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의 전쟁과 평화] 동맹을 억누르지 말라…2500년 전 역사의 교훈

이철재 2025. 10. 2.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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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그리스를 향해 다시는 네 무장한 군세를 몰아세우지 마라. 그들의 대지는 자신을 지켜내며, 마치 그들을 위해 싸우는 듯하니.”

고대 아테네 비극 작가인 아이스킬로스의 ‘페르시아인들’에 나온 대사다. 페르시아 제국의 크세르크세스 1세 앞에 아버지 다리우스 1세의 영혼이 나타나 그에게 경고하는 장면에서다. 기원전 480년 크세르크세스 1세의 명령에 따라 페르시아군이 그리스로 진군한 무렵이었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는 당시 페르시아의 군세가 250만명이라 적었다. 과장이 섞였겠지만, 그래도 엄청난 규모였을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1세는 선대의 한을 풀려고 개전했다. 다리우스 1세는 제1차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92~490년)을 마라톤 전투 패배로 졌다. 아버지의 말을 안 들은 크세르크세스 1세도 결국 살라미스 해전에서 꺾이면서 제2차 페르시아 전쟁(기원전 480~479년)도 실패했다.

「 델로스 동맹, 페르시아 공격 방어
아테네 강압에 동맹 기반 흔들려
스파르타와 전쟁에 져 동맹 해체
미국의 동맹국 윽박, 후과 우려

기원전 480년 9월 25일 아테네 테미스토클레스가 지휘하는 그리스 연합함대가 살라미스에서 페르시아 함대를 격파했다. 이로써 그리스는 제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했다. 19세기 독일 화가 빌헬름 폰 카울바흐가 그린 살라미스 해전. [사진 위키피디아]

“예상은커녕 상상조차 못 한 운명의 폭풍이, 어찌 이토록 갑작스레 나의 불운한 머리를 덮쳤는가!”

크세르크세스 1세가 살라미스 현장에서 패전을 지켜보면서 이렇게 탄식했다고 아이스킬로스는 묘사했다. ‘페르시아인들’은 살라미스 해전 8년 후인 기원전 472년에 쓰였다. 작가 아이스킬로스도 참전용사였다. 신화가 아니라 역사적 사건, 그것도 얼마 되지 않은 일을 희곡의 소재로 삼았다는 건 두 차례의 페르시아 전쟁이 그리스에 큰 충격을 줬다는 걸 보여준다.

델로스 동맹은 이 같은 상황에서 등장했다. ‘페르시아인들’보다 6년 앞선 기원전 478년 페르시아의 재침략에 대비할 목적으로 결성된 동맹이다. 그리스는 전쟁에서 연거푸 이겼지만, 페르시아 제국은 아직도 막강했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아테네를 맹주로 삼고 에게해 연안 150여개 폴리스(국가)가 뭉쳤다. 동맹 본부가 차려진 델로스는 태양신 아폴로와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 탄생지로 알려진 섬이었다.

회원국은 그리스 연합함대에 군함을 대거나 분담금을 내야만 했다. 분담금의 합계는 매년 600 탈렌트(달란트) 정도였다. 1 탈렌트는 당시 숙련 노동자 9명의 1년 치 임금 또는 소규모 함대의 1년간 운영비였다. 그리고 회원국은 매년 델로스에서 만나 현안을 논의했다. 의장은 아테네가 맡았지만, 동등한 표결로 의사를 결정했다.

델로스 동맹은 페르시아를 억제하는 데 성공했고, 회원국 간 교역이 늘면서 번창했다. 세력권을 넓혔고, 회원국의 숫자는 200여개로 늘었다.

연대에서 조공으로 바뀐 델로스 동맹
그러나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의 방어’라는 사명을 다 하면서 델로스 동맹은 서서히 변질했다. 아테네 제국주의가 싹튼 것이다. 델로스 동맹엔 가입의 자유가 있지만, 탈퇴의 자유는 없었다. 기원전 469년 낙소스가 델로스 동맹에서 나가려 하자, 아테네가 침공했다. 낙소스는 항복했고, 주민은 노예로 팔려나갔다. 기원전 465년 타소스는 항구 사용권과 금광 개발권을 두고 아테네와 충돌한 뒤 델로스 동맹을 그만뒀다. 타소스도 낙소스와 같은 신세로 전락했다.

이러한 아테네의 행동을 다른 회원국은 두려워했다. 아테네가 필요하다면 회원국에도 무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아테네의 부상과 해상 패권은 스파르타를 자극했다. 마침내 기원전 460년 아테네와 스파르타 간 펠레폰네소스 전쟁이 벌어졌다.

아테네는 펠레폰네소스 전쟁을 빌미로 동맹 분담금 금고를 델로스에서 아테네로 옮겼다. 금고에서 마음대로 돈을 꺼내 아테네의 재정으로 사용했고, 파르테논 신전을 짓는데도 동원했다. 그러면서 회원국 간 연대(連帶)는 아테네와 회원국 사이의 조공(朝貢)으로 바뀌었다.

아테네는 다른 회원국의 법과 정치에 간섭했다. 아테네는 자국 시민이 회원국으로 이주하는 걸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회원국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려는 술책이었다. 동맹 회의도 폐지했다. 또 아테네는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델로스 동맹을 수탈했다. 회원국의 재판을 아테네에서 받도록 한 뒤 재판세까지 받았다. 화폐와 도량형도 아테네 것을 강요했다.

아테네는 동족인 스파르타에 이겨보려고 숙적인 페르시아와 평화 협정을 맺었다. 명분이 사라지자,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 제국주의의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그리고 회원국은 하나둘씩 델로스 동맹을 떠났다. 그리고 아테네는 전쟁을 더 치를 수 없게 됐다.

기원전 404년 마침내 스파르타가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승리했다. 델로스 동맹은 자연스럽게 해체됐다. 델로스 동맹은 아테네에 황금시대를 안겼지만, 동시에 몰락의 실마리를 가져왔다. 아테네의 독주로 델로스 동맹이 약해지면서 아테네도 흔들렸다.

과거의 아테네는 지금의 미국 데자뷔
델로스 동맹을 돌아보면 묘한 데자뷔가 떠오른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은 소련을 막으려고 전 세계에 동맹 네트워크를 차곡차곡 쌓았다. 현대의 페르시아는 소련인 셈이다. 델로스 동맹이 페르시아로부터 그리스를 지켜낸 것처럼 미국의 동맹은 공산주의를 막아내 민주주의를 수호했다.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는 미국과 동맹을 번영으로 이끌었다. 페르시아 다음으로 스파르타가 아테네를 위협했듯이, 소련 이후 중국이 미국과 맞서고 있다.

그런데도 미국은 서서히 아테네를 닮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최근 미국은 높은 관세로 동맹을 윽박지르면서 자국의 이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일본이 미국의 압박에 손들고 맺은 협정을 보자. 미국이 맘대로 지정한 곳에 일본이 5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하고, 투자금을 회수할 때까지는 5 대 5, 이후부턴 미국이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방식이다. 미국은 한국에도 5500억 달러에 가까운 액수의 현금 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과거와 현재를 무리하게 엮는 건 위험하다. 그러나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지 못하면 같은 일이 그대로 반복되는 법이다. 델로스 동맹이 가장 강력했던 순간은 회원국이 결속했을 때며, 아테네가 다른 회원국을 과도하게 억누르자 몰락했다. 미국은 과연 아테네의 길을 걸을까.

이철재 군사안보연구소장·국방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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