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들 가스통 불지르며 복원 반대, 4700번 만나 설득" [청계천 복원 20년]

문희철 2025. 9. 30. 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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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청계천을 찾은 관광객 및 시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뉴스1]

“청계천을 복원했더니 정부가 물값을 매년 20~30억원 내라고 하더라고요. 어찌나 난감하던지….”

20년 전 청계천 복원을 총괄했던 장석효 전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78·전 서울시 행정2부시장)의 회상이다. 청계천 복원을 추진하는 과정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 같은 물값 논란도 이 중 하나다. 당시 건설교통부(현 국토교통부)는 산하 공공기관인 한국수자원공사를 통해 물을 사용하는 비용을 서울시에 청구했다고 한다. 한강에서 취수하는 수돗물에도 돈을 내듯이, 펌프로 물을 끌어오는 청계천도 일종의 수도세를 내야 한다는 논리였다.

장 전 부시장은 “물을 쓰는 게 아니라, 깨끗하지 않은 물을 청계천에서 정화해서 다시 흘려보내는데 세금을 낼 수 없다는 것이 서울시 입장이었다”며 “완강하게 버티고 설득해서 결과적으로 물값을 내지 않는 것으로 정리가 됐다”고 말했다.

당시 서울시가 청계천 복원을 추진한 건 위생상 문제가 컸다. 과거 청계천은 굉장히 지저분했다고 한다. 그는 “청계천 전체가 아예 하수관이었다. 평소에도 복개한 도로로 (하수가 배출하는) 유독한 가스가 나왔다. 워낙 더럽고 위험해선 미8군은 군용차가 청계고가로 진입하지 말라는 규정까지 만들었다”고 기억했다.

[인터뷰] 장석효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

장석효 전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 [중앙포토]

이런 상황에서도 청계천에 손을 대지 못한 건 1000개에 달하는 청계천 인근 상점 때문이다. 이들은 청계천을 복원하면 차량 통행이 줄어 생업에 지장이 있을까 봐 우려했다. 복원을 반대한 청계천 8가 상인들은 전국노점상연합회랑 함께 청계천 길가에서 불을 지르기도 했다. 그는 “공사를 막기 위해 삭발하거나 가스통을 들고 서울시청을 찾아온 상인도 있었다”고 기억했다.

당시 서울시청 공무원들이 이들을 설득하려고 만난 횟수가 4700번이라고 한다.

서울시가 청계천 노점상 정비일을 2003년 11월 30일로 확정하고 경찰 지원을 요청했는데, 당시 경찰은 난색을 보였다. 우도 방사능 폐기시설물 저장고 관련한 시위에 대규모 인력을 파견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에게 경찰 입장을 전달했더니, ‘그렇게 겁나면 경찰 오지 말라고 해. 우리끼리 합시다’라고 말했어요. 그만큼 의지가 강했던 거죠.”

결국 정비일에 경찰은 4000명 정도의 인력을 파견했다. 상인을 위해 서울시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대규모 이주단지를 만들고, 송파구·동대문구·마포구 등지로 상점을 이전했다.

이주 문제를 해결한 이후에도 문제는 계속됐다. 12월 1일부터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 이듬해 5월 전까지 옹벽·하수관 등 수방시설 공사를 마무리하지 않으면 우기가 겹쳐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서울시의 ‘작전’은 물량 공세였다. 비슷한 규모의 여느 공사 대비 10배 이상의 인력과 장비를 투입해 공사를 밀어붙였다. 휴일도 없이 주7일 3교대 철야 작업을 진행하며 아슬아슬하게 우기 직전에 수방 공사를 마쳤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같은 근로규정이 없었던 시절이라 가능했다.

장석효 전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 [중앙포토]

인력·장비 10배 투입…버스전용차로 정책도 파생

서울 종로구 청계천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는 쇠백로. 문희철 기자

교통 문제도 거대한 장애물처럼 느껴졌다. 당시 청계천 복개도로·고가도로에는 하루 17만대의 차량이 통행했다. 청계천에 물이 흐르면 이 많은 차량을 어디로 보내느냐는 지적이었다.

당시 서울시가 내놓은 대표적인 해법 중 하나가 바로 버스중앙차로. 성공적인 교통 정책으로 평가받는 버스중앙차로제가 바로 청계천 때문에 부수적으로 발생한 정책이었던 것이다. 장 전 본부장은 “막상 청계천을 복원하고 나니 예상했던 교통 혼잡은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며 “청계천이 서울의 교통 정책에 엄청난 기여를 한 셈”이라고 말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청계천 복원을 마쳤다. 성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시민 공개 첫날 3일 만에 100만명이 왔다. 당시 인파가 너무 몰려서 무교동에서 청계천까지 걸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기억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청계천 복원에 참여한 공무원과 현장 실무자들은 청계천을사랑하는모임을 만들어 20년이 지난 지금까지 1년에 두 차례 다 같이 청계천을 걷는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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