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상 물가 비상…‘쌀값 급등’ 왜?
“통상 소비자들은 심리적 저항선으로 20㎏이 6만원이 좀 넘으면 부담스럽다고 한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발언이다. 그런데 그 저항선이 무너졌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KAMIS)에 따르면, 9월 22일 기준 쌀 20kg의 전국 평균 소매가격은 6만3991원을 기록했다. 1년 전 5만967원보다 25.5%나 급등한 수치다.
역설적인 것은 쌀 소비가 매년 줄어드는 추세에서 가격이 폭등한다는 점이다. 이번 쌀값 파동은 단순히 작황 부진이나 일시적 수급 불균형을 넘어 한국 농업과 유통 시스템의 구조적 모순이 응축돼 터져나온 결과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생각보다 수요 안 줄었다
이번 쌀값 급등의 근본 원인은 수요 감소폭을 넘어선 공급 부족에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쌀값 상승은 기본적으로 공급이 수요보다 더 크게 감소하며 생긴 문제”라며 “기후변화, 재배면적 감소, 제한적 수입 구조라는 세 가지 구조적 공급 취약성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의 쌀 공급 기반은 장기간에 걸쳐 약화됐다. 정부가 농가 소득 보전을 위해 지급하는 직불금 제도는 역설적으로 쌀 재배면적의 꾸준한 감소를 유도했다. 여기에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과정에서 쌀을 ‘절대 사수 품목’으로 지키기 위해 설정한 최소시장접근(MMA, 잠깐용어 참조) 물량을 제외하면 사실상 수입이 막혀 있는 경직된 구조는 국내 공급이 부족할 때 외부에서 물량을 들여와 충격을 완화할 수 있는 안전판 역할을 하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작황 변동성 증가는 이런 취약성을 더욱 심화시켰다. 잦은 폭염과 폭우 등 이상 기후는 쌀 생산량 예측을 갈수록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만성적인 공급 취약성이 자리 잡은 상황에서, 정부의 단기 정책 실패가 결정타를 날렸다. 지난해 정부는 시장 수요를 14만4000t이나 적게 예측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 계산에 근거해 시장에서 20만t의 쌀을 격리했다. 이는 시장에 유통돼야 할 14만4000t의 쌀을 인위적으로 증발시켜버리는 결과를 낳았다. 구조적으로 허약해진 공급 기반 위에 섣부른 정책이 기름을 부어 공급 대란을 초래한 것이다.
문정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정부가 발표하는 통계(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 1994년 120.5㎏ → 2024년 55.8㎏)는 가정 내에서 생쌀을 구매해 밥을 지어 먹는 수치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그는 “가정 내 쌀 소비는 당연히 줄지만, 햇반 같은 간편식, 외식, 쌀 가공품(주류 포함), 심지어 수출을 통한 소비는 오히려 늘고 있는데 정부는 이런 구조적 수요 변화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원인 2 K푸드 열풍
수요의 구조가 바뀌었다
‘냉동김밥’과 ‘떡볶이’의 세계적 인기는 K푸드 산업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동시에 기존 쌀 시장의 균형을 뒤흔드는 ‘수요 충격’을 가져왔다. 가정 내 밥 소비는 줄어드는 반면, 즉석밥, 간편식, 주류 등 가공식품의 원료가 되는 쌀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가공용 쌀 소비량이 향후 10년 내 100만t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국내 쌀 생산 구조가 이런 수요의 구조적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국내 농가는 고품질의 비싼 ‘식용 쌀’ 생산에 집중해온 반면, 가공 업계는 균일한 품질의 저렴한 쌀을 대량으로 필요로 한다. 이 간극을 메워주던 것이 바로 정부가 저렴하게 공급하던 비축미였다.
하지만 정부의 과도한 시장 격리로 비축미 재고가 바닥을 드러내자 이 ‘완충 지대’가 사라졌다. 갈 곳을 잃은 가공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2배 가까이 비싼 일반 식용 쌀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막대한 자금력을 갖춘 식품 대기업들이 시장의 ‘새로운 큰손’으로 등장해 쌀을 대거 구매하기 시작하자 곧바로 시장 전반의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는 도미노 효과를 낳았다.
원인 3 불신 키우는 유통 구조
믿었던 미곡종합처리장…‘공공의 배신’
“산지 가격은 폭락했다는데 마트 가격은 그대로다.”
많은 소비자가 이런 불만을 내놓는다. 여기서 한국 농산물 유통 구조의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낸다. 생산과 소비 단계의 가격이 다르게 움직이는 ‘가격의 비대칭성’은 유통 과정 전반에 깊은 불신을 낳는다.
이런 구조적 불신은 시장 불안 심리와 결합할 때 더욱 파괴적인 결과를 낳는다. 올해 쌀 시장이 바로 그 경우다. 정부 정책 실패로 촉발된 공급 불안 심리를 틈타, 시장 안정에 앞장서야 할 주체들이 오히려 이익 극대화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시장 관계자 사이에서는 일부 지역 농협 미곡종합처리장(RPC)들이 최근 쌀값이 급등했던 일본 사례를 학습해 햅쌀 출하를 의도적으로 늦추며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는 단순한 시장 참여자의 이기적 행동을 넘어 ‘공공의 배신’이라는 지적이다. RPC는 농가 소득 증대와 시장 안정이라는 공공 목적을 위해 정부의 막대한 정책 자금과 세제 혜택을 지원받아 설립되고 운영되는 시설이라서다.
대안은 없나
식용·가공용 분리 유통해야
이번 쌀값 파동을 계기로 ‘한국 쌀’이라는 선수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다.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현재 정책이 마치 “성적과 상관없이 무조건 금메달을 보장해주겠다”고 약속하는 것과 같다고 지적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장 강하게 제기하는 전문가는 문정훈 교수다. 그는 현재의 쌀 정책이 농민의 소득 안정을 위한 ‘복지’와 쌀 산업의 미래를 위한 ‘산업’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어설프게 섞어놓아 둘 다 놓치고 있다고 비판한다. 선수의 생계 안정은 ‘복지 장학금(직불금)’으로 확실히 보장해주되, ‘산업 정책’은 철저히 선수의 경기력을 높이는데, 즉 쌀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통계를 현실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김용진 교수는 “햇반과 냉동김밥이 얼마나 팔리는지, 오늘 저녁 사람들이 외식으로 밥을 얼마나 먹었는지, K푸드 인기로 쌀이 얼마나 수출됐는지 전혀 반영 못하는 통계는 ‘죽은 통계’ ”라며 “유통·식품 기업의 판매 데이터와 연동해 수요를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쌀 산업의 위성항법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더불어 식용 쌀과 가공용 쌀 시장을 분리하는 ‘시장 이원화’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한 식품 업계 관계자는 “가공용으로는 저렴하고 특성이 일관된 쌀이 필요한데, 시장에는 비싼 식용 쌀밖에 없어 수급이 조금만 불안해져도 가격이 천정부지로 뛴다”고 토로했다. ‘가공용 쌀’을 생산하는 전용 라인을 만들어 계약재배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공급하면, 식품 업계는 원가 경쟁력을 확보해 K푸드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잠깐용어 *최소시장접근(MMA·Minimum Market Access) | 의무적으로 일정 물량은 낮은 관세로 수입하되, 이를 초과하는 물량에는 높은 관세를 매겨 사실상 수입을 제한하는 제도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29호·추석합본호 (2025.10.01~10.14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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