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귀성길 지나치면 후회한다...고속도로 미식지도 [스페셜리포트]
올해 추석 연휴는 10월 3일부터 12일까지, 최장 열흘간 이어진다. 가족과 친지를 만나기 위한 귀성·귀경 차량이 몰리며 고속도로는 그 어느 해보다 긴 정체가 예상된다. 하지만 이 지루한 여정 속에도 피로를 달래줄 쉼터는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다. 과거 휴게소는 우동이나 핫도그로 간단히 허기를 달래는 ‘잠시 머무는 곳’에 불과했지만 최근에는 아주 달라졌다. 지역의 맛과 이야기를 담은 음식은 물론, 보양식과 디저트, 이색 간식까지 다양하게 구성돼 방문객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특히 올해 한국도로공사가 개최한 ‘휴게소 음식 페스타’를 통해 전국 휴게소 맛집이 대거 발굴됐다. 고향 가는 길, 그냥 지나치면 아쉬울 휴게소 맛집은 어디 어디일까. 올 추석 귀성·귀경길에 가장 설레는 건 도착지가 아니라 ‘그 중간’일지도 모른다.

죽전·익산·칠곡 3대장 주목
고속도로 음식이 ‘그저 그런 한 끼’에서 ‘일부러 찾아가는 맛집’으로 변신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가장 잘 보여준 무대가 바로 지난 7월, 한국도로공사가 주최한 ‘휴게소 음식 페스타’다. 지역별 예선과 본선 심사를 거쳐 전국 휴게소 대표 메뉴 15종이 최종 심사에 올랐다. 식품영양학 교수, 조리 전문가, 유튜버 등으로 구성된 전문 심사단과 일반 시민 평가를 종합해 대상부터 장려상까지 총 4개 부문 수상작이 선정됐다.
이 무대에서 가장 눈길을 끈 메뉴가 있다. 서울 방향 경부고속도로 상행선의 마지막 관문, 죽전휴게소(서울 방향)에서 선보인 ‘용인 성산한돈 뼈해장국’이다. 이번 대회의 ‘대상’ 수상작인 이 해장국은 특유의 깊은 국물과 깔끔한 맛으로 화물차 기사부터 일반 여행객까지 입을 모아 극찬하는 ‘고속도로 1등 해장국’으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경기도 용인 농특산물인 ‘성산한방포크’를 사용한 점이 특징이다. 성산한방포크는 인삼·당귀·녹각 등 30여가지 한약재를 90일간 먹여 키운 돼지로 생산한다. 반찬도 일품이다. 용인 특산물인 순지오이로 만든 오이지와 원삼 느타리버섯 무침이 입맛을 돋운다. 유호상 죽전휴게소장은 “대상을 받은 이후 성산한돈 뼈해장국의 주문량이 두 배 이상 늘었다”며 “하루 60그릇 정도가 판매되며 오후 2시 이후엔 재료가 모두 소진될 정도”라고 들려줬다.
최우수상을 받은 메뉴들도 그냥 지나치기 아쉽다. 익산미륵사지휴게소(천안 방향)의 ‘마마텐동’은 전북 익산 특산물을 활용한 튀김 덮밥이다. 전북 익산 명물 서동 마, 낭산 고구마, 여산 양파와 새우·단호박·팽이버섯·꽈리고추를 바삭하게 튀겨 김, 삶은 달걀과 함께 흰 쌀밥 위에 산처럼 올린다. 튀김의 바삭함과 흰쌀밥, 달콤한 간장 소스의 조화는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맛이다.
또 다른 최우수상 메뉴는 칠곡휴게소(부산 방향)의 ‘왜관 수제 소시지 부대찌개’. 이 메뉴는 칠곡의 역사와 문화를 담은 스토리텔링이 돋보인다. 재료로 사용된 소시지는 독일인 수도사들이 70여년 전 설립한 왜관 수도원에서 직접 만든 ‘분도푸드’ 수제 소시지로, 독일 본토의 맛을 그대로 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짜지 않고 담백한 육수에 오동통한 소시지와 스팸, 두부, 채소가 어우러진 부대찌개는 칠곡이 6·25 전쟁의 격전지였다는 역사성과도 잘 맞물린다.
고향 가는 길의 시작인 서울만남의광장휴게소의 ‘말죽거리 한돈 동파육 덮밥’은 우수상에 오를 만큼 보석 같은 먹거리다. 동파육에 한국식 소스를 입히고 달걀 스크램블과 청경채를 올렸다. 동파육은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을 만큼 식감이 부드럽다. 짜릿하고 시원한 맛의 동치미 국물이 느끼함을 말끔히 씻어준다.

이제는 편의점에서 ‘간편식’으로
고속도로 위에서 보양식을 찾는 게 낯설다고 생각한다면 이제는 편견을 거둬야 한다. 최근 여러 휴게소가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보양식, 건강식, 이색 간식 메뉴들을 다수 출시해 화제를 모았다.
