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들어오면 아무도 나갈 수 없다
[이용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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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노동절을 사흘 앞둔 28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열린 메이데이 집회에 참가한 이주노동자들이 강제노동 금지와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24.4.28 |
| ⓒ 연합뉴스 |
고용허가제로 들어온 이주노동자가 임금체불, 휴·폐업, 성폭력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최초 3년 내 3번, 추가 1년 10개월간 2번까지만 사업장을 바꿀 수 있으며, 예외를 인정받아 사업장 변경 승인이 나더라도 90일 이내 새 일터에 취업하지 못하면 강제 출국 당한다.
많은 사장이 "여기 안 어려운 사람이 어디 있냐?"라거나 "나는 허락할 생각이 없으니 다른 데 가고 싶으면 나가서 미등록으로 살라"라고 하는데 남씨의 사장은 좀 더 노골적으로 말했다. 남씨와 같은 사람에게 공장은 감옥이다.
불법 체류하라고, 사업장 변경 못 해주니까!
2024년 8월부터 경기도 화성에 있는 플라스틱 제조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남씨는 입사 후 1개월부터 코피를 흘렸다. 일주일에 한두 번 나던 코피가 올 7월부터는 더 자주 났고 코피의 양도 많아졌다. 송탄중앙병원에 가서 부비동염 진단을 받았고, 증세가 호전되지 않으면 수술적 처치를 할 수도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남씨는 우리 센터에 와서 이렇게 얘기했다.
"저는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어서 회사에 그만두게 해달라고 요청드렸습니다. 플라스틱 냄새가 너무 독하고 해로워서 제 건강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끝까지 계약을 다 채워야 한다며 절대 보내주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전에도 직접 가서 다시 말씀드렸지만, 회사는 절대로 안 된다며 오히려 한국에서 쫓아내고 베트남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또 이 회사에 들어온 사람은 누구도 중간에 나갈 수 없다고 하면서 강제로 일을 시키고 있습니다. 플라스틱 유해 환경에서 장기간 일하는 것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어 너무 힘들고 압박을 받고 있습니다."
8월 12일 처음으로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고, 그 이후 두 번이나 더 요구했다. 사장은 경찰을 두 번이나 불렀다. 8월 28일은 남씨는 사무실에 가서 사장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을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경찰이 와서 남씨에게 나가라고 했다. 사장은 경찰에게 남씨가 업무를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사장들이 겁을 주기 위해 경찰을 부르는 일도 흔하다. 안산의 한 금속공장에서 일했던 네팔 이주노동자 비샬씨가 팔이 너무 아파 회사에 사업장 변경을 요구했다. 도금 작업을 했는데 중량물 작업으로 관절 염좌, 부정맥,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고 입원 치료까지 했다. 사업장 변경을 요구하자, 사장은 "불법 체류하라고, 사업장 변경 못 해주니까!"라고 말했다. 현장 관리자는 비샬씨의 얼굴에 뜨거운 커피를 쏟았다. 사장은 신발로 때렸고 경찰까지 불렀다. 이유는 똑같이 업무방해였다. 이 사건은 아직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빙산의 일각?
절대 빙산의 일각이 아니다. 산업인력공단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이주노동자 상담 건수 중 사업장 변경 애로 상담은 28%(약 6만 2천 건)로 상담 유형 중 '행정신고 업무지원'(28%, 약 6만 2천건)과 함께 가장 많은 상담 유형이었다. 사업장 변경 애로 상담 건수는 최근 4년 새 3.2배 불어났다.
이주노동자 70%가 3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이들 중 많은 수가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5인 미만 사업장에 있는 정주 노동자들도 사실상 무권리 상태를 강요받는데, 이주 노동자들의 상황은 말할 필요조차 없다. 아예 말을 꺼내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생각하면 사업장 변경 문제는 너무나 심각하다.
이런 현실은 정주 노동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사장들은 정주 노동자들이 겪는 고통과 불안의 근원으로 이주 노동자를 지목한다. 손쉽게 공격할 수 있는 누군가를 원흉으로 지목함으로써 안도감을 얻으려는 분위기가 창궐할 수 있다. 전쟁, 기근,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유발한 고통과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마녀 사냥에 빠져들었던 유럽인들처럼 말이다.
사업장 이동 제한 완화는 언 발에 오줌 누기
정부는 외국인 고용허가제(E-9)를 개편해 근로자들의 사업장 이동 제한을 완화하고, 장기근속 및 3년 단위 체류 연장 방안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사업장 이동을 가로막는 고용허가제는 그대로 둔 채, 사업장 변경이 가능한 사유를 조금 더 만들겠다는 뜻이다. 임금체불, 휴·폐업, 성폭력, 부당노동행위에서 어떤 사유를 추가할지는 모르겠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일 뿐이다. 아니, 언 발에 오줌 누기조차 못된다. 먼저 기존의 변경 사유인 임금체불, 휴·폐업 등도 입증 조건이 아주 까다롭다. 예를 들어 "월 임금의 30퍼센트 이상의 금액을 2개월이 지나도록 지급하지 않거나, 지연하여 지급한 경우" ,"월 임금의 30퍼센트 이상의 금액을 2회 이상 지급하지 않거나 지급한 경우"라는 식이다.
정주 노동자라면 당연히 이렇게 말할 것이다. "사장이 임금을 안 줘 사업장을 바꾸는데 왜 '30퍼센트, 2개월'이라는 조건이 붙여야 하나?"
이주 노동자는 임금체불 여부, 체불액에 대한 증빙 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절대적 약자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들이, 언어나 문화 때문에 소통의 어려움이 많은 이주노동자가 제대로 입증하기도 어렵다.
예를 들어 사업주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으로 인한 부상·질병 이외에 상해를 사업장 변경 사유로 포함한다고 하자. 부상·질병도 입증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상해 역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질문을 바꿔야 한다. 왜 이걸 입증해야 사업장을 바꿀 수 있는가? 손발을 꽁꽁 묶어 두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조금 더 상에 차려 놓는다고 해서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스리랑카 이주노동자 지게차 학대 사건 이후 이재명 정부는 이주 노동자의 인권을 개선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다. 사업장 이동의 자유를 가로막는 고용허가제를 도입한 지 21년, 너무나 많은 이주노동자와 이주인권 활동가들이 고용허가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소리 높여 외쳤다. 원칙적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업장과 업종에서만 근로를 지속해야 한다는 고용허가제를 폐지하지 않고는 괴롭힘, 학대, 폭행, 인권유린이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재명 정부는 진짜 대안을 외면하고 있다. 또 빈 수레가 요란한 꼴을 반복할 셈인가?
/ 이주노동법률지원센터 소금꽃나무 상임활동가
덧붙이는 글 | 다른 매체에 송고하지 않았는데 참세상이란 매체에 실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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