심지어는 아빠인 광부들조차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성소수자들과 함께 사는 아이다. 티끌만큼의 다름도 놀림이며 따돌림의 재료로 쓰는 아이들이니 리디아의 처지야 짐작할 만하다.
리디아에게 쏟아지는 놀림과 괴롭힘은 나날이 그 정도가 심해진다. 또래 남자애들이 리디아를 물에 빠뜨리고 전염병을 퍼뜨린다며 모욕하는 모습으로 채워진 도입부는 리디아가 마주한 집 바깥 환경이 어떤 모양인지를 단박에 일깨운다. 초등학생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버거운 고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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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 스틸컷 |
| ⓒ 부산국제영화제 |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의 줄거리는 간명하다.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집단적 핍박, 무지에서 출발한 혐오가 무절제하게 퍼져나가는 상황의 심각성을 부각하는 것이다. 광부들의 조직적 행동과 이에 대한 저항 사이로, 리디아의 엄마인 플라밍고와 그에게 집착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을엔 혐오와 탄압만이 있지 않다. 우정과 사랑, 유대와 연대 또한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좋은 것은 혐오의 대상인 바에서 태동한다. 저를 침탈한 이들까지 사랑하는 이들, 서로의 외로움을 딛고서 간절한 사랑을 피워내는 사람들이 카메라의 중심에 선다. 이토록 귀한 것이 위태롭게 흔들리며 마침내는 깨어지는 광경이 영화의 줄기이고, 또한 그 모든 어려움 가운데서도 마음과 마음을 건너 이어지는 미덕이 영화가 피우는 꽃봉오리가 된다.
퀴어, 부조리한 남성성, 시대고발 등이 <신비로운 플라밍고의 눈빛>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될 수 있겠다. 아이의 시선에서 좋은 것이 세상에선 나쁜 것이 되고, 또 나쁜 것이 마땅한 것이 되는 세상이다. 그렇다면 그런 세상은 어딘지 단단히 잘못된 것이 아닌가. 아이의 순박한 시선에서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일들이 그저 어른들의 무지함과 비겁함에 따른 것이란 건 영화를 보는 이에게 쉽게 해소되지 않는 답답함을 안긴다. 그러나 영화는 그저 세상에 대한 실망에 머무르지 않는다. 영화 속 세상이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의 일면이기도 하단 점을 확인케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제 주변을 돌아보도록 이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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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국제영화제 포스터 |
| ⓒ 부산국제영화제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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