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3인에게 듣는 수업, 마지막엔 시집도 만듭니다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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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원 시인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조련사 K’ 당선, 석수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안양의 길을 걷다’ 3회차 수업의 모습 |
| ⓒ 김은진 |
'안양의 길을 걷다'라는 제목의 이번 강의는 모두 10차시로 이루어져 있다. 수업 중 20명의 수강생이 3편의 사진과 시를 제출해 책으로 엮고 마지막 강의에서 출판기념회를 할 예정이다. 강의는 지난 9월 24일부터 매주 수요일 진행 중이다.
참여한 수강생 대부분 처음 시 쓰기에 도전하는 분으로, 이번 수업을 통해 시를 더 깊게 이해하고 자신의 시를 쓰게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수강생들은 본인의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직접 사진을 찍고 시나 짧은 산문을 써서 제출한다. 강의 중 두 번의 야외 탐방이 있으며, 함민복 시인의 특강이 1회 예정돼 있다. 황은주, 한명원, 안차애 시인 모두 시 강의와 글쓰기 수업을 오랫동안 해온 작가들이다.
황은주 시인은 201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저서로 <그 애가 울까 봐>, <새에게 소다수 하늘을>이 있다.
햇감자를 삶았어요 우리의 첫 식탁이었죠 탐스럽게 익은
햇감자를 베어 물면요 와아아아 이런 소리를 냈죠
자동차를 타고 셋은 떠났는데요 라디오에서 노래가 흘러나왔죠
우리는 따라 불렀죠
배경은 말이죠, 서로 만난 적 없었던 셋이었고요
천국으로 간 둘이 있었고 혼자 걸어 다니는 오리가 있었고 그 길의 대장인데 말이죠 골목을 벗어나자 구름까지 닿은 들녘이었어요 감자밭인지는 모르겠는데요 햇감자 같은 흥분이었죠
-황은주 시집 <새에게 소다수 하늘을>에 실린 '배경은 말이죠' 중에서
한명원 시인은 201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조련사 K'당선, 저서로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조련사 K, 그는 아침마다 동물원을 한 바퀴씩 도는 순방을 한다. 금빛 은행잎이 K의 머리 위에 왕관처럼 씌워진다. 철조망에 갇힌 초원이 펼쳐져 있다. K는 손을 흔들거나 휘파람을 분다. 잠자던 맹수가 눈을 뜨더니 달려온다. 무릎을 꿇는다.
K는 맹수의 꼬리를 목에 두르고 맹수 코트를 걸치고 곤봉을 휘두르는 자신을 상상하곤 한다.
어느 날부터인가 K의 얼굴에 구레나룻이 생기고 몸에 털이 자라고 손톱이 길어졌다. 모든 모의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생긴다. 말 안 듣는 맹수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채찍을 휘두르며 맹수보다 더 맹수처럼 사나워져 갔다.
-한명원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에 실린 '조련사 K' 중에서
안차애 시인은 2002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 저서로 <불꽃나무 한 그루>, <치명적 그늘>,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 등이 있다.
빨강 피망볶음과 방울토마토 샐러드
빨강 오미자즙에 살짝 섞은 소주 한 잔,
오늘의 메뉴는 빨강이다
간에는 간이 뼈에는 뼈가
관절에는 콜라겐 끈적한 도가니가, 그리고
헛헛한 심장의 하루에는
빨강 스토리텔링이 제격이지
헐떡이며 길어지는 바닥의 빈곤일 땐
누가 혓바닥보다 긴 식도의
식도보다 깊은 밥통의, 밥통보다 집요한
빨강의 허기를 아는 척 좀 해 줬으면 좋겠어
빨강 같이할래요?
빨강 좀 나누어 볼까요?
-안차애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에 실린 '오늘의 메뉴는 빨강'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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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은주 시인 201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석수도서관에서 진행 중인 ‘안양의 길을 걷다’ 1회차 수업의 모습 |
| ⓒ 김은진 |
"요즘 AI시대가 참 많은 일을 하고 있어요. 앞으로 시인은 사라질까요?"
수강생들의 대답은 '사라질 것'이라는 말과 '우리나라 사람들 워낙 똑똑해서 AI가 이기지 못할 거'라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옛날과 달리 식생활과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운동은 건강을 지키는 필수 요소가 되었다. AI시대가 되면서 인간의 정서적 고갈을 막기 위해서는 독서와 시 쓰기, 글 쓰기가 중요한 일이 되지 않을까. 이제 우리 마음 근육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일로 보인다.
지난 1일, 3차시 수업에서 '동양과 서양의 문학적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해 강의한 한명원 시인은 '파블로 네루다'의 시로 시작했다.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 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파블로 네루다 <시> 중에서
한명원 시인이 시를 더 잘 쓰는 방법 하나를 알려주었다.
"시를 쓸 때 본인이 소망하는 게 뭔지 마음을 들여다보고 써야 해요, 가령 병목안에 가서 시를 쓴 분이 있었는데 소망 돌탑에 대한 내용이 있었어요. 하지만 공기가 좋고 산이 울창해서 기분이 좋았다로 시가 끝났다면, 내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생각해 보셔야 해요. 그리고 그 소원에 대한 얘기를 써야겠지요. 그리고 내가 내 글에 감동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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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양작가회의 안차애 시집 <초록을 엄마라고 부를 때>, 한명원 시집 <거절하는 몇 가지 방법>, 황은주 시집 <새에게 소다수 하늘을> |
| ⓒ 김은진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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