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얼굴 뒤에 숨은 악마들, 그리고 한 여자
[김형욱 기자]
이방인의 출현, 그리고 파문
1930년대 미국 록키산맥 기슭의 작은 마을 '도그빌'. 어른 아이 합쳐도 고작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고립된 공간에 낯선 여인이 찾아온다. 이름은 그레이스. 그녀는 갱단에게 쫓기다 우연히 이곳에 몸을 숨기게 되고, 마을의 젊은 지식인 톰이 그녀를 감싼다. 톰은 주민들을 설득해 그레이스에게 2주의 기간을 허락한다.
처음에 도그빌 사람들은 호의적이었다. 외부 세계와 단절된 일상 속에서 등장한 그녀는 활력과 변화를 가져다주는 듯했다. 주민들은 하나둘 그레이스의 손을 빌려 집안일을 해결하고, 농사나 아이 돌봄도 맡긴다. 그러던 어느 날, 경찰이 찾아오고 그녀의 정체에 의문이 드리워진다. 급기야 그녀에게 현상금이 걸리자 분위기는 서서히 변한다.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변질된다. 불안과 시기, 질투가 뒤엉켜 호의는 곧 억압과 착취로 바뀌어 간다. '우리가 감춰주고 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식의 논리로 그레이스를 옭아매는 것이다. 과연 이 작은 공동체에 잠들어 있던 본성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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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도그빌>의 한 장면. |
| ⓒ 엣나인필름 |
이 실험적인 무대 장치는 마을 사람들, 즉 인간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벽이 없으니 감출 것도 없다. 관객은 그레이스가 당하는 부당함을 목격하는 동시에 주민들이 행하는 폭력의 순간을 고스란히 바라봐야 한다. 그 불편함은 의도적이다. 감독은 카메라와 무대를 통해 관객을 공범으로 만드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함 속에는 부패와 탐욕, 비겁함이 도사리고 있다. 변화가 없을 때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지만, 낯선 이가 들어와 변화가 생겨나자 평범함은 곧 위선과 잔혹함으로 드러난다. 라스 폰 트리에는 인간의 본능이 얼마나 쉽게 추악함으로 전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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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도그빌>의 한 장면. |
| ⓒ 엣나인필름 |
마치 고행을 자처하는 성자의 태도와도 같다. 그러나 영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그녀의 수용이 과연 진정한 선이었는가, 혹은 스스로를 신격화한 오만은 아니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레이스는 끝까지 마을 사람들을 '구원해야 할 존재'로 바라보며 스스로를 희생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들을 동등한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영화는 두 가지 오만을 병치한다. 하나는 나약하고 비겁한 군중의 오만, 다른 하나는 신이 되려 한 개인의 오만. 관객은 그 충돌을 바라보며 인간의 본질에 대해 성찰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안에서 인간의 심연을 들여다보게 된다는 것이다.
왜 지금, <도그빌>인가
<도그빌>은 단순한 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적 쾌감이나 서스펜스를 기대하고 본다면 다소 낯설고 불편할 수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불편함이 이 작품의 진짜 힘이다. 인간의 추악함과 위선, 그리고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오만함까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늘 인간과 세계를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봐 왔다. <도그빌>은 그가 가장 실험적이면서도 가장 날카롭게 인간의 본성을 파헤친 작품이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 마을에 혹은 우리 삶에 그레이스 같은 이방인이 들어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도덕과 윤리, 선과 악이라는 단순한 구분이 무너지는 자리에서 관객은 스스로를 마주한다. 그렇기에 <도그빌>은 20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강렬하고 불편하며, 그래서 반드시 봐야 할 영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과 contents.premium.naver.com/singenv/themovi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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