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호의 사이언스&] 보스턴 클러스터 ‘산파’가 경기도 중견기업을 찾은 까닭

기업은 어떻게 영속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은 1945년 해방 이후 시작했다. 일본인들이 서둘러 떠난 땅에서 버려진 장비로 고무신·깡통·화장품·잉크 생산 등을 하거나 잡화상·자동차 정비를 하면서 기업을 시작했다. 그 중엔 글로벌 대기업 그룹으로 성장한 현대·LG와 같은 곳도 있지만, 한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온 중견기업도 적지 않다. 이들 대기업이든 중견기업이든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지금까진 미국·일본 등 선진국의 기술을 부지런히 쫓아가면 됐지만, 어느덧 성장의 한계에 달했다. 중국을 비롯한 후발 국가들은 한국의 성공 방정식을 따라 하면서 한국 기업들의 시장을 빼앗고 있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새로운 기술을 가진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변신하지 않으면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왔다.
■ 한영재 노루그룹 회장 인터뷰
「 랩센트럴 회장과 생태계 논의
바이오로 미래 성장엔진 확장
“기술 상용화에 선봉장 될 것”
」

지난 13일 오전 경기도 안양 박달동에 있는 노루그룹 본사에 푸른 눈의 한 중년 남성이 나타났다. 그의 이름은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세계 바이오산업의 허브로 떠오른 미국 보스턴 클러스터에서 혁신 딥테크 스타트업들을 키워온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의 창업자, 바로 그 사람이다. 그는 지난 10, 11일 대전 KAIST에서 열린 ‘혁신창업국가 대한민국 국제포럼’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처음 찾았다. 며칠 뒤 그는 노루그룹의 지주사인 노루홀딩스에서 브리핑을 들은 뒤, 뒤 건물에 있는 3HP 생산 파일럿 공장을 시찰했다. 3HP는 ‘3-하이드록시 프로피온산(3-Hydroxypropionic Acid)’의 약자로, 미국 에너지부가 ‘미래 소재 12종’으로 선정한 차세대 핵심 바이오 물질 중 하나다. 5t 규모의 생산시설을 둘러본 그는 연신 놀랍다는 감탄사를 터뜨렸다. 공장 시찰 내내 그와 동행하며 설명한 사람은 올해 창업 80주년을 맞은 해방둥이 노루그룹의 오너, 한영재(70) 노루홀딩스 회장이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한국의 거물급 인사들도 보스턴을 찾아가서야 만날 수 있었던 프루에하우프 회장이 경기도에 있는 연 매출 1조 원대의 중견기업을 직접 방문한 이유가 뭘까. 지난 15일 서울 역삼동 노루홀딩스 서울사무소에서 만난 한 회장과의 대화에서 성장의 한계점에서 몸부림치고 있는 한국 기업들의 마음을 읽었다.
“보스턴 바이오 성공 스토리 이식 원해”
![요하네스 프루에하우프 미국 보스턴 랩센트럴 회장이 지난 13일 노루페인트 공장의 3HP 생산시설을 둘러봤다. [사진 노루홀딩스]](https://img4.daumcdn.net/thumb/R658x0.q70/?fname=https://t1.daumcdn.net/news/202509/30/joongang/20250930002250134gqyh.jpg)
Q : 프루에하우프가 어떻게 노루 안양공장을 찾게 됐나.
A : “국제포럼 참석과 함께 바이오랩스의 한국 거점을 확보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다는 말을 듣고 연락을 취해 노루홀딩스의 핵심 생산 거점이자 첨단 설비를 갖춘 곳 안양으로 초대했다. 작년 10월에 내가 직접 보스턴을 찾아가 그를 만난 게 인연이 됐다. 우리는 랩센트럴과 바이오랩스의 바이오 생태계 조성과 성공 스토리를 한국에 옮겨 심고 싶었다. 프루에하우프와 우리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거다.”
Q : 안양에선 뭘 보고 의논했나.
A : “안양공장에는 차세대 바이오 기초 물질인 3HP의 5t 규모 파일럿 공장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이 정도 규모의 파일럿 공장을 가진 곳은 노루뿐이다. 그는 이번에 단순한 공장 시찰을 넘어, 산업용 바이오 생태계를 한국에 조성하는 방안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프루에하우프 회장에게 3HP 같은 기초 물질을 중심으로 한 산업용 바이오 분야를 어떻게 글로벌 생태계로 키워갈 수 있을지 자문을 구했다.”
Q : 페인트 회사가 왜 3HP인가.
A : “페인트 업종의 성장 곡선이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산업 경제 성장률과 궤를 같이 해왔으나, 최근 국내 시장 정체와 중후장대 산업의 국제 경쟁력 약화로 인해 성장성이 한계에 도달한 상황이다. 특히 건설 시장 침체의 영향으로 올해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노루는 근본적으로 석유 기반의 페트로 베이스에서 바이오 베이스 사업으로의 확장을 결정했다. 앞으로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이기도 하다.”
Q : 바이오 베이스 사업과 3HP는 어떤 관계인가.
A : “3HP는 미 에너지부가 미래 소재 12종으로 선정한 차세대 핵심 바이오 기초 물질이다. 쉽게 말해 식물 기반 위에서 만들어지는 플랫폼 성격의 소재로, 이후 다양한 고분자나 친환경 화학제품으로 전환될 수 있다. 세계 곳곳에서 개발 경쟁이 치열하다. 3HP는 앞으로 전 세계 산업용 바이오 생태계의 출발점이 될 거다. 노루도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합성생물학을 연구하고 있는 박성훈 에너지화학공학과 초빙석좌교수가 연구한 기술을 이전받아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개발해왔다.”
Q : 3HP로 구체적으로 뭘 할 수 있나.
A : “3HP는 기존의 석유 기반 원료를 대체하는 바이오 플라스틱 원료시장, 산업용 용매 시장, 그리고 화장품 및 식품 첨가제와 같은 바이오 모노머(고분자를 이루는 기본 단위 분자) 시장 등 광범위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다. 현재 국내외 기업들이 저희가 파일럿 생산 설비를 통해 만든 3HP를 구매해 반도체 프로세스의 세정제, 태양광 패널 세척제 등으로 시험 적용하고 있다.”
종자 산업, 주권회복이면서 미래 먹거리
Q : 그룹 계열사에는 종자 산업도 있던데.
A : “IMF 경제위기 당시 우리 종자 산업이 외국에 다 빼앗겼다. 종자는 주권 회복이라는 사명도 있지만, 미래 먹거리이기도 하다. 2015년 더기반이란 이름으로 종자 산업에 진출했다. 성주 참외를 비롯해 고추 등 다양한 우리 농산물 종자를 육종을 통해 만들고 있다. 언젠가 GMO(유전자변형생물체) 규제가 풀리는 때가 되면, 유전자 교정을 통한 종자 개발 사업도 생각하고 있다.”
Q : 노루그룹의 중장기 비전은.
A : “오는 11월이면 회사 창립 80주년이다. 노루는 이제 분명히 미래로 건너간다. 석유화학을 넘어서 바이오산업의 선도기업 중 하나로 사회와 국가에 공헌하는 기업이 되는 거다. 정부는 지난 수십 년간 연구개발(R&D) 중 리시처(R)에 많은 투자를 해왔는데, 개발(D)과 사업화엔 여전히 약하다. 나는 과학자들의 연구를 응용해 개발하고, 상업화하는 데 선봉장이 되고 싶다.”

최준호 과학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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