우수상을 수상한 함평나비휴게소(무안 방향)의 ‘무안 양파 낙돼불패’가 대표적이다. 지역 특산물인 양파와 낙지, 돼지고기를 매콤하게 볶아낸 후, 달걀 프라이와 함께 밥 위에 올린 덮밥 메뉴다. 한여름 무더위에 지쳐 쓰러진 소도 일으켜 세운다는 낙지에 매콤한 양념이 더해져, 장시간 운전으로 지친 입맛과 체력을 단번에 끌어올리기에 충분하다.
곁들여 나오는 반찬도 인상적이다. 무안의 대표 농산물인 양파로 담근 양파김치는 해풍을 맞고 자란 황토밭 양파의 달큰함과 아삭한 식감이 살아 있어, 함께 먹는 재미를 더한다.
같은 우수상 수상작인 홍천휴게소(서울 방향)의 ‘옥수수 영양밥 정식’은 마치 산골에서 정성껏 차린 밥상을 받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홍천 찰옥수수를 넣고 지은 밥 위에 향긋한 산나물과 구수한 된장찌개, 불고기까지 함께 제공돼 영양은 물론 만족감도 높다.
장려상을 받은 메뉴 중 눈에 띄는 보양식은 장흥정남진휴게소의 ‘헛개 매생이 반계탕’. 국산 헛개나무와 매생이로 낸 육수는 특유의 시원한 풍미를 자랑하고, 부드러운 닭 반 마리가 푸짐하게 들어간다. 헛개는 간 기능 개선에 좋다고 알려져 있고, 매생이는 미세먼지 배출 효과가 있다고 전해진다. 명절 스트레스를 한 방에 날리기 제격이다.
경주휴게소(부산 방향)에서는 ‘경주 한우 물회’를 반드시 맛볼 것을 권한다. 경주시는 한우 사육 두수에서 전국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기름기 없는 부드러운 살코기를 차갑고 새콤달콤한 육수에 담고, 그 위에 달콤한 배와 아삭한 오이를 고명으로 얹어낸다. 한입 머금는 순간, 입안 가득 퍼지는 청량한 감칠맛이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후식도 만만치 않다. 휴게소 디저트 역시 지역 특산물을 활용해 차별화를 꾀했다. 홍천강휴게소(춘천 방향)의 ‘홍천콩 순두부 아이스크림’은 콩물 베이스로 만들어 담백하면서도 건강한 맛을 자랑한다. 문경휴게소(양평 방향)의 ‘오미자 요거트 스무디’는 새콤달콤한 맛으로 갈증 해소에 제격이다. 주전부리로는 입장거봉포도휴게소(서울 방향)의 ‘거봉 포도 생크림빵’이 인기다. 거봉 포도 모양을 본뜬 빵 안에 거봉 포도잼과 생크림이 들어 있어 시각과 미각을 동시에 자극한다.
휴게소 음식 페스타가 화제에 오르며 유통 업계도 발 빠르게 대응하는 모습이다. 고속도로 휴게소 대표 음식들이 이제 가정에서도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형태로 출시된다. 휴게소 음식 페스타 수상작 가운데 대상, 최우수상, 우수상을 받은 총 7종의 메뉴가 가정간편식(HMR)으로 개발되며, 오는 9월 24일 죽전휴게소의 ‘한돈 뼈해장국’ 제품 판매를 시작으로 전국 CU 편의점에서 차례로 출시할 예정이다. CU 관계자는 “국내산 농산물 유통을 활성화하는 동시에, 휴게소 인기 메뉴를 전국 편의점에 선보임으로써 휴게소 인지도 제고와 고객 홍보 효과를 동시에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도로 위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
애견 놀이터·병원·약국까지 갖춰
식사를 마쳤다면 잠시 산책 겸 휴게소를 둘러보는 건 어떨까. 고속도로 휴게소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공간을 넘어, 풍경을 즐기고 체험하고 치유까지 가능한 복합 문화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
우선 자연 친화형 휴게소로는 경부고속도로 금강휴게소를 꼽을 수 있다. 금강을 조망할 수 있는 산책로가 조성돼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답답한 차 안에서의 피로가 해소된다. 남해고속도로 섬진강휴게소(부산 방향)도 빼놓을 수 없다. 천장이 형형색색 우산으로 장식된 전망대에 오르면 섬진강 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특히 피아노 계단을 오르며 들려오는 음계 소리와 저녁 무렵 조명이 어우러지면,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더해진다. 전망으로는 동해고속도로 옥계휴게소(속초 방향)도 빠질 수 없다. 탁 트인 동해를 내려다볼 수 있어 휴게소를 지나치지 않고 일부러 찾는 방문객도 많다.
