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 미봉책 넘어 진짜 해법으로 나아가야

김형태 2025. 9. 29. 14: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학생과 학교는 실험용 쥐가 아니기에 속도보다 완성도가 중요하다

[김형태 기자]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고교학점제 폐지 촉구 양육자 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교육부의 이상과 학교 현장의 충돌

고교학점제는 고등학생도 대학생처럼 원하는 과목을 선택해 각자의 소질, 진로, 적성에 맞게 수강하는 제도로, 2025학년도부터 도입, 확대 기로에 놓여 있다. 교육의 다양성과 학생 선택권을 보장하고, 특히 진로 직업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자는 것이니 그 취지와 목적이 나쁘지 않다.

다만 수업 혁신 및 평가 혁신 부재, 대학 입시 서열화 완화, 교사진 확보, 내신 절대평가 실시를 비롯해 내신 반영 구조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애매모호함 등 준비가 덜 되었고, 선행해야 할 작업들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출발하였다. 한 마디로 '필요조건 미비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고층 건물을 짓는데, 아직 기초공사가 제대로 안 되어 있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당연히 전제가 완료되지 않은 상태에서 2층, 3층 계속 쌓아 올리면 부실 공사가 됨에도, 다소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의 기운이 느껴진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행 첫해부터 학교는 심각한 혼란을 겪고 있다. 교사들은 과도한 보충 수업과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학생들은 '이수 기준 미달' 낙인 속에서 불안과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학부모들은 제도의 불확실성 속에서 사교육 의존을 점점 늘리고 있다. 급기야 최근엔 교원단체를 중심으로 고교학점제 폐지론이 강하게 부상하고 있다.

최교진 교육부 장관은 취임하면서 고교학점제 관련 "학교 현장에서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개선하여 본래 취지대로 잘 자리매김하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25일, 교육부는 '최소 성취수준 보장지도'(최성보) 완화 등이 담긴 첫 공식 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게 교육 현장 평가다. 교사와 교원단체들은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과 실효성 있는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대체 이번 교육부 보완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으며, 그 한계는 무엇일까? 더 나아가 고교학점제가 제대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어떤 제도 개선이 이루어져야 할까, 학교 현장에 있는 한 사람으로 깊이 있게 분석, 나름대로 해법을 적어보려 한다.

교육부 개선 방안의 핵심, "교원 부담 줄이고 학생 지원 강화"

최교진 장관이 밝힌 고교학점제 운영 개선 대책의 골자는 네 가지다. 첫째, 학점 이수 기준을 국가교육위서 시급히 논의해 교육과정을 개정하도록 요청하겠다고 강조했다. 즉 미이수 기준 완화, 기존의 '출석률 3분의 2 이상 + 성취율 40% 이상'이라는 기준을 조정해, 선택과목은 출석률만 반영하고, 공통과목 역시 향후 출석률 중심으로 개편할 수 있도록 국가교육위에 논의를 넘긴 것으로 보인다. 이는 낙오 학생 방지와 교사의 억지 성적 부여 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둘째, 보충지도 시간 축소로 학점당 보충지도 시간을 5시간에서 3시간으로 줄이고, 출석률 미달 학생은 온라인 수업을 통해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셋째, 교원 확충이다. 2026학년도에 전년 대비 1600명 증가한 7100명의 중등 교원을 신규 채용하고, 대학 강사 등 외부 인력을 활용해 다양한 교과 운영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넷째, 지원체계 강화로, 각 시·도 교육청에 고교학점제 지원센터를 설치해 학교 현장의 어려움을 빠르게 수렴하고 해결하겠다는 방안도 포함되었다. 나름대로 교원의 부담을 줄이고 학생 지원을 강화하려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효성에 대한 현장 반응은 여전히 싸늘한 편이다.

현장 교사의 시각, "부분적 손질로는 고교학점제 취지와 목표 살리기 어려워"

현직 교사들은 교육부가 내놓은 '부분적 손질'로는 고교학점제의 취지와 목표를 살리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첫째, 보충수업 부담은 여전하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2025) 설문에 따르면 교사의 78%가 '보충지도 업무가 과중하다'고 응답했다. 둘째, '최성보(최소 성취수준 보장)' 완화도 실효성이 부족하다. 학생들이 "쟤네 40%야"라고 낙인 찍는 현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교사들은 오히려 형식적 보충지도를 진행하거나 EBS 강의 시청, 문제집 풀기 등으로 '시간 때우기식' 대응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토로한다.

셋째, 교원 확충의 체감도가 낮다. 전국 고등학교가 2380개교인데, 신규 채용 인원은 학교당 평균 0.7명 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특히 농어촌·소규모 학교는 여전히 다양한 선택과목 개설이 어렵다. 서울·수도권 일부 학교만 혜택을 보는 구조가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지원센터가 설치되더라도 각종 보고서와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행정 창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이미 교사들은 '현장 지원'을 명분으로 한 행정업무에 지쳐 있기 때문이다.

