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억의 브뤼셀의 창]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 유럽 기업과 컨소시엄 구성 등 노력해야

2025. 10. 1.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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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억 대구대 국방군사학과 교수

“푸틴과의 친분 때문에 종전이 아주 쉬우리라 생각했다. 불행하게도 친분은 의미가 없었다.”

지난달 23일 뉴욕에서 블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취임하면 하루 안에 종전하게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며 취임 후 젤렌스키에게 끈질기게 휴전을 압박해온 트럼프가 입장을 전면 번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곧이어 트루스 소셜에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우크라이나는 전투를 지속할 수 있으며 빼앗긴 땅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 복구·재건액 5240억 달러 추산
G7 공여국 조정 플랫폼 가동 중
EU는 회원국 가입과 개혁 연계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되찾으려면 미국이 대규모로 압도적인 무기를 계속 지원해줘야 하는데 이 말을 쏙 뺀 채 EU에 공을 떠넘겼다. 트럼프마저 종전의 어려움을 실토한 가운데 3년 7개월이 지난 우크라이나 전쟁의 휴전 시기가 불확실하지만 유럽 기업은 물 밑에서 복구·재건 특수를 준비 중이다. EU도 재건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과 연계해 원조와 개혁을 동시 지원 중이다.

우크라이나 정부와 세계은행, EU 집행위원회 등은 전쟁 발발 6개월 뒤인 2022년 8월 말 복구·재건 추산액을 첫 공식 발표했다. 전쟁이 시작된 2022년 2월 24일부터 그해 6월 1일까지의 총 복구·재건액을 3490억 달러로 추산했다. 직접 피해액이 970억 달러고 나머지는 전쟁에 따른 각종 직·간접 손실을 포함한 10년에 걸친 복구·재건액이다. 2021년 우크라이나 명목 국내총생산(GDP)의 1.74배 정도다.

하지만 전쟁이 지속하고 러시아가 발전소와 도로 등 인프라를 파괴하면서 이 비용도 급증했다. 전쟁 시작부터 지난해 12월 31일까지의 복구·재건액을 집계한 4차 보고서를 보면 5240억 달러로 집계됐다. GDP의 2.8배로 크게 늘었다. 내년 상반기에 5차 보고서를 발간하면 이 비용 역시 더 늘어난다.

차준홍 기자

주택과 교통·에너지 분야가 피해가 큰 3대 분야다. 주택의 13%가량이 파괴되거나 부서져 약 250만 가구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다가 전쟁 2년째부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의 전쟁 지속 능력을 약화시키려 교통 인프라와 발전소 등을 집중 공격했다. 주택 복구·재건에 837억 달러, 교통에 775억 달러, 에너지 분야에 678억 달러가 소요될 것으로 전망됐다.

광물 협정으로 실익 챙긴 미국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유럽의 100여개 기업이 우크라이나 복구·재건이 향후 수익성 증대에 기여할 것으로 전망했다. 건설과 자재·엔지니어링·디자인·에너지·보험 등이다. 전쟁이 계속되고 러시아가 휴전에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아 휴전 시기는 안갯속이지만 우크라이나와 지리적으로 가까운 여러 유럽 기업은 전쟁 초기부터 지원에 적극 참여해 왔다.

차준홍 기자

이들은 물밑에서 복구·재건 사업 참여를 준비 중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무총장을 역임한 전 덴마크 총리 안더스 라스무센은 2016년부터 우크라이나 대통령 자문으로 일해왔다. 그가 설립한 ‘라스무센 글로벌’은 전쟁 발발 직후 우크라이나 정부에 무료 컨설팅을 제공해왔다. NATO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과 유럽 각국의 복구·재건 지원을 면밀하게 검토해 최적의 성과를 거둘 수 있게 도움을 줘왔다. 우크라이나 시장에 접근하려는 기업은 이곳을 중개지로 활용해왔다.

복구·재건액 중 3분의 1 정도는 기업이 부담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는 유럽과 미국 등이 추가 지원해야 한다. 선진 7개국(G7)은 2022년 말 우크라이나 공여국 조정 플랫폼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이제까지 9차례가 넘는 운영위원회를 열어 원조 확대와 조정 등을 실행했고 한국도 지난해 초 여기에 가입했다. 국내 기업도 유럽 기업과의 컨소시엄 구성 등에 노력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은 지난 4월 우크라이나와 ‘우크라이나 재건 투자펀드’(광물협정) 설립에 합의했다. 이 협정으로 미국은 희토류 등 우크라이나에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을 도우며 두둑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광물 매장량은 약 15조 달러 정도로 미 경제 규모의 절반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쉽지 않아
경제적 실익을 확보한 미국은 우크라이나 복구·재건도 유럽에 더 많이 떠맡으라 할 것이다. 우크라이나는 지난해 6월부터 EU 가입 협상을 시작했다. 전쟁 중인 국가가 EU와 가입 협상을 시작한 전례는 없었다. 전쟁 발발 후 4일이 지난 2022년 2월 28일 우크라이나는 EU 가입을 신청했다. EU는 우크라이나를 전폭 지지했기에 아주 이른 시일 안에 협상을 시작했다.

차준홍 기자

그러나 우크라이나의 EU 가입까지 가야 할 길이 멀다. 기본적으로 법치주의와 시장 경제가 EU 가입국이 갖춰야 할 가입 조건이다. 국제투명성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전쟁 발발 전 우크라이나의 부정부패는 유럽에서 러시아 다음으로 최악이었다.

지난 7월 22일부터 3일 이상 우크라이나 시민 수십만 명이 수도 키이우와 오데사 등 대도시에서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부정부패를 수사하는 독립된 수사청과 기소청을 검찰총장 소속으로 변경한 법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계엄 치하에서 시민들이 벌인 첫 시위였다. 당시 독립 수사청은 젤렌스키 측근 비리를 수사 중이었는데 이를 저지라도 하듯 대통령이 두 기구의 독립성을 폐지했다.

미국은 젤렌스키를 비판하지 않았다. EU는 두 기구의 독립성을 유지하지 않으면 가입 협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강력한 경고를 보내, 결국 젤렌스키가 물러섰다. 이처럼 EU는 회원국 가입을 무기로 우크라이나 지원과 개혁을 연계 중이다.

슬로베니아의 철학자 슬라보이 지제크는 전쟁 전 우크라이나를 ‘서구’의 경제적 식민지로 규정했다. 농산물 대국이자 풍부한 지하자원이 있는 이곳에 유럽과 미국의 다국적 기업이 곳곳에서 큰 이권을 확보했다. 러시아가 무력으로 정복해 또 다른 식민지로 만들려고 한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 복구·재건은 이런 식민지로 가는 길이 돼서는 안 된다.

안병억 대구대·국방군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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