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회도 "죄송합니다"… 아이들의 표정이 말하는 한국의 미래
[오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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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대모초운동회 서울 대모초등학교 모든 학생이 운동장에 모여 장기자랑에 환호하고 있다. |
| ⓒ 오성훈 |
최근 한 초등학교 운동회 영상은 우리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운동장 중앙에 선 아이들이 주민들에게 "죄송합니다. 오늘 저희들 조금만 놀게요"라고 사과하는 장면이다. 아이들의 당연한 기쁨의 소리조차 누군가에겐 '민폐'가 되어버린 것이다.
강경숙 의원실이 17개 시도교육청의 자료를 받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올해까지 국민신문고를 통해 교육청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운동회 소음 민원은 62건에 불과하다. 하지만 개별 학교로 직접 들어오는 민원까지 합치면 훨씬 더 많다. 서울만 놓고 봐도, 2018년 77건이던 초등학교 민원이 2024년에는 214건으로 거의 세 배 늘었다. 그 숫자 뒤에는 "엄마 아빠가 안 와줘서 슬펐어요"라는 아이들의 속내가 숨어 있다. 운동회는 더 이상 온 가족이 함께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눈치를 보며 치러야 하는 행사가 된 것이다.
부동산 시장에서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는 늘 인기다. 하지만 학교가 가까운 만큼 함성도 그대로 전해진다. 그 덕에 소음 민원은 더 자주 발생한다. 우리학교도 앞과 옆으로 아파트단지가 있다. 매년 5월 체육대회 전에 아파트 단지 관리사무소와 주민센터 등에 공문을 보낸다. 그럼에도 민원이 발생하여 체육대회 중 경찰이 두~세 번은 다녀간다. 이웃하고 있는 대모초등학교 운동회도 매 한가지 일터이다.
물꼬는 트면서 논둑은 허무는 사회
한쪽에서는 막대한 예산으로 '아이를 낳으라' 독려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어렵게 태어난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권리를 '소음 민원'이라는 이름으로 빼앗고 있다. 바짝 타들어 가는 논바닥을 보고 물꼬를 내는 농부의 마음도 모르고 논 저쪽편에서 논둑을 허무는 것과 닮아있다.
아이들에게 눈치 보지 않고 꿈을 키울 공간을 마련해줘야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인데,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놀 권리'부터 빼앗고 있다. 이 모순된 태도는 결국 미래 인재를 양성하는 직업교육 현장에도 냉소와 회의를 확산시킨다.
내가 교장으로 근무하는 서울로봇고등학교와 이웃한 대모초등학교는 학사 일정을 공유하며 '따뜻한 공존의 약속'을 실천한다. 올해 우리 학교 2학기 중간고사와 대모초 운동회 일정이 겹쳤을 때, 우리는 시험 시간을 조정했다. 본격적으로 운동회가 시작될 2교시에 예정되어 있었던 한 과목을 다른 날로 옮겼다. "이날만큼은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게 하자"는 결론이었다. 로봇 인재를 키우는 일만큼 중요한 교육은, 이웃의 행복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르치는 일이다.
10월 2일 대모초의 운동회가 시작되었다. 우리 학교는 1교시만 시험을 치렀다. 대모초도 우리학교의 사정을 아는지라 1교시는 소음을 최대한 줄여주었다. 마음 졸이며 시험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험 종료령이 울렸다. 바로 대모초 행정실에 전화했다. 문제없이 시험이 끝났으니 마음껏 소리 질러도 된다고 했다. 곧바로 대모초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함성이 가을 햇살을 타고 담장을 넘어 우리학교 교정을 가득 채웠다. 실습동 옥상에 올라 내려다보니, 장기자랑과 함께 자지러지는 아이들의 소리에 해맑은 미소가 담겨 있는 듯 했다.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아버지 미소가 번졌다.
다행히 대모초는 학부모들도 체육대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던 것 같다. 운동장 가장자리에 학부모들이 제법 보였다. 안타까운 것은 운동장에 다 모인 학생 수가 적었다. 인구절벽을 도심에서도 확인하는 것이 씁쓸했다. 그래도 오늘 대모초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길 바라며 교장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이런 당연한 공존이 특별한 것으로 만들어지는 현실 자체가 문제다. 모두가 이웃의 함성을 배려할 줄 아는 공동체적 인심을 상실했다는 방증이다. 아이들의 해맑은 함성이 '민폐'로 치부되는 사회, 그 얄팍한 인심이 공동체의 문을 좁히고 있다.
혐오의 벽, 학교 담장을 넘다
운동회 민원이 일상의 갈등이라면, 학교 앞 혐오 시위는 공동체의 근간을 흔드는 폭력이다. 이주민이 많은 지역 학교 앞에서 벌어지는 혐오 시위는, 교실 안에서 교사가 애써 심어놓은 '차별 없는 존중'의 가치를 무너뜨린다. 이주배경 학생들에게는 마치 햇볕을 피하지 못해 금세 지쳐버리는 작은 생명과도 같은 상황이다.
아이들에게는 '더불어 살자'고 가르치면서, 어른들은 '너희는 다르다'고 외친다. 이 모순 앞에서 아이들이 느끼는 혼란과 좌절은 깊을 수밖에 없다. 교육의 진정성이 무너질 때, 무엇이 아이들의 성장을 이끌 수 있겠는가.
가장 많이 공부하고, 가장 불행한 아이들
우리는 아이들을 어렵게 낳아 놓고, 맘껏 뛰놀지도 못하게 한 채 사교육 경쟁으로 내몬다. '출발선 불안'이라는 이름 아래 유아 때부터 영어 유치원, 각종 학원을 전전한다. 취업 중심의 직업계고조차 학생의 60% 이상이 대학 진학을 염두에 두고 입학한다. 학력 중심 사회의 냉혹한 단면이다.
결국 아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부하고도, 가장 불행한 청소년이 되고 만다. OECD 통계에 따르면 한국 학생들은 대학 진학률, 공부 시간, 사교육비 모두 최상위지만, 주관적 행복지수는 수년째 OECD 최하위다. 지난해 초·중·고교생 자살 사망자는 200명을 훌쩍 넘겼다. 역대 최악의 수치다.
성적이 삶보다 우선되는 사회에서는, 따뜻한 인간애와 공동체적 희망이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간다.
따뜻한 공동체를 위한 '오늘의 선택'
아이들의 행복이 곧 사회의 미래라면, 우리는 당장 오늘부터 논둑을 허무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소음이라 부르지 않고, 미래의 씨앗으로 귀 기울이는 일. 놀 권리는 국제협약이 보장한 권리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인간답게 자라는 데 꼭 필요한 조건이다.
학교와 마을이 함께 마음을 모아 학사 일정을 조율하는 일. 그 작은 배려 속에서 아이들은 공동체의 품을 배우고, 어른들은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법을 익힌다.
혐오를 외면하지 않고 맞서는 일. 교문 앞에서 벌어지는 혐오의 구호에 침묵한다면, 아이들은 세상이 차갑다고 배울 것이다. 그러나 어른들의 연대가 함께 서 있다면, 아이들은 세상이 여전히 따뜻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
성적이 아니라 행복을 가르치는 교육으로 나아가는 일. 실패조차 성장의 과정으로 존중하고, 협력을 통해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교육의 목적일 것이다.
아이들의 표정이 곧 공동체의 미래다. 아이들이 웃고, 맘껏 소리치며 서로 존중하는 따뜻한 공동체. 그 미래는 오늘 우리 어른들이 작은 불편을 감수하며 내일을 열어주는 선택에서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사 채택 후 개인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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