제도의 근본적 문제, 전국 자사고가 '백화점'이라면 지역 소규모 일반고는 '구멍가게' 수준

고교학점제의 가장 큰 딜레마는 대입 제도와의 불일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현실적으로 "입시에 유리한 과목"을 선택할 수밖에 없고, 이는 고교학점제의 '진로 맞춤형 학습'이라는 본래 취지를 무너뜨릴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학교 간 격차다. 도시의 큰 학교는 다양한 과목을 개설할 수 있지만, 농어촌·소규모 학교는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한국교육개발원(2024)에 따르면, 수도권 일반고의 선택과목 개설 수는 평균 32개인데, 농어촌은 18개에 불과하다. 고교학점제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과목 선택권'이다. 학생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고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에 따라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은 3년간 192학점 이상의 학점을 취득해야 한다. 1학년은 공통과목 위주로 수업을 듣지만 2학년부터는 선택과목을 골라 수강하게 된다.

지난 5월 종로학원이 전국 고교 41곳을 대상으로 고교학점제 개설 과목 현황을 분석한 결과, 하나고, 민사고와 같은 전국 단위 자립형사립학교(자사고) 6곳의 평균 개설 과목 수는 105.3개, 서울지역 일반고 10곳의 평균은 100.8개, 서울 자사고 10곳 평균은 100.2개였다. 반면 1학년 학생이 30~60명대인 지역 소규모 일반고 5곳 평균은 75.6개에 그쳤다. 전국 자사고와 최대 30개 과목 차이가 난다. 전국 자사고가 '백화점'이라면 지역 소규모 일반고는 '구멍가게' 수준인 셈이다.

교육부 대책의 긍정과 한계

물론 교육부 보완 대책에 긍정적 요소도 보인다. 미이수 기준 완화는 교사와 학생의 부담을 줄이는 첫걸음이다. 교원 확충은 학점제 안착을 위해 필수적인 조건이다. 지원센터 설치는 최소한 현장 의견을 경청하려는 태도나 다름없다. 그러나 아쉬움은 여전하다.

성취율 기준을 완전히 삭제하면 '앉아만 있어도 학점 취득'이라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단순한 교원 수 확대는 전문성과 지역 격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행정적 장치 중심의 지원은 교사 피로도를 더 키울 수 있다. 무엇보다, 대학 입시와 연계되지 않는 학점제는 공허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는 절대평가를 전제로 설계됐으나, 대입 내신 반영은 5등급 상대평가 체제를 유지한다. 내신 등급이 산출되는 과목은 수강인원이 변수로 작용한다. 수강자가 적을 경우 내신 등급 확보가 어려워진다는 뜻이다. 따라서 학생들은 흥미를 가지는 과목보다는 성적을 잘 받을 수 있는 과목으로 몰릴 가능성이 높아진다.

다시 말해, 내신 등급 산출에 영향을 미치는 핵심 변수는 '수강 인원'이다. 수강생 수가 적을수록 등급 간 격차가 커지고, 일부 과목에서는 상위권 학생조차 좋은 내신 등급을 받기 어려울 수 있다. 학생들이 진로와 적성 대신 대입 유리한 과목 선택하게 된다. 그럼 결국 학생들에게 충분한 진로 탐색 기회를 제공한다는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진다. 그나마 고교 1학년은 공통과목이 대부분이나 본격적으로 과목 선택을 하는 2학년부터는 혼란이 불가피하다.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고교학점제를 두고 학교 현장 곳곳에서 혼란과 거센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기존 입시제도는 거의 그대로 둔 채 준비 안 된 상태에서 고교학점제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면서 혼란과 부담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다양한 과목을 스스로 선택해 학점을 채우라는데 솔직히 뭐가 뭔지 모르겠어요!"
"진로 설계 및 과목 선택. 즉 학생 본인의 구체적 진로를 정한 다음 수강할 과목을 선택하라고 하는데, 아직 진로가 정해지지 않아서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 대략 난감...!"
"요즘 대학은 시대적 추세라며 무전공 확대를 외치고 있는데, 고등학교에서는 구체적인 전공 적합성을 찾으라고 하니 뭔가 교육 정책이 엇박자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학생들의 솔직한 목소리이다. 올해 처음 도입된 제도라 학생과 학부모는 참고할 입시 정보가 없어 더욱 불안해 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특정 과목을 선택하고 진로 방향 등을 잡아주는 컨설팅 학원을 찾고 있다. 공교육 강화를 위한 제도인데 어쩌다가 사교육을 조장하는 꼴이 되어 가고 있다.

