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개편 없이 65세까지”…여당 정년연장법, 세대갈등 우려

나상현 2025. 10. 2. 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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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이 법정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임금체계 개편엔 손을 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금체계 개편 없이 정년만 연장하는 내용의 법안을 다수 발의한 것이다. 직무와 관계없이 근속기간이 길면 임금이 오르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를 유지한 채 법정 정년이 연장돼 청년 고용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정년연장 관련 법안은 총 8건이다. 현재 민주당은 정년연장 태스크포스(TF)를 발족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가 국정 과제에 ‘사회적 논의를 통해 법정 정년을 단계적으로 연장하는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명시한 만큼 여당안이 국회를 통과할 가능성이 크다.

차준홍 기자

일본, 재고용 등 기업에 선택권 줘
구체적으로 박홍배·박정·서영교·박해철·한정애·김주영·이수진·이용우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안은 모두 법정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시기적으로, 혹은 규모별로 단계를 뒀다. 예를 들어 이용우 의원안은 시행일로부터 2027년까지 63세, 2028년부터 2032년까지 64세, 그리고 2033년부터 65세로 연장하도록 했다. 박정 의원안은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공포일로부터 3년 후,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4년 후, 300인 이상 사업장 등은 7년 후에 65세 정년을 적용하도록 구성됐다.

특히 여당안은 대부분 임금체계 개편 의무를 없앴다. 현행법은 정년을 60세로 두면서 ‘정년을 연장하는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조합은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의무 조항을 두고 있다.

하지만 박홍배·박정·서영교·김주영·이용우 의원안은 ‘임금체계 개편’ 문구 자체를 삭제했고, 한정애·이수진 의원안은 ‘하여야 한다’에서 ‘할 수 있다’는 재량 조항으로 수정했다. 박해철 의원안만 유일하게 의무 조항을 유지했다.

노동법 전문인 한 변호사는 “현재 의무 조항이어도 위반 시 제재 조항은 없기 때문에 강제성이 강하다고 보긴 어렵지만, 정년연장과 임금체계 개편은 연동돼야 한다는 의지를 담은 조항”이라며 “노동계가 ‘임금 삭감 없는 정년연장’을 강하게 요구해 온 만큼 여당이 이를 법안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령층의 일자리 문제를 손봐야 한다는 사회적 공감대는 크다. 현재 63세인 국민연금 수급 개시 연령은 2033년 65세로 올라가는데, 60세부터 근로소득이 끊기면 소득 크레바스(공백)가 더 깊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법정 정년이 연금 수령 연령보다 낮은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 또 국내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22년 3674만 명에서 2040년 2903만 명으로 급격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노동 공백 해소를 위해서도 대안은 마련해야 한다.

차준홍 기자

문제는 방법이다. 연공서열형 임금 구조가 고착화된 한국에서 임금체계를 바꾸지 않고 정년만 일률적으로 연장할 경우, 청년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세대 갈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인건비 상승에 부담을 느낀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행의 ‘초고령사회와 고령층 계속근로 방안’ 보고서에 따르면 2016년 정년연장(58→60세) 이후 지난해까지 고령층(55~59세) 임금근로자 고용률은 1.8%포인트(약 8만 명) 늘어난 반면, 청년층(23~27세) 고용률은 6.9%포인트(약 11만 명) 줄었다. 임영태 한국경영자총협회 고용사회정책본부장은 “60세 정년제로 고령자 고용 안정성이 높아졌기보단 신규채용 위축, 조기퇴직 확대, 인사적체 심화 등 부정적 영향만 커졌는데, 다시 65세로 늘린다면 똑같은 부작용이 심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재계에선 직무의 난이도와 책임에 따라 임금을 책정하는 직무급제를 도입하는 등 임금체계를 전면 손질하고, 나아가 퇴직 후 재고용 등 기업에 계속고용 선택지를 다양하게 제공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의 경우 법정 정년은 60세지만, 65세까지 사업주가 ▶정년연장 ▶정년폐지 ▶재고용 등 세 가지 방안 중 하나를 의무적으로 선택하도록 하는 고용확보 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정년연장, 세대간 형평성 고려해야”
이와 관련해 김위상 국민의힘 의원도 법정 정년과 임금체계 개편 의무는 유지하되, 기업에 ▶정년연장 ▶재고용 중 선택권을 주는 계속고용 법안을 대표발의했다. 김 의원은 “정년을 연장하는 경우 임금체계 개편과 연계하도록 해, 청년 일자리 감소나 고용시장 양극화 같은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상임위원을 지낸 김덕호 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 겸임교수는 “기업들에 일률적인 정년연장보단 자율적인 계속고용 방식을 보장하고, 고용 유연성 확보와 임금체계 개편이 병행돼야 한다”며 “청년 취업과 기업 부담, 세대 간 형평성을 모두 고려한 정년연장 해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나상현 기자 na.sangh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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