문화 체험형 휴게소도 인기다. 중앙고속도로 안동휴게소(부산 방향)에는 지역의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안동문화체험관’이 마련돼 있다. 이곳에서는 하회탈 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안동 문화 콘텐츠를 즐길 수 있어, 잠시 머무는 휴식 시간에도 의미 있는 경험이 가능하다. 중부내륙고속도로 현풍휴게소(현풍 방향)에는 마을 당산나무인 500년 된 느티나무를 모티브로 한 테마공원이 조성돼 있다. 곳곳에 설치된 도깨비 조형물과 포토존은 SNS 인증사진 명소로도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귀성길에 갑자기 몸이 아프면 어쩌나 걱정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고속도로 위에서도 병원 진료를 받을 수 있는 시대다. 경부고속도로 안성휴게소(서울 방향)는 전국 최초로 병원이 설치된 휴게소다. 내과와 가정의학과 진료는 물론 응급 처치와 예방접종까지 가능한 의료시설을 갖추고 있다. 운영 인력이 6명인 이 병원은 평일과 공휴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야간 진료는 월요일과 목요일 오후 7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운영한다.
약이 필요한 경우에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약국을 운영 중인 고속도로 휴게소는 군산(서울 방향), 시흥하늘(판교방향), 안산, 천안삼거리(서울 방향), 행담도휴게소 등 5곳이다. 약국이 없는 휴게소에서는 편의점이나 안내소를 통해 해열진통제, 소화제, 감기약 등 상비약을 구할 수 있다.
올해 최장 열흘간의 추석 연휴 동안 고속도로 이용객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도로공사는 방문객 불편 최소화를 위한 대응 체계를 강화 중이다.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추석 연휴 방문객 증가가 예상됨에 따라 식재료 재고 관리와 충분한 식재료 사전 확보를 통해 음식 수요에 대응할 계획”이라며 “고객 집중 시 추가 인력을 적기에 투입하여 이용객의 불편이 없도록 조치할 것”이라고 전했다.
슴슴하지만 깊은 맛…집밥 같은 귀성길 한 끼

죽전휴게소 자율식당은 하루 평균 600만~700만원의 매출을 올릴 정도로 인기가 높다. 점심시간에는 줄이 길어 오후 2시만 넘어도 인기 메뉴는 거의 동이 난다. 오후 2시 무렵, 다행히 ‘용인 성산한돈 뼈해장국’은 마지막 몇 그릇이 남아 있었다. 식판을 들고 음식을 받으니 뜨끈한 뼈해장국 한 그릇, 백미밥, 그리고 김치, 오이지, 버섯무침 3가지 반찬이 정갈하게 놓였다.
해장국의 국물 첫 숟갈을 뜨자 짠맛보다 깊은 감칠맛이 먼저 느껴졌다. 우거지는 부드럽게 익었고, 뼈에 붙은 고기는 젓가락으로 쏙 빠질 만큼 부드러웠다. 국물에는 된장과 들깻가루, 깻잎이 들어가 구수한 맛과 향긋한 향이 어우러졌다. 살을 발라내 곁들여 나오는 간장 소스에 찍어 먹으면 수육을 덤으로 먹는 기분이다. 과하지 않게 간이 되어 있어,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도 짜지 않고 부담이 없었다. “서울 사람 입맛에 맞게 슴슴하게 조리한다”는 조리사의 설명이 이해가 됐다.
밑반찬으로 나온 오이지는 짜거나 달지 않고 새콤한 풍미가 도드라졌다. 식사 중간, 입안을 산뜻하게 정리해주는 깔끔한 역할을 해냈다. 느타리버섯 역시 채소 본연의 맛이 살아 있고, 탱글탱글한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이 두 반찬에는 용인의 특산물이 담겨 있다. 남사면 순지마을에서 재배한 ‘순지오이’는 아삭한 식감으로, 원삼면에서 생산된 ‘원삼느타리버섯’은 쫄깃한 식감으로 잘 알려졌다. 자극적인 맛 대신, 절제된 간과 건강한 재료가 만들어낸 조화는 ‘슴슴하지만 깊은’ 국밥 한 그릇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렸다.
이 메뉴를 개발한 주인공은 죽전휴게소 주방을 총괄하는 김대석 실장(52). 한식과 양식을 모두 다룰 줄 아는 20년 경력의 베테랑 조리사다. 김 실장은 “휴게소에서 해장국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며 “핏물을 뺀 뼈를 삶고, 다시 육수를 내어 뼈를 다시 넣는 복잡한 과정을 거쳤고 일반 식당보다 조리 시간이 오래 걸려 시행착오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의 표정에는 단순히 맛있는 국밥을 넘어, ‘고속도로 한 끼 식사’의 개념을 바꾸겠다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식당에서 만난 한 화물차 운전자는 “이 정도면 일부러라도 다시 들를 맛”이라며 “고속도로에서 이런 뼈해장국을 만날 줄은 몰랐다. 진짜 집밥 같다”고 전했다.
총평. 죽전휴게소 뼈해장국 한 그릇은 단순한 맛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고아낸 국물, 지역 재료의 풍성한 맛, 그리고 그것을 만들기 위한 수많은 손길과 노력. 그 모든 요소가 한 그릇에 담겨 있었다. 서울로 향하는 귀갓길, 이 휴게소에서 꼭 한 번 멈춰야 할 이유가 생겼다.
[조동현 기자 cho.donghyu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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