교사들은 "학생들이 내신 등급 산출을 위한 지필 평가와 수많은 수행평가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힘들어하는데, 여기에 과목 선택까지 더해져 학생들의 학업 스트레스가 가중되고 있다"라며 다양한 경험과 실패를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진로를 탐색해야 하지만 현재의 고등학교 시스템에서는 솔직히 불가능하다. 1학년 때 결정한 진로를 2, 3학년 때 바꾸면 입시에 불리해질까 봐 자퇴를 고민하기도 한다. 과목 선택과 진로 선택마저도 사교육 컨설팅의 영역이 됐다. 학생들은 내신 성적 관리에 유리한 학생 수가 많은 대규모 학교로 몰리고 있다"라고 한숨을 쉰다.

일부 교사들은 과목 개설 수 격차가 교사 수급 문제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과목 수가 늘었지만 교원 수는 그대로다 보니, 지방 소규모 학교에서는 한 명의 교사가 전공과 무관한 과목까지 도맡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한 지방 교사는 "물리 전공인데 생명과학까지 가르치고 있고, 일반사회 선생님이 세계지리까지 가르치게 생겼다"며 고충을 호소했다.

학교 간 격차를 보완하기 위한 공동 교육과정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인근 학교로 이동해 수업을 듣는 방식이지만, 학생 이동 안전 문제, 교통편 부족, 교사의 행정 업무 증가 등으로 현장에서 사실상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안전사고 났을 때 누구의 책임인가 놓고 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고교학점제에 따른 공동 교육과정 운영, 시간표 편성, 외부 연계 수업 관리 등 교사 업무가 증가하고 있지만 인력 지원이 없어 부담이 더욱 크다는 것이다.

고교학점제를 성공적으로 뿌리내리게 하려면

최교진 신임 교육부장관과 교육부가 고교학점제를 포기하지 않고 꼭 성공시키고 싶다면 방해물, 걸림돌을 속히 제거해야 한다. 고교학점제를 정상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대안은 다음과 같다.

* 보충학습의 체계화 : 단순히 시수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학생 개별 학습 진단 → 맞춤형 보충 → 학습 성취 확인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 온라인 프로그램은 보조 수단일 뿐, 전담 교사와 튜터링 체계가 필요하다.
* 교사 인력 배치의 정밀화 : 신규 교원 증원은 과목별·지역별 수요 분석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 농어촌은 거점학교 공동 운영, 원격수업 활성화, 교사 순환 파견제를 도입해 선택권 격차를 줄여야 한다.
* 대입제도와의 연계 강화 : 대학은 학과별로 요구하는 고교 과목을 명확히 제시해야 하며, 교육부는 이를 일관되게 안내해야 한다.
* 고교-대학 연계 모형을 강화해 학생이 실제 진로 설계와 맞닿는 선택을 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 교사 전문성 강화 : 단순히 '사람 수 늘리기'가 아니라, 학점제 시대에 맞는 교사 재교육과 연수가 병행되어야 한다.
* 진로 상담, 학업 설계, 개별 맞춤형 수업 설계 능력을 키워야 한다.
* 학교 자율성 확대 : 중앙집권적 지침이 아니라, 학교 실정에 맞는 운영 자율권을 부여해야 한다. 대신 재정과 인력 지원을 병행해야 한다.

"교육은 책상 위가 아니라 교실에서 완성된다"

고교학점제가 한국 교육이 가야 할 길이라는 점에서는 큰 틀에서 공감한다. 그러나 현재 모습은 선언적 구호와 미봉책 사이에서 표류하고 있다. 교사와 학생, 학부모가 모두 공감하는 제도는 속도보다 완성도가 중요하다. 우선 보충학습 체계, 정밀한 교사 배치, 대입과의 정합성, 학교 자율성 확대 등 적어도 이 네 가지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고교학점제는 서서히 뿌리내릴 것이다. 하지만 고교학점제는 한 마디로 시기상조이다.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혼란과 부작용만 더 낳을 뿐이다. 지금이라도 제도 시행을 잠정 중단하고, 교육 주체와 학교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근본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전환교육도 없고 진로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고 있는 우리나라 현실상, 몇몇 교육 전문가들의 제안처럼, '제한적 선택권'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기초, 공통과목 중심의 보편교육에 토대를 두고, 제한적 선택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무리가 적을 듯하다. 고등학교 교육은 학생의 진로, 직업 준비뿐 아니라 문해력, 수리력, 인문사회·자연과학, 체육·예술, 자치활동 등 다양한 영역에서의 균형 잡힌 성장과 기초 역량 함양에 초점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다.

교육은 교실에서 완성된다. 책상 위의 정책이 아니라, 교사와 학생의 땀과 숨결이 살아 있는 교실에서 제도의 성패가 갈린다. 현장의 목소리가 정책의 출발점이 될 때, 고교학점제는 비로소 '학생 맞춤형 교육'이라는 본래의 이상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