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재의 마켓 나우] 아르헨의 경고, 외환 바닥나면 백약이 무효

2025. 10. 2. 00:1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2023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경제학자 출신의 정치 신인 하비에르 밀레이가 56%의 득표율로 압승하며, 1983년 민주화 이후 비주류 후보로는 역대 최고 득표율을 기록했다.

밀레이는 파격적인 복장과 언변으로 돌풍을 일으켰지만, 승리의 원동력은 기존 정치권과 구별되는 경제정책이었다. 오스트리아학파 경제학에 심취한 그는 중앙은행을 ‘사기 제도’라 비판하며, 페소 폐지와 달러화 채택을 주장했다. 과격한 공약에도 밀레이는 고질적인 인플레이션에 신물이 난 유권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2023년 물가 상승률은 211%에 달했다.

아르헨티나의 인플레이션 악몽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1989~1990년에는 물가가 2600% 상승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었다. 경제위기 속에서 집권한 카를로스 메넴 당시 대통령은 특단의 대책을 강구했다. 메넴은 1991년 통화 가치를 1만 배 평가절상하는 화폐개혁을 단행해 새로운 페소화를 발행했다. 동시에 자국 통화를 달러에 고정하는 ‘통화위원회 제도’를 도입해 페소 가치를 미 달러에 1대1로 연동시켰다. 달러화(dollarization)를 통한 물가안정이 목표였다.

초기에는 성과가 있었다. 1998년까지 인플레이션은 연 4.6% 안팎으로 안정되었다. 하지만 달러 연동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2001년 닷컴버블 붕괴에 이은 9·11 테러와 엔론 회계부정 스캔들로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지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경기 둔화가 전 세계로 확산되자 국제자본은 안전자산인 미국 국채로 쏠렸고 달러는 급등했다. 1998년 가을 95포인트였던 달러 인덱스(주요 6개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는 2002년 초 112포인트까지 18% 상승했다. 달러에 연동된 페소도 함께 올랐다. 페소 절상으로 아르헨티나의 수출은 감소했고 경기는 급격히 악화했다. 국제 투자자금이 이탈해 선진국으로 빠져나가면서 외환보유고는 텅 비었다. 아르헨티나는 결국 국가부도를 선언하고 연동제를 폐지했다.

최근 밀레이 대통령 역시 환율 상한선을 설정하고 강도 높은 재정 긴축을 추진하며 물가 안정에 나섰다. 인플레이션은 30%대로 내려왔고, 금리도 일정 수준 안정되었지만, 2분기 경제가 역성장하면서 국제 자금이 이탈했고 페소 가치는 급락했다. 환율 방어를 위해 외환보유고가 급감했고, 결국 IMF로부터 긴급 자금 지원을 받아야 했다.

과도한 외채는 재정 운신의 폭을 제한하며, 위기를 반복적으로 초래한다. 아르헨티나의 사례는 강력한 산업 기반과 안정적인 외환보유고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국이 외환위기 이후 이룩한 거시경제 안정성 역시, 외환보유고의 급격한 변동에 취약하다.

김성재 미 퍼먼대 경영학 교수·『관세 이야기』 저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