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폐지…과한 경제형벌 110개도 손질

김경희, 한영익, 정진우 2025. 10. 1.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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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오른쪽 셋째)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당정 협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 넷째부터 구윤철 경제부총리, 정성호 법무부 장관. [뉴스1]

기업의 투자·혁신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을 받아 온 형법상 배임죄가 70여 년 만에 폐지될 전망이다. 정부는 이 외에도 최저임금법·근로기준법·식품위생법 등에 포함된 경제형벌 규정 110개를 1년 내 개선하기로 했다. 30일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당정협의회를 열고 이 같은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했다. 7월 이재명 대통령이 과도한 경제형벌로 기업활동이 위축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데 따른 후속 조치다. 경제형벌이란 경제활동을 하다 발생한 행정상 의무 위반 등 위법행위에 대한 벌금·징역 등의 형벌을 의미한다.

1953년 제정된 배임죄는 벌금 단위를 환에서 원으로 바꾸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다. 특히 ‘업무상 배임’의 정의가 모호해 실패한 경영상 판단도 배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컸다. 어떤 게 죄가 되는지 알기 어렵다 보니 경영인들은 적극적인 투자를 망설였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민주당과 정부는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했다”며 “대신 중요 범죄의 처벌 공백이 없도록 대체 입법 등 실질적인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보완 입법은 현행 배임죄에 비해 처벌 범위를 좁히는 방식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회삿돈 사적 사용, 영업비밀 유출 등 배임죄로 다뤄 온 일부 경제범죄는 처벌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판단해서다. 법무부 관계자는 “배임 관련 특별법을 마련하거나, 각 개별법에 구체화한 배임 행위를 규정하는 방안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재계 “배임죄 폐지 환영” 법조계 “부작용 막을 보완책은 필요”


당정은 민사책임을 강화하기 위해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도입, 집단소송제 확대 등을 검토하고 있다. 증거개시제도는 소송 상대방 기업이 가진 자료·문서 정보 등을 법원이 판단해 강제로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중소기업·소상공인의 경미한 행정상 의무 위반 68개에 대해선 징역·벌금형 대신 과태료를 부과할 예정이다. 예컨대 트럭 소유자가 지자체장 승인 없이 짐칸 크기를 소폭 변경하면 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000만원에 처한다. 앞으로는 안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면 시정명령과 과태료 최대 1000만원 부과에 그친다. 미용실·세탁소 등 사장이 상호명 변경 신고를 누락했을 때, 기존에는 최대 징역 6개월 또는 벌금 500만원이 부과됐지만, 앞으로는 과태료 최대 100만원으로 완화된다.

정근영 디자이너

법을 어긴 행위자뿐 아니라 법인이나 사업주까지 처벌하는 양벌 규정도 완화한다. 최저임금법의 경우 위반 시 최대 벌금 2000만원에 처하도록 하고 있지만, 상당한 주의·감독 의무를 다한 사업주에 대해서는 면책 규정을 마련하기로 했다.

또 버스업체가 인가를 받지 않고 노선 변경을 했을 때 부과하던 벌금(1000만원 이하)도 시정명령을 이행하지 않았을 때 부과한다. 은행이 고객의 외환거래가 합법적인지 확인하지 않았을 때 처벌(최대 징역 1년 또는 벌금 1억원)하는 대신,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 음식점 등에서 사용되는 배달로봇을 무단 개조했을 때 ‘최대 징역 3년 또는 벌금 3000만원’ 대신 ‘과징금 최대 5000만원’으로 금전적 책임만 늘린다.

당정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배임죄 외에 110개 규정 관련 법률의 일괄 개정을 추진한다. 정부 관계자는 “6000여 개의 경제형벌 규정 중 합리화 대상이 몇 개인지 검토 중”이라며 “1년 내 경제형벌 규정의 30%를 정비한다는 목표를 최대한 달성하려 한다”고 말했다.

재계에선 환영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을 키웠던 배임죄 폐지를 기본 방향으로 정하고, 선의의 사업주를 보호하기 위해 최저임금 관련 양벌 규정을 개선한 것은 시의적절한 조치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재계는 향후 공정거래법, 노동법 등 분야에서 기업 의견을 반영해 경제형벌을 합리화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배임죄는 과거 권위주의 정권이 기업인을 표적 수사할 때 사용해 온 구시대의 유물인 만큼 민사소송을 통한 해결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며 “형법상 배임죄가 폐지되면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워지고 기업에 자율권을 준다는 점에서 긍정적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법조계와 학계에선 배임죄 폐지에 따른 부작용을 막을 후속 대책을 정교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은 배임죄가 없는 대신 주주대표소송과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강력한 집행, 징벌적 손해배상 등 민사 및 행정 절차를 통한 해결 수단이 폭넓게 보장돼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미국은 배임에 해당하는 행위를 할 경우 민사소송으로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있고 이 같은 점이 기업인의 일탈을 막는 역할을 했지만 우리는 민사로 구제가 어려우니 형사·행정으로 배임죄를 다뤄온 것”이라며 “지금 구조론 배임 행위에 대한 민사적 처벌이 불가능에 가까운 만큼 토론과 합의를 거쳐 보완책을 합리적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한영익·정진우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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