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 다르지만, 100년 한결 같이” 우을순 할머니 나눔 이야기
장기기증 서약에 30년 가까이 단체 후원
“손은 움켜쥐기보다 펴야…
나눌 수 있음에 오히려 감사”
조간 직접 가져올 정도로 정정한 비결

새벽 5시쯤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진주 목걸이를 맨다. 고리로 된 형태지만, 오랜 습관 덕분에 혼자서도 능숙하게 채운다. 이어 반지를 끼고, 시계를 찬 뒤 머리맡에 둔 성경을 읽는다. 침대에서 일어나 베란다로 향해 양쪽에 가지런히 놓인 화초에 “잘 잤니?”하고 인사를 건넨다. 세수를 마치면 보행보조기(워커)에 몸을 지탱해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파트 1층으로 내려간다. 우편함에 꽂힌 신문을 챙겨 다시 7층으로 올라와 식탁에 앉아 돋보기를 쓰고 조간을 읽는다. 1925년생, 올해로 100세가 된 우을순 할머니의 아침 루틴이다. 최근 경남 창원의 자택에서 만난 우 할머니가 지켜내는 일상의 평범함은 경이로웠다. 귀가 어두워 인터뷰 내내 막내딸 최정미(65) 권사가 귀에 대고 소리를 높이긴 했지만, 할머니 자세는 꼿꼿하고 정정했다. 비결을 묻는 말에 우 할머니는 “무식한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온 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웃었다. 최 권사는 “100세를 넘기시면서 쇠약해지는 속도가 하루하루 다르지만, 엄마는 100년을 한결같이 살아오셨다”고 덧붙였다.


작은 평수 아파트에서 어머니를 9년째 모시는 최 권사 말대로 우 할머니는 흔들림 없는 믿음으로 백년을 살아냈다. 젊은 시절 아픈 남편과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남의 도움을 받아야 했을 때도 나눔을 멈추지 않았다. 2000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장기기증 희망 등록을 신청하고 지금껏 후원을 이어온 건 한 예다. 우 할머니는 “오래전 같은 교회를 다니던 청년이 신장병으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 장기 기증을 하고 싶었지만 가족들 반대로 실행에 옮기지 못해 마음에 남았다”며 “생면부지 타인에게 신장을 기증한 사연을 신문에서 접한 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고 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관계자는 “지금보다 장기기증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을 당시 결심한 일을 지금껏 이어오시는 모습에 생명나눔을 향한 진심을 깊게 느낀다”고 말했다.
우 할머니는 대한성서공회에도 오랜 기간 기부해 왔다. 교회에서 나눠주는 쪽복음을 읽으며 신앙을 키워온 그에게 성경의 의미가 그만큼 특별해서다. 그는 “사도바울처럼 이방인에게 직접 전도하는 사람이 되진 못해도, 저처럼 성경이 없어 읽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은 정성으로 보태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없는 살림에도 주변을 둘러보며 산 우 할머니에게 나눔은 오히려 감사였다. “손은 움켜쥐기보다 펴야 하더라고요. 제 삶엔 무수한 굴곡이 있었어요. 그때마다 누군가가 마음을 나눠주고, 물질을 내어주었기에 여기까지 살아올 수 있었어요.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에요.”

우 할머니는 노트가 귀하던 시절, 커다란 미농지를 사서 작게 잘라 찬송가도 붓으로 직접 썼다. 지금도 그 찬송가를 보고 있다. 최 권사는 “너무 오래돼서 종이가 가루처럼 부서진다”며 안타까워했다.

“선교사님은 한국어를 정말 잘하셨어요. 누가 성경을 읽으며 ‘가라대’라고 하면 ‘가라사대’라고 정확히 짚어주실 정도였어요. 제가 예 선교사님의 마지막 세례자래요.”


최 권사를 이해시킨 건 결국 ‘사랑’이었다. 새벽기도를 거르지 않던 우 할머니는 어스름한 새벽, 교회로 향하며 자는 아이들 이마에 입을 맞추고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 권사는 “그때 엄마의 온기가 아직도 기억난다”며 “모든 형제가 삐뚤어지지 않고, 믿음 안에서 자랄 수 있었던 건 그런 매일의 기도와 사랑 덕분”이라고 했다. 우 할머니의 3남 3녀 자녀들은 권사, 장로로서 신앙의 유산을 이어가고 있다. 최 권사는 교회 장애인 부서인 사랑부 교사로 헌신하고 있다.


우 할머니는 손자가 목회자의 길을 걷길 간절히 기도해 왔지만 한 번도 직접 내색한 적은 없었다. 그저 방에서 성경을 필사하고, 손주를 업을 때마다 찬양을 흥얼거릴 뿐이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할머니와 따로 살게 된 최 전도사는 청소년 캠프에 다녀온 뒤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했고, 그 꿈을 먼저 어머니에게 털어놓았다. “할머니가 아시면 정말 기뻐하시겠다”는 어머니 말에 곧장 할머니에게 전화했고, 우 할머니는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다”며 한참을 울먹거렸다.


최 전도사는 내년 4월 태어날 쌍둥이에게 할머니로부터 이어진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려 한다.
“할머니는 힘들 때나 기쁠 때나 상황에 흔들리지 않고 항상 하나님만 바라보셨어요. 세상 기준으로 결코 행복할 수 없는 환경 속에서도 매 순간 감사하며 행복해 하셨어요. 어린 제 눈에도 그 모습이 분명히 보였습니다. 제 아이들도 물질적 성공만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누리길 바랍니다. 우리 할머니처럼요.”

창원=글·사진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Copyright © 국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하남 폐가서 남성 2명, 여성 1명 숨진 채 발견…수사 중
- 국회 화장실서 ‘손도끼’ 발견…수사 의뢰로 경찰 내사
- [단독] ‘특검 없이 파견검사가 공소유지’ 조항, 원대복귀 반발 불렀다
- 트럼프, 민주당 조롱 딥페이크 영상 확산…인종차별 논란
- ‘제국의 위안부’ 박유하, 출협 특별공로상 결국 취소
- 축의금 5만원 내면 민폐?… 결혼식 식대 6만원 넘었다
- 우상호 “김현지, 국감 100% 출석…실세는 강훈식”
- ‘전공의 파업 주도’ 박단, 울릉도로 간다…“응급실서 근무”
- 카카오 겨냥? 토스 이승건 “악성 탑다운, 토스 문화 아냐”
- 국방장관 “비전투 분야는 전부 아웃소싱…병력 자원 